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바람은 멈추었다, 방금 지나친 화살과 함께. 허나, 또 다른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우리 쪽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군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몽골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알 수 없을 화살이 빠르게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제법 예리하여, 그저 허투루 지나친 것이 없었다. 한 발에 한 사람, 우리를 손바닥을 두고 꿰보듯 정확하기까지 하였다. 

일단 난 얼른 나무 뒤로 몸을 숨기었다. 그러나 이미 이쪽으로도 쓰러진 군사들이 서넛은 되었다. 별 수 없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이들 사이에 숨길 수밖에. 그 사이 몽골군과 고려군은 각자 자리에서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계속 화살은 멈추지 않고 한 발씩 날아들었다. 하늘은 재를 뿌린 듯 컴컴하였고, 그저 귓구멍으로 다가오는 소리에만 의지한 채 몸을 어찌할 줄을 모를 뿐이었다. 

“여기서 우물쭈물하다가 짐승들이 먹잇감으로 남을 것이다!”

김방경의 호령에도 고려군은 좀처럼 각자 자리를 지키질 못 하였다. 이는 몽골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뒤섞여, 우왕좌왕하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이들도 몇몇 눈에 들어왔다. 온몸을 바닥에 바짝 붙였다. 눈만 겨우 보일만큼 고개를 올린 뒤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사방에 어둠은 더욱더 짙게 드리웠다. 그곳을 뚫고 한 발씩 기습하는 화살에 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위에서 한 발, 아래에서 한 발, 동서남북 어디서 어떻게 날아드는 건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김방경과 홍다구를 향하는 화살은 예리하게 날아들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겨우겨우 화살을 하나씩 걷어내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 곁을 지키던 수하들이 몇 쓰러지고 말았다. 거의 꼼짝 없이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죄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자그마한 빛 두 개가 내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눈을 동그랗게 뜰 새도 없이,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재빨리 다가왔다.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방금 엎드렸던 바닥에 화살이 정확히 내리꽂히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동시에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사이 내 앞을 지나던 고려 군사가 하나 또 쓰러지고 있었다. 

새들이 울었다. 그저 밤을 지새우는 소리가 아니라, 쓰러진 자들을 대신하는 통곡과도 같았다. 양쪽 귀가 멍하게 울릴 정도였다. 쓰러지는 이들의 신음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대신 말들이 더 크게 울부짖었다. 이상하게도 화살이 말은 맞추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갔다. 오히려 말에 탄 군사들은 피하는 눈치도 역력하였다. 

“놈들은 많지 않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

김방경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화살을 걷어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이 홍다구는 은근 슬쩍 뒤로 물러났으나, 화살이 사정거리에서는 벗어나질 못 했고. 계속 큰 몸집으로 피하려다가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를 보호하려던 군사들이 몰려들다가 다시 몇몇이 쓰러졌다. 집중되는 화살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으나, 김방경이 말과 함께 달려들었다. 자신의 말을 방패 삼아 홍다구를 옆으로 밀어내었다. 처음으로 말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고, 잠시 화살은 멈추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몰아치는 기운을 내뿜었다. 모두 눈조차 뜰 수 없었지만, 그때부터 화살은 날아들지 않았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돌들이 솟구쳤으나, 군사들을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쯤 하늘을 뒤덮던 구름이 조금 물러나더니, 주변에 드리운 어둠이 살짝 물러났다. 주변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을 사로잡아라!”

김통정이 그쪽으로 내달렸다. 군사들이 뒤따랐고, 몇몇은 창을 내던졌으나, 바람 때문에 그곳까진 미치진 못 하였다. 그 과정에 분명하게 활을 맨 그림자들 여럿을 보았다. 모두 성 안으로 뛰어들었는데 선뜻 성문 안까지는 돌격은 못 하고,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흐트러진 군사들을 정비하는데, 고려군과 몽골군 모두 만만치 않았다. 일단 완전히 숨을 거둔 이들도 적지 않았고, 부상을 입은 자들은 절반에 가까웠다. 그중 아예 거동조차 힘든 이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거기다가 아예 이곳에서 도망갔거나 실족된 인원도 제법이었다.

“이를 어쩔 셈인가!”

정작 목소리를 높인 건, 홍다구였다. 아직 말에 모르지 못한 그는, 군사들을 정비하자마자 곧장 김방경에게 다가가 멱살부터 잡았다. 

“어찌 엉뚱한 곳에 탓을 하려는 겁니까?”

“네놈들 때문에 방심을 하였지 않느냐!”

“방심에 이유가 없습니다, 변명할 여지 없지 없는 실책일뿐.”

“뭐가 어쩌고 어째!”

홍다구는 멱살을 잡았던 손으로 김방경의 뺨을 후려쳤다. 분명 그 손길을 막아내거나 피할 수 있었겠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군사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지만, 가장 놀란 건 손을 든 홍다구 자신이었다.

“이제 다시 정신을 차리면 되겠습니까?”

“으흠, 그, 그리하지.”

홍다구는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말에 올라탔다. 김방경도 마찬가지로 수하들이 가져온 말에 올라탔고, 다시 군사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나와 잠시 눈이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바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내성 코앞까지 군사들을 이동시켰음에도 어떠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곧장 진격을 해도 무방할 테지만, 지난 기습에 모두 조심스러워 하는 움직임이었다. 몽골군과 나란히 섰음에도 더 앞장 서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몇몇을 따로 불러내어 성안으로 들여보내는 것, 유일하게 했던 김방경의 명이었다.

여전히 어둡지만, 거기서 드러나는 성벽의 위용은 그림자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성벽 위를 지키는 군사들은 아예 보이질 않았다. 성문이 굳게 닫힌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발길을 멈추기에 전혀 이상하게 않을 무게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말 아래에서 내려온 김방경의 곁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하실 방도인지.

“바람을 기다려야지.”

여전히 바람은 불고 있었다. 어떤 바람을 원한단 말인가. 성벽을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