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104화, 차가워진 바람 
[펜안허우꽈?] 104화, 차가워진 바람 
  • 차영민 작가
  • 승인 2020.06.14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말은 빠르게 내달렸다. 고삐를 꽉 쥔, 고려군 부장의 허리에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김방경과 수하들 몇몇도 바로 옆에 따라붙었다. 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성문 앞에 불길은 치솟았지만 군사들이 그곳을 넘지 못하였다.

어둠 속으로 빠르게 접어들면서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었다. 단순히 우리 머리 위를 뒤덮은 나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에서 다가오는 바람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혀끝은 갈라질 듯 바짝 말라 있었다. 이미 양쪽 다리는 허공에서 힘없이 말 옆구리만 두드려댈 뿐이었다. 한참을 내달렸지만 변한 것은 성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어둠만 더 짙을 뿐이었다. 길도 굽이굽이 어느 방향으로 들어섰는지 가늠이 안 될 만큼 정신없이 내달렸다. 괜히 목 아래까지 숨이 차올랐고, 머리가 핑 돌아 어지럽기까지 했다. 손끝에 힘이 서서 풀리려고 할 때쯤, 그제야 말이 멈추었다. 김방경을 비롯해 모두 각자 자리를 잡았다. 숨을 고르며, 주변부터 살피었다. 온통 높은 나무들만 무성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풍경도 작은 산들뿐이었다. 새들의 울부짖음이 바람의 날카로운 움직임을 잠재우고 있었다.

“김통정은 어디 있느냐?”

김방경이 부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 순간, 낯선 그림자가 눈앞을 스치었다. 김방경도 고개를 휙 돌렸고,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칼을 빼들고 주변을 살피었다. 그 순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그가 팔로 나를 밀어냈다. 말 아래로 떨어졌고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그의 칼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동시에 김방경이 뻗은 칼이 그의 목을 향하였다.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김방경의 목소리가 주변 나무에 앉아있던 새들의 날갯짓을 재촉하였다. 으스름한 달빛에 비친 새들의 그림자는 재빠르게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뭇가지는 여전히 흔들렸다. 그 순간, 수십 개의 빛이 나와 마주치고 말았다. 김방경에게 차마 외칠 새도 없이 화살이 쏟아져 나왔다. 김방경은 칼로 모두 걷어냈으나, 그를 호위하던 고려군 중 둘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우릴 여기로 이끌었던 부장은 순식간에 다시 거리를 멀리 두고 김방경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지금부터 난 당신의 부하가 아니오!”

한마디였지만, 김방경의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김방경,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칼을 그대로 부장에게 휘둘렀다. 말에서 떨어지면서까지 겨우 몸을 피한 그는 나무 뒤로 달아났다. 따라가려 했으나 또다시 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사방이었다. 정확히 김방경을 향하는 것들인데, 결국 말이 대신  맞고 쓰러졌다. 바닥에 떨어지듯 내린 김방경은 얼른 남은 군사들로 하여금 방어진부터 치게 하였다. 정확하게는 수하들을 앞세우고 자신이 뒤에 서서 주변 경계에 들어간 것이다, 난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일으키질 못 하였다. 고개를 들라하면 화살이 날아드니 어찌 함부로 얼굴을 들 수 있겠냔 말이다. 바닥에 죽은 듯 엎드려서 눈만 멀뚱하게 뜨고 있었다.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오거라!”

김방경이 쓰러진 고려군의 칼을 뽑아 화살이 날아든 쪽으로 내던졌다. 그 순간, 신음과 함께 바닥이 울렸다. 그리고 사방에서 낯선 그림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둘셋넷다섯, 당장 눈에 들어온 자들만 해도 다섯이었고 시야로 들어오지 않은 발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방경과 고려군은 최대한 똘똘 뭉쳐서 사방으로 칼을 겨누었다.

“너흰 누구냐!”

김방경의 물음에 돌아오는 건 점점 좁혀드는 포위망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인원만 다섯에서 아홉이었다.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두른 터라 당장 외관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내 귀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분명 고려가 아닌 북방계의 말이었다. 뜻은 잘 모르겠지만, 몽골군에서 자주 나왔던 그 소리였다. 

“홍다구!”

김통정이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자신의 앞에 선 고려군사를 딛고 앞으로 돌진하더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부터 쓰러뜨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칼들이 부딪쳤고, 김방경의 움직임이 가장 분주했다. 칼들이 뒤엉켜 누가 누군지 분간이 어려웠고, 피비린내가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일단 얼굴부터 슬쩍 들어보았다. 주변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몸을 일으켰고,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달려 나갔다. 때마침 김방경에서 칼을 달려드는 자를 향해 온몸으로 밀어내었다. 칼은 힘없이 바닥에 내리꽂혔지만, 김방경에게 달려들던 그림자는 한참 멀리 날아가듯 밀려났다. 그걸 다른 고려군이 다가가 그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놓았다. 다시 칼을 주울 새도 없이 그림자들이 내 쪽으로도 다가왔다. 허공이었지만 칼의 무게를 견디며 휘둘렀고, 일단 당장 두 그림자는 눈앞에서 붙잡아둘 순 있었다.

“조심하시게!”

김방경이 내 앞으로 살짝 지나치자, 방금 보았던 두 그림자는 바닥에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지는 건 김방경과 고려군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결국, 우리 곁을 에워싸려던 낯선 그림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바닥에 쓰러뜨리고 말았다. 거기서 몽골군임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온 이도, 여태 주변에 숨어 있다가 다른 군사들에게 붙들려 김방경 앞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무릎을 꿇은 그에게 김방경은 발길질부터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칼은 거두어주고 손발로만 매섭게 그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딴 짓을 한 것이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투구는 벗겨지고 얼굴이 완전히 피로 범벅이 되었건만 반응한 것이라곤 그저 정신을 놓은 듯 웃기만 할 뿐. 김방경이 칼을 빼들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옆에 선 다른 고려군의 칼을. 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면서 높이 치든 칼을 내리쳤다. 그의 웃음은 바람에 먼지처럼 휘날리고 말았다. 김방경은 다시 말에 올랐다. 이번에는 나를 자신의 뒤에 앉혔다. 다시 정비를 해보니, 김방경과 나를 제외하면 멀쩡히 말에 앉은 군사들은 셋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바닥에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자, 가서 그놈부터 박살을 내야겠다.”

말울음이 하늘로 치솟았다. 우리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은 이곳에 처음 오기 전보다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