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땅이 울렸다. 김방경은 말고삐를 꽉 붙잡았고, 난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날이 선 바람이 얼굴을 스치웠지만. 그건 이곳에 있는 누구도 상관치 않았다. 지금은 그저 돌아가야만 했다. 목이 타들어 가고, 가슴이 조여왔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찢을 때쯤, 저 멀리 성이 보였다.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허공에서 날갯짓과 함께 울부짖고 있었다.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땐, 몽골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려군이 주변에 심은 나무처럼 자리를 꼿꼿하게 지키고 있었을 뿐.

“당장 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방경이 군영 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섰다. 그제야 군사들이 움직이는 모양새였지만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였다. 김방경은 말에서 뛰어 내려 당장 부장들부터 불러모았다. 그들은 모두 눈만 끔뻑일 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김방경 앞에 바위처럼 서 있기만 하였다.

“대장군꼐서 어떤 일이 있어도 군사들을 움직여선 안 된다고 했음죠.”

부장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김방경은 곧바로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네놈은 누구의 군사더냐!”

칼까지 뽑으려는 걸, 다른 부장들이 온몸으로 달려들어 김방경의 팔을 붙잡았다. 정작 맞은 부장은 손을 얼굴에 댄 채 여전히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나와 나머지 군사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단 군사들이 전열을 정비했고, 성문으로 움직였다. 활짝 열린 성문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성벽에 몽골군이 쏟아지듯 등장하여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장군의 명을 못 들었느냐!”

몽골군 부장이 앞으로 나와 칼을 빼들었다. 나머지 군사들의 칼과 화살은 모두 우리 쪽을 향하였다. 그들은 성벽을 따라 둘러서 자리를 잡은 터라, 어째 모양새가 포위된 것만 같았다.

“어디서 우리를 가로막는가!”김방경이 직접 앞으로 나왔다. 순간, 몽골군의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바뀌었는데. 모두 한 사람에게만 화살 방향이 바뀌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고려 군사들도 서둘러 무기를 꺼내 들었다. 활짝 열린 성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을 때, 창이 날아가 내리꽂혔다.

“닫으면 모두 죽을 것이다!”

김방경이 손을 털었다. 방금 창을 던졌던 그 손으로 칼을 뽑았다. 성문은 반쯤 닫힌 상태에서 멈춰 있었고, 몽골군은 일단 어떤 움직임도 보이진 않았다.

“대장군께서 실망하실 겁니다!”

몽골군 부장이 허리에 손을 얹고 성벽으로 바짝 붙었다. 그러자 김방경이 손에 있던 칼을 그쪽으로 힘껏 던졌다. 성벽에서 몽골군사 한 명이 떨어졌다. 방금 말했던 부장의 곁을 지키던 자였다. 그럼에도 김방경을 겨눈 화살은 단 한 발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궁수들의 팔이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히 김방경의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은은한 듯 제법 묵직하여 사람의 중심을 슬쩍 밀려나게 할 정도였다. 성벽을 할퀴는 듯 소리는 괴이하기까지 했다. “물러나지 않을 것이면, 홍다구를 불러내라!”

김방경의 호령에 성벽 위가 술렁였다. 다시 화살을 조준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홍다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성문 밖으로 혼자였다. 대신 오른손에는 핏물이 흥건한 머리채를 들고 은근히 흔들어대고 있었다.

“어쩐 일이신가. 조금 더 늦어질 줄 알았는데?”“네놈 수작에 호락호락 넘어갈 줄 알았더냐?”

“이거 어쩐다,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것을.”

시선이 모두 홍다구의 오른손으로 항하였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입도 채 다 물지 못 한 사내의 얼굴이었다. 곳곳에 상처와 핏자국이 가득하여 정확히 누군지 가늠할 순 없었다. 다만 홍다구 그가 직접 손에 쥔 것 자체로 추측은 가능했다.

“혹시?”

주먹을 쥔 김방경은 살짝 휘청거렸다. 그렇다, 이곳 탐라까지 내려온 이상 김방경은 모든 걸 주도적으로 해결해내려고 했다. 최소한 김통정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잡으려고 했건만. 만약 저 홍다구 손에 있는 수급이 김통정 것이 맞다면, 이 지나한 전쟁은 끝을 맺는 것이다. 김방경의 존재는 지금부터 완전히 사라진다. 그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보았다. 온몸이 떨면서도 조금씩 앞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감히 대원제국의 군사를 욕보인 자. 어서 무릎 꿇고 처분을 받아야 할 것이다!”

홍다구의 목소리가 성벽을 타고 하늘로 치솟았다. 주변에 있는 고려군들은 모두 떨기 시작했다.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이대로면 온전히 살아선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누구보다 내가 알고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죽다 살아나길 반복하니 이젠 살기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코끝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들었다. 한손으로는 들기 힘이 너무 들어갔다. 양손으로 꽉 붙잡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주변 군사들이 속삭이듯 만류하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목을 조여왔다. 그들도 알았을까, 주춤하던 이들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뭣들하는 건가!”홍다구의 목소리가 흐트러졌다. 김방경은 뒤를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도 뒤에서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가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겨누는 화살촉은 바로 머리 위에까지 닿았다. 창을 쥔 내 손은 힘이 들어가면서 점점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지금으로선 살고 싶다면 홍다구, 그를 분명히 지나쳐야만 했다. 이제는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절대 우리를 살게해줄 공간이 아니었음을. 홍다구가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을 것도.

“물러서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도 이 땅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김방경이 달렸다. 동시에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홍다구는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도 동시에 달렸고, 내 손에서 창이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계속)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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