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특허 논리, 기재부의 황당한 녹비왈자
면세점 특허 논리, 기재부의 황당한 녹비왈자
  • 김명현 기자
  • 승인 2020.07.20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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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의 면세점 논리는 '내 맘대로'?
지난해부터 꾸준히 반대해왔던 제주도 의견 무시하고 신규 특허, 누굴 위한 것?

반대 의견 거의 없던 부산, 경기는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제외...
같은 상황인데도 제주와 서울은 특허 부여... 대체 무슨 논리?

▲ 기획재정부는 최근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원회 회의를 열어 서울과 제주에만 각 1개씩 신규 시내면세점 특허를 부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Newsjeju
▲ 기획재정부는 최근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원회 회의를 열어 서울과 제주에만 각 1개씩 신규 시내면세점 특허를 부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제주에선 신세계DF가 이를 노리고 있다. 하단 사진=뉴시스. ©Newsjeju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반대해 온 제주특별자치도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기획재정부의 면세점 특허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문 투성이다. 이건 분명 제주를 무시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특정 대기업의 제주진출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거두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7월 10일, 김용범 제1차관의 주재로 개최됐던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원회 개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주도정은 원희룡 지사가 지난해부터 제주에 추가 면세점 특허 부여에 대해 누차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실제 올해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지난해와 같다는 입장을 명확히 기재부에 전달했다. 명확한 팩트다.

또한 제주도의회와 여러 제주시민사회단체, 소상공인연합회 측에서도 추가 면세점이 생기는 걸 반대했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이런 의견들에 아랑곳않고 대기업들이 입찰할 수 있는 신규 면세점 특허권 1개를 제주에 부여했다.

기재부가 이 특허권을 부여한 논리를 들여다보면 정확히 '녹비왈자(鹿皮曰字)'라 할 수 있다. 녹비(녹피)는 사슴의 가죽을 일컫는 말로, 사슴 가죽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가죽의 문양이 가로 왈(曰)자가 되기도 하고 날 일(日)자가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대입하면 이 논리에 맞고, 저렇게 대입하면 저 논리에 맞는다는 비유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표현된다.

올해 대기업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가능 지역은 조건을 충족한 서울과 제주, 부산, 경기 단 4곳 뿐이다. 이 중에서 기재부는 서울과 제주에만 특허권을 부여했고, 부산과 경기는 제외했다. 허나 특허권 부여와 제외 사유에 따른 근거가 희안하게도 같다.

기재부는 부산과 경기 지역에 대해선 "코로나19로 인한 영업환경의 악화와 지역 여건 등을 감안해 올해엔 신규 특허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동시에 기재부는 서울과 제주에 대해선 "코로나19로 매출이 감소하는 등 영업환경 악화 등의 우려가 있었으나..."라고 전제를 달았다.

그러면서 기재부는 "특허 부여 후 사업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이후의 면세점 시장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있고, 잠재적 신규 사업자에 대한 진입 장벽을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서울과 제주에 특허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 ▲기획재정부의 올해 신규 시내면세점 특허 부여 근거 설명 자료. 부산과 경기엔 불허, 서울과 제주엔 특허 부여의 사유가 빨간색 부분처럼 같다. 그런데도 서울과 제주는 파란색의 사유를 적용해 달리 판단했다. 왜 부산과 경기엔 같은 논리가 성립되지 않은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Newsjeju
▲기획재정부의 올해 신규 시내면세점 특허 부여 근거 설명 자료. 부산과 경기엔 불허, 서울과 제주엔 특허 부여의 사유가 빨간색 부분처럼 같다. 그런데도 서울과 제주는 파란색의 사유를 적용해 달리 판단했다. 왜 부산과 경기엔 같은 논리가 성립되지 않은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Newsjeju

기재부의 이러한 논리를 들여다보면, 앞서 말한 그대로 딱 '녹비왈자' 형국이다. 영업환경이 악화됐다는 조건은 서울과 제주, 부산, 경기 모두 다 똑같다. 허나 두 군데는 그런 이유를 들어 불허하고, 다른 두 곳은 그런 이유가 있는데도 부여했다.

'향후 시장 대응이나 신규 사업자에 대한 진입 장벽 완화'라는 이유가 부산과 경기 지역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인지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산에선 지자체나 의회, 시민사회 단체 등이 특허 부여에 대해 이렇다 할 반대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제주에선 1년 넘게 분명한 반대 입장을 펴왔는데도 기재부는 이를 못 본 척 했다.

결국, 이 논리는 롯데나 신라 등 기존 면세사업권의 '진입 장벽'을 허물어 제3의 대기업에게 면세사업권 물꼬를 터 줄려는 술책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면세사업권을 운영할 수 있는 제3의 대기업이라고 해봐야 '신세계' 외엔 마땅한 기업이 없다.

이미 한화나 두산 등의 대기업들이 면세사업권에 손을 댔다가 적자만 보고 물러났다. 기존 두 유통기업의 공룡인 롯데나 신라와의 송객 수수료 경쟁에서 버틸 수 없어서였다. 2015년에 면세사업권을 따냈던 이들은 모두 2019년 9월과 10월에 철수를 결정했다. 현대백화점 면세점도 있지만 이들 싸움에 끼어들 수준은 아니다.

그렇잖아도 신세계는 지난해 말부터 제3자를 내세워 몰래 제주 뉴크라운호텔 부지를 확보하고 면세 사업을 벌이려다가 들통나 미운털이 잔뜩 박혔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재단과의 계약이 만료돼 사업이 철회됐으나 신세계는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세계가 제주에서 면세사업권을 벌일 제3의 부지를 물색하고 계약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았다. 신세계 측도 "아직 특허심사까지 기간이 남아 있으니 고민 중"이라고 답하면서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신세계면세점.
신세계면세점.

현재 신세계는 서울 명동과 강남, 인천공항점, 부산에 시내면세점을 두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면세점 업계 매출이 급락했으나, 그 이전 2017년엔 제주에서만 1조 7000억 원의 매출이 신고된 바 있다. JDC 공항면세점의 매출이 포함된 것이지만 제주지역 시내면세점은 롯데와 신라가 싹쓸이 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신세계가 제주를 추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인천국제공항에도 터를 두고 있는 신세계는 오는 9월엔 면세점 임대료가 정액제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는 8월까지는 감면 혜택이 유지되지만 9월부턴 그간 감면받아 온 수십억 원의 혜택이 사라진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결과론적이지만, 이번 제주에 추가된 결정은 신세계에게 사업권을 내주려는 정부의 '대기업 봐주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롯데나 신라 측에서도 정부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두 업체 관계자 모두 "코로나19로 휴점까지 한 상황에 이건 다 죽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제주에선 지난해도 그랬고, 올해도 1월 초부터 반대 입장을 표명했는데도 굳이 특허를 부여한 건 제주도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이러한 생각은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모두가 반대하는데 굳이 허용하는 기재부의 진의가 의심된다. 지방 자치분권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이어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지역과 소통 없이, 신규 진출하려는 사업자의 이해와 세수 확충을 이유로 지역을 곤궁으로 밀어넣는 과거 적폐 정부의 행태를 거듭해선 안 된다"고까지 일갈했다.

제주도소상공연연합회에서도 강력히 반발하면서 특허 부여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회는 "역외 유출로 지역경제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시내면세점을 추가 허용한 건, 도민의사를 완전히 무시한, 상식을 벗어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지사도 지난해 4월 초 "사드 갈등 사태에도 대기업의 시내면세점은 매출이 증가했으나, 제주관광공사의 매출이 하락해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경영부도 위기 몰리는 곳이 따로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선 또 다른 대기업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고 (기재부에)의견을 제출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지난해 제주지역에 특허 부여를 보류했다. 이어 올해 4월에도 원 지사는 "지난해 이미 기획재정부에 부정적인 답변을 보낸 바 있는데, 면세점 대기업들의 지역환원도 부족하고 지역상권과의 균형 문제 등을 이유로 거부한 바 있다"며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입장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상황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제주지역 면세업계뿐만 아니라 제주경제가 전체적으로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처럼 제주에선 모두가 반대했는데도 기재부는 자기들만의 희안한 논거를 내세워 제주도민의 의중과는 전혀 상반되는 결정을 내렸다.

대체 누구를 위한 시내면세점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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