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106화, 김방경의 행방
[펜안허우꽈?] 106화, 김방경의 행방
  • 차영민 작가
  • 승인 2020.08.15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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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창은 정확히 성벽에 내리꽂혔다. 그것도 홍다구 바로 아래에. 몽골군들이 갑자기 성벽에 쏟아지듯 올라섰고, 홍다구는 그 뒤로 슬쩍 몸을 숨기고 말았다. 고려군은 김방경의 호령 아래 성문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성문을 돌파하라!”

김방경이 손짓하자 고려군은 마치 자신이 바윗덩어리라도 된 듯 번개처럼 성문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절대 꿈쩍하지도 않을 것만 같았던 성문이 흔들리는 것을. 어떠한 기구도 없이 오로지 군사들의 몸으로만 해낸 것이었다. 성벽 위에서는 화살과 돌, 창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그걸 피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았다. 성벽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는 것들을 가까스로 피하고 있었다.

“절대로 물러나선 안 될 것이다, 으악!”

그러나 말 위에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선 김방경이 갑자기 뒤로 휘청거렸다. 떨어지진 않았으나 중심이 흐트러진 것은 분명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어, 그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었으나 어렴풋하게 드러난 그림자로는 기다란 화살이 어깨를 관통해 있었다. 조금씩 그 윤곽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곁을 지켰던 고려군사들이 김방경을 둘러서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물려내며 다시 허리부터 꼿꼿하게 세우는 그였다.

“나를 보지 말고 성벽 너머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함께 치렀던 전투에서 가장 단호한 목소리와 손짓이었다. 잠시 주춤하던 고려군사들은 다시 성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씩 흔들리던 문은 굉음과 함께 서서히 안쪽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함성을 앞세워 안으로 재빨리 뛰어들었다. 나도 쏟아지는 돌을 팔뚝으로 겨우 걷어내며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이것은 반역이다!”

“누구든 앞길을 막으면 다 쓰러뜨려야 할 것이야!”

이미 안쪽에서는 고려군과 몽골군이 창과 칼을 섞고 있었다. 저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선 상태였다. 나도 차근차근 군사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달렸다. 머리 위로 창이 두 개 정도 지나쳤으나 살짝 몸을 숙인 채 빠르게 움직였다. 성문 근처 성벽을 따라 전투는 점점 극에 달했고, 민가를 사이에 두고서 양쪽이 서로 칼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홍다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김방경도 마찬가지였다. 몽골군은 분명히 곳곳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뒤로 조금씩 물러나는 태세였다. 

어느새 성벽과 성문은 고려군이 완전히 장악했고, 소수의 군사들만 남긴 채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지붕이 반 이상 쓰러진 민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지독한 썩은 내가 풍겼는데 대부분 언제인지 모를, 까만 송장들에서 풍긴 것들이다. 얼핏 보아도 노인부터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눈도 채 감지 못 한 자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심지어 짐승들도 삐쩍 말라서 뼈가 거의 으스러지기 직전까지 모습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주변을 똑바로 쳐다보고 다닐 수가 없었지만. 일단 누가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발을 재촉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빠르지는 않게 주변 경계를 했다. 

“도대체 장군께선 어디 가신 건가.”

내 바로 앞에 선 부장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눈알을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리 햇볕이 머리 위에서 내리쬔다 할지언정, 뿌옇게 서린 먼지 때문에 조금 더 먼 곳까지는 볼 수가 없었다. 산발적으로 숨어있던 몽골군들이 위협을 하긴 했으나 재빨리 다른 곳으로 피하기 일쑤였다. 점점 안쪽으로 들어섰지만, 사라지는 건 인기척 다가오는 건 고요함이었다, 바람조차도 조심스럽게 우리 곁을 지나치는 모양새였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쯤은 거의 김통정이 만든 궁과 가까운 지점이었다. 점점 뿌옇게 올라오는 흙먼지 때문에 당장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한손은 칼, 다른 손을 입을 막으며 계속 나아갔다.

“수상하다. 놈들이 우릴 몰아넣는 게 아닌가.”

조금 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던 그 부장이다. 모두 그의 목소리를 귀에 담았고 발걸음을 더욱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려던 그 순간, 사방에서 다가오는 그림자들을 발견하였다. 무기를 다시 들었을 땐 이미 우리 목에 그들의 칼끝이 바짝 닿아있는 상태였다. 칼자루를 꽉 쥔 손은 곧바로 힘이 풀렸고, 양팔은 줄로 꽉 묶이고 말았다. 그 와중에 몸부림과 함께 벗어나려던 군사는 칼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도 다른 이들과 함께 팔이 묶인 채,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끌려가듯 향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가, 의문이 생기기가 무섭게 목덜미에 강한 충격이 오면서 눈앞에 갑작스럽게 어둠이 드리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뿌연 먼지 대신 캄캄한 어둠이 버티고 있었다. 팔은 물론이고 다리도 나무 의자에 꽉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이는 주변에 고려군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조금 더 살펴보다가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군 뿐만 아니라 몽골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나처럼 완전히 묶인 상태로. 

“자, 이제 정신이 드나?”

내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왔다. 고개를 슬쩍 들어올리자마자 다시 한 번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고려군과 몽골군도 아닌 삼별초. 김통정 곁을 지키던 수하 중 하나였다. 얼굴과 목, 어깨까지 온통 피투성이였지만. 살기어린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참, 네놈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나를 내려다보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이들이 눈앞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몽골군과 고려군이 들어선 성 안에서.

“계속 눈을 굴려도 소용없다. 네놈이 살길은 정녕 없을 테니.”

웃음을 거둔 그는 내 목에 칼을 겨누었다. 동시에 다른 삼별초 군사들이 나타나더니 창으로 주변의 고려군 몇몇을 그대로 쓰러뜨리고 말았다. 비명도 채 내지르지 못 할 만큼 순식간이었다. 

“내 질문은 간단하다. 김방경, 어디에 있는가?”

내용은 간단했지만 답은 없었다. 우리도 알 수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나와 같은 질문을 받은 자들은 방금처럼 저런 꼴을 당했던 모양이다. 입을 꾹 다물었다. 눈도 질끈 감으려고 했으나, 그의 손이 턱을 꽉 쥐였다. 당장 으스러버릴 듯 강한 힘이었다. 

“버티면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순순히 고하면 고통 없이 보내줄 것이고.”

식은땀조차 흐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여기서 벗어나는 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버텨온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답은 없었다. 그가 던진 질문에도 방금 내 스스로 떠올린 질문에도. (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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