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미 정찰기 격추사건 직후… 국무부, 기밀문서 공개

미국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지난 1969년 북한이 미 정찰기 EC-121기를 격추시켜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북한에 대한 군사보복 공격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북한 요격기가 이륙한 비행장을 폭격하는 방안을 비롯해 원산항 봉쇄 및 폭파, 잠수정 어뢰를 이용한 북한 군함 공격 등의 구체적인 군사적 대응 방안을 검토했으며 북한이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대응에 나설 경우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는 군사적 옵션과 외교적 대응 방안을 놓고 최종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미 국무부가 4일 기밀해제한 당시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이날 기밀해제된 외교문서 ‘미국의 대외관계, 1969~1972년, 한국편’은 모두 489쪽 분량으로 닉슨 행정부 시절의 한반도 외교정책과 한국의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응 등이 포함돼 있다.

미 정찰기 격추사건은 1969년 4월14일 청진 동남쪽 공해상에서 북한의 미그기가 정찰활동 중이던 미군의 EC-121기를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시킨 사건을 말한다.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NSC 회의에서 군사적 대응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으며 이후 닉슨 대통령에게 올라온 외교안보 부처의 각종 보고서에도 군사적 대응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중앙정보국은 대북 군사보복을 가할 경우 북한 지도체제를 내부적으로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북한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알렉산더 헤이그 백악관 군사고문은 NSC 회의 당일 “군사적 대응을 할 경우 대통령이 최악의 상황에 대처할 의지와 역량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키신저 보좌관도 “외교적 대응은 결론내려진 군사적 옵션에 따라 결정돼야 하며, 군사행동과 외교적 대응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베트남전을 수행 중이던 미국은 한반도에서도 동시에 전면전을 벌일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데다, 한국 정부가 전면전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결국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공해상에서 미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정찰기들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미 정찰기 격추사건 외에도 주한미군 철수, 베트남전 파병, 미·중 관계정상화 등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대응을 포함해 1971년 한국 대선과 72년 7·4 남북공동성명, 10월 유신 등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닉슨 행정부의 시각 등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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