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 니카라과의 선거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바로 오는 5일 실시될 니카라과 대선에서 지난 1980년대 냉전체제의 상징이자 전설적 공산혁명가인 다니엘 오르테가 전 대통령의 부활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노골적인 반미주의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중심으로 중남미에 형성되고 있는 반미 좌파 연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은 니카라과에 '반민주주의적 독재자'인 오르테가가 집권하게 될 경우 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적극적인 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 29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오르테가의 지지율은 34.4%로 변함없는 선두를 달리고 있어 그의 정권 탈환 가능성은

▲ 반미 좌파 오르테가, 중도우파 흡수...변화인가 술책인가?

냉전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했던 지난 1979년, 산디니스타 공산혁명을 통해 니카라과에 공산주의의 씨앗을 뿌린 오르테가는 미국과 질기고 긴 악연을 갖고 있다.

1980년에 집권, 소련과 동맹을 맺고 공산혁명을 주도하던 그는 1982년 미국이 지원하는 콘트라 반군의 반격을 받아 8년 동안의 긴 내전을 치뤘다. 이 길고 참혹했던 전쟁은 미국에게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이란 역사적 오명을, 니카라과에게는 6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재기할 수 없는 경제적 침체를 안겨줬다.

이에 '냉전의 공포'로 남은 그의 복귀에 미국은 질색을 하고 나섰다.

한편, 여전히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오르테가는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변했는데 정작 미국은 과거의 냉전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태도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그의 '변화'를 대변하듯, 오르테가가 이끌고 있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은 최근 유래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의회에서 이미 상당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FSLN이 아르놀도 알레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도우파 헌정주의 자유당(PLC)와 연합을 형성한 것이다.

PLC의 보수파 당 지도부는 볼라뇨스 현 대통령이 알레만 전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가택연금조치하자 현 대통령을 제명처분하고 산디니스타와 손을 잡았다. 이같은 유래없는 '우파껴안기'와 함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르테가의 러닝 메이트가 미국을 등에 업고 그를 대상으로 악몽의 내전을 치뤘던 콘트라 반군의 수장 하이메 모랄레스라는 점이다.

오르테가는 심지어, 선거막판 유세현장에서 민간기업들을 존중하고 자유무역을 지지할 것을 공약했다고 미 LA 타임즈 인터넷판은 1일 보도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포용적 태도와 유연함이 정권 탈환을 위한 '표심얻기용 기만'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시각 역시 만연하다.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오르테가가 '종교에 귀의한 듯한 너그러운 태도'로 모든 이들에게 무지개빛 약속만 남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현지 소재 싱크탱크 소장을 인용,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혁명가인 그는 기회주의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오르테가는 지난 2000년 FSLN과 보수당 PLC와의 '연대(el Pacto)'를 댓가로 종신의원직(lifetime paliamentary seats)과 면책권을 얻었을 뿐 아니라 국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미 외교협의회(CFR)는 1일 인터넷판을 통해 보도했다.

CFR은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 이 연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약화시키고 이를 오르테가의 세력으로 포섭했다고 전했다.

CFR은 올 대선에서 오르테가의 유력한 경쟁상대이자, 친미주의자 볼라뇨스 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성한 우익 니카라과 자유동맹소속 몬테알레그레 후보의 발언을 인용, "오르테가는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내세운 채 그 속부터 깡글히 파먹고 있다"고 전했다.

CFR에 따르면 '연대'는 의회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 지난 3차례 대선에서 35%의 지지율로 당선에 실패한 오르테가를 위해 기존의 45% 지지율 확보라는 당선기준을 35%로 낮춘 것으로 밝혀졌다.

▲ 줄다리기하는 부시 VS 차베스

오르테가의 당선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미국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데이나 로라바커(공화, 9선, 캘리포니아주) 미 하원의원을 포함한 공화당 의원 4명은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오르테가가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니카라과에 현금 지급을 봉쇄하는 계획을 준비할 것"을 요청, 오르테가 정권의 복귀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지원금을 미끼로 국정에 간섭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니카라과의 선거에 이같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오르테가의 당선이 최근 중남미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반미좌파정권 도미노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지 5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중남미 관계는 냉전 종식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잇따른 대외정책 실패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 중남미의 반미세력 확산은 또다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불안감을 부채질하듯, 오르테가는 오일머니를 통해 중남미 좌파국가 선봉을 이끌고 있는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절친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차베스가 이끄는 반미 '선의 축'에 가담할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해 왔다. 또 차베스 대통령은 '우호가격'이 적용된 저렴한 석유공급 계약을 니카라과에 안겨주고 오르테가에 대한 지지를 대대적으로 홍보, 이에 보상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이같은 노골적인 지지는 국내정치에 개입한다는 빈축을 사고 있지만 오르테가가 집권하게 될 경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미국의 협박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재등극을 가장 부채질 한 것은 무엇보다도 니카라과의 구제할 수 없는 빈곤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친미정권 수립 이후에도 니카라과의 일자리 부족은 여전했으며 남미에서 아이티 다음으로 가장 빈곤한 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연 국민소득이 910달러인 니카라과는 4%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져 빈민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공산주의 혁명으로 빈민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오르테가의 재등극은 필연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 오르테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모든 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오르테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고 그의 지지율도 연속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실제 그가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코스타리카 리서치 기업과 니카라과 현지 언론이 실시한 별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거를 일주일 남짓 앞둔 오르테가의 지지율은 각각 34.4%,33.8%로 나타나 당선을 위한 35% 확보에 못미치고 있다. 이에 부동표 8%가 당선의 관건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하고 있다.

만약 오르테가가 오는 5일, 1차 투표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경우, 그의 당선 가능성은 급격하게 낮아진다.

통신에 따르면, 오르테가 대통령이 현재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집권보수성향의 표심이 친미 몬테알레그레 후보와 친기업 성향을 가지고 있는 호세 리조 전 부통령으로 각각 양분돼 있기 때문인데, 결선 투표에서 이들의 표가 집결될 경우 오르테가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망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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