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공동체 치유 방안은 없고 재정적 지원만..." 질타
강정마을회에 약한 제주도정 "마을회가 원하는대로 해야 해서..." 변명 일관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3일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회복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 체결 동의안'을 심사보류 처리했다. 사진 상단 왼쪽부터 이상봉 위원장과 강철남, 문종태, 고현수, 강민숙, 이경용 의원. ©Newsjeju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3일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회복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 체결 동의안'을 심사보류 처리했다. 사진 상단 왼쪽부터 이상봉 위원장과 강철남, 문종태, 고현수, 강민숙, 이경용 의원. ©Newsjeju

무려 14년이 넘는 제주해군기지로 인한 길고 긴 갈등이 마침내 끝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듯 했지만, 역시나 완성형이 아닌 반쪽짜리였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상봉)는 3일 제395회 임시회 3차 회의를 열어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회복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 체결 동의안'을 심사 보류 처리했다.

심사보류된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하나는 상생협력 협약을 위한 동의안을 먼저 처리하고 지난 31일에 공동선언식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그 절차를 거꾸로 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또 하나는 이번 협약서 내용엔 재정지원 사업만 있을 뿐, 정작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업들이 없다는 점이 노출됐다. 행자위 의원들은 반대주민들이 겪어 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유하기 위한 사업이라도 들어갔으면 했지만, 제주도정이 이를 전향적으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철남 의원(더불어민주당, 연동 을)은 "동의안 가부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언식을 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선언식 때 협약서가 체결된 것이냐. 아니지 않느냐"며 절차가 거꾸로 됐음을 질타했다.

이에 제주자치도 오성율 강정공동체사업추진단장은 "선언식과 협약식은 별개의 건"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이후 이어진 비슷한 질문에서도 같은 답변으로만 일관했다. 그러자 고현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그건 궤변이자 논리적 비약"이라며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답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상봉 위원장은 제주도정이 제출한 당시 상생협약서를 요약한 문서를 읊어내려가며 행정의 태도가 '궤변'임을 입증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 심사도 안 했는데 올해 이미 50억 원이 편성됐다. 도의회 의장에 대한 사과를 강정마을회에서 결정했다. 이게 말이 되나. 절차가 이게 맞느냐는 거냐"고 호통쳤다.

이어 강철남 의원은 "협약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지역발전계획 지원협약서라고 하니, 재정지원사업 외에도 반대주민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유와 사법처리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갔으면 하는 건데 그게 없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냐"고 꾸짖었다.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측이 31일 오전 10시 강정크루즈터미널 앞 주차장에서 진행된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행사장에 진입하려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행사 주최 측과 실랑이가 빚어지기도 했다.
▲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측이 31일 오전 10시 강정크루즈터미널 앞 주차장에서 진행된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행사장에 진입하려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행사 주최 측과 실랑이가 빚어지기도 했다.

강 의원이 "강정마을주민들 중 몇 명이 트라우마센터를 이용하고 있느냐"를 묻자, 오성율 단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 의원은 "이 협약서 문구가 상생협력이라고 돼 있다. 상생협력이 시설물 만들어주고 일자리 고용해주는 돈 몇 푼 주는 걸로 다 해결되는 거냐"고 꼬집었다.

오 단장이 "마을회가 요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자, 문종태 의원(더불어민주당, 일도1동·이도1동·건입동)은 "마을회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을 행정에서 보완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질타했고, 오 단장은 "마을회와 얘기해보겠다"는 수동적인 답변 태도를 취했다.

이와 함께 문종태 의원은 동의안에 명시돼 있는 250억 원(5년간 매년 50억 원)의 금액을 문제 삼았다.

문 의원은 "이미 제주특별법 등에 강정마을 지원사업들이 있는데 이렇게 매년 50억 원씩 명시해 둘 필요가 있느냐"며 "이러면 다른 마을에서도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겠나. 이게 선례가 된다. 이건 곧 지방재정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자 오 단장은 "마을에선 지사가 바뀌면 지원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심리적 불안감이 있다며 그 부분을 감안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문 의원은 "강정마을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는거냐. 이건 어떤 지사가 와도 추진 가능한 사업들"이라고 맞섰다.

그제서야 제주도정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강정마을회와 더 논의해보겠다고 답했다. 허법률 기획조정실장은 "지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저희도 고민이 많다"며 "10차례 넘게 회의를 진행했지만 강정이라는 특수성과 마을에서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부서의 추진의지 등을 고려해 결정한 사안이다. 다만,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면 안 되니 이 부분에 대해선 한 번 더 살펴보고 마을에 다시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이상봉 위원장은 "협약식과 선언식을 따로 하면서 마을에 또 상처만 냈다. 진정 상생화합이라면 마을회가 반대주민들을 더 포용하고 행정에선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협약 내용이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될 수 있도록 (다시)접근해달라"고 당부했다.

결국 이날 상생협력 협약 체결 동의안은 심사보류됐고, 다음 회기에서 다뤄지게 됐다.

원희룡 지사(가운데)와 좌남수 의장(왼쪽),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이 31일 개최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치켜 올렸다.
▲ 원희룡 지사(가운데)와 좌남수 의장(왼쪽),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이 31일 개최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치켜 올렸다.

한편, 이경용 의원(국민의힘, 서홍·대륜동)은 행자위 의원들과 강정마을회 간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길 바란다고도 주문했다.

이경용 의원은 "사실 이 문제가 기금 지원으로는 법 상 부지 매입이 어려워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 이유가 크다"며 "행정에선 강정마을과의 신뢰회복을 위해, 주민들의 수익사업을 지원하고자 마련된 것이니만큼 이번 기금조성 방안을 내놓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다른 민주당 도의원들도 이경용 의원의 의견에 동의는 하면서도 반대주민들의 의견과 그들을 가능한 포용할 수 있는 대책들이 더 담겨져 있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같이 상정된 '강정마을 커뮤니티센터 운영 사무의 민간위탁 재계약 동의안'은 원안대로 가결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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