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희생자, 네 번째 직권재심 20명 전원 '무죄'
합동수행단, 직권재심 총 80명 무죄···5월4일 7번째 직권재심 청구 30명 '계획'
제주지법 "명예 회복의 길 아직도 멀고, 많아"···"관심 가져달라" 당부하기도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오늘 이 자리는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이지만, 유족분들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이제는 말을 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달랐다. 검사는 피고인을 향해 무죄를 구형하고, 재판부는 이곳의 주인공은 '피고'라며 최대한 발언을 자제했다. 피고인들은 판사, 검사, 변호인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20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4.3 직권재심 청구자 20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판결했다. 이번 무죄 선고로 '제주 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그동안 청구한 총 80명 전원이 뒤늦게나마 억울함을 풀게 됐다.

이날 피고인 20명은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피고인 전원은 현재 사망해 유족들이 재판에 참석했다.

"모두 돌아가셨지만, 피고인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호명하겠습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고인들의 이름을 차례로 읽어나가며 재판 시작을 알렸다. 

'제주 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 (이하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국가공권력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무고한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바란다"며 재판부에 전원 무죄를 구형했다. 

변호사 역시 "피고인들은 공소사실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체포 과정도 적법하지 않아 무죄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제주지법 제4형사부는 "피고인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재판은 증거 제시가 없다. 검찰도 명예 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 무죄를 구형했다"며 "피고인들은 각각 무죄"라고 판시했다. 

▲ 무죄 판결 후 재판부는 고태명 어르신을 향해 "편히 주무시길 바란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Newsjeju
▲ 제주지법 제4형사부 장찬수 부장판사 ©Newsjeju

무죄 선고 후 재판부는 "앞으로도 직권재심을 통해 명예 회복이 되어야 할 분들이 아직도 멀고, 많이 남았다"며 "오늘 온 유족뿐만 아니라 제주 4.3사건에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또 "선고는 마쳤지만, 유족들의 말씀을 듣겠다"며 "이 자리를 마련한 취지는, 재판이 진행 중인 가장 공적인 법정 안에서나마 유족분들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으면 발언 기회를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부친이 4.3 당시 희생된 아들인 유족 A씨는 마이크를 손에 쥔 채 그동안 간직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A씨는 자신이 1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당시 부친은 도내 마을에서 경찰과 치안유지를 담당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 의해 잡혀갔다고 했다.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알 길이 없어 제사를 부친 생일날에 지낸다고 언급했다. 

"아버님 얼굴이 기억나세요"라는 재판장의 물음에 A씨는 "기억이 난다. 아버지 생전 사진을 확대 출력해서 갖고 다닌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아버님이 마을을 위해 일하다가 결국 억울하게 재판받았는데, 내막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들은 적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 답변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재판부는 방청석을 향해 "여러분 들으셨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잘 새기셔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라고 말했다.

유족 B씨는 부모와 형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그의 나이 5살,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B씨는 친척 집과 이곳저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해 왔다고 회상했다. 

B씨는 "(무죄 판결을 내려줘서) 감사하다"고 재판부에 말했다. 재판부는 B씨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사유는 무언가 베풀어준 것이 없고, 그동안 억울한 영겁의 세월을 보낸 잘못된 과거를 이제야 바로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더 발언하고 싶은 유족들이 있으면 마음껏 해달라. 이제는 말을 한다고 잡혀가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평온해졌으면 좋겠다"며 유족에게 발언을 거듭 권유하기도 했다.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가 피고인들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고 있다.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가 피고인들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고 있다.

한편 재판 종료 후 유족과 4.3단체 관계자들은 법정 안에서 '제주 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을 향해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제주4·3위원회로부터 권고받은 직권재심 업무 수행을 위해 2021년 11월24일 출범한 '합동수행단'은, 정부가 권고한 4.3 수형인 총 2,530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잇고 있다. 

합동수행단은 현장 조사와 고증 등을 통해 4.3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하다 희생된 이들에 대해 직권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무죄'를 구형하고 있다.

현재까지 재판을 통해 총 80명의 희생지가 누명을 벗었고, 오는 4일 오전 4.3사건 수형인 30명에 대해 7차 직권재심 청구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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