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방검찰청 문승기 검사

▲ 문승기 검사 ©Newsjeju
▲ 문승기 검사 ©Newsjeju

작년 3월 태어난지 사흘 된 아이를 산후조리원에 버려두고 잠적한 30대 부모의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출생신고조차 되지 못해 이름도 없던 이 아이가 올해 4월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주 지역사회의 여러 분들이 도움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에 그 따뜻한 마음을 독자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작년 12월 24일 '아동학대' 사건을 막상 맡고 보니, 구속기간 내에 아이를 버린 부모의 혐의를 밝힐 증거를 수집해서 정리하고 기소하는 절차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이 가고 마음이 닿는 일은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이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는 아이'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제주도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과 관계 공무원에게 연락하여 아이의 환경을 알아본 다음 아이를 맡아 보호 중인 영아원을 찾아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가 겪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고, 얼굴과 몸에 아토피가 심했지만 그에 맞는 의약품을 처방받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아동수당이나 양육수당 등 사회복지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아이를 처음 맡은 산후조리원 직원분들이 부모 대신 아이를 한 달 동안 잘 돌보아 주었고 아이를 떠나보내면서 십시일반 옷을 선물해줄 정도로 애정을 듬뿍 담아주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 영아원에서 아이를 맡아 여러 측면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의 신체와 정서에 문제가 없도록 보호하고 길러주었습니다.

구속된 부모를 수사하는 도중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가족간에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할 법률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소송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고, 집에서 부르는 아이의 이름도 짓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에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싫어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인 줄로만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검사가 직접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법률 규정대로 검찰에서 직접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주고 신속하게 필요한 지원을 받게해줄 생각이었습니다.

부모의 말을 듣고 보니, 검찰에서 직접 출생신고를 하는 것보다는 친부모가 아이의 부모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제주지방변호사회에 설명하고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드렸더니, 고맙게도 변호사 한 분이 선뜻 나서 무료로 부모의 가사소송을 대신해주겠다고 하였고 아이의 출생신고까지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부르기도 좋고 미래에도 도움이 될 만한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작명'이 쉽지가 않아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제주대학교에 작명을 도와주실 만한 분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철학과 교수 한 분이 흔쾌히 도움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제주지방법원에서는 가사소송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여 필요한 결정을 내려주었고, 제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제가 일하는 제주지방검찰청에서 여러분들이 뜻을 모아 아이에게 필요한 의료비용과 양육비용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형사재판은 지난 2월 끝났습니다. 법원에서는 아이를 버린 잘못을 뉘우치고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부모를 믿어주고 아이를 키울 기회를 주기 위하여 집행유예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는 비록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이후 제주 지역사회 많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 속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지난 4월에는 출생신고도 마쳐 '세상에 없는 아이'에서 정식으로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제주 지역사회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이 아이가 부모의 품에서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제주지방검찰청 문승기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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