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수사팀장 고명균 경감 인터뷰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예요. 지구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경찰일과도 비슷해요. 한순간 범인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해요"

'제 78회 경찰의 날'을 맞아 찾은 제주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수사팀장 고명균 경감(58). 그는 책임감 있는 경찰이자 열정적인 마라토너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 결국 해내는 투지를 가지고 있었다. 경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 이제는 '마라토너 경찰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를 만나봤다. 

▲  ©Newsjeju
▲제주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수사팀장 고명균 경감. ©Newsjeju

고 경감은 1990년 25세의 나이로 경찰일을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경찰이 됐냐는 질문에 "제복이 멋져보여서"라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지만 '가정폭력 전문수사관 전국 1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 경찰이다. 2004년에는 전국 최다 원조교제 검거로 본청 특진, 2012년도에는 성매매 공무원 30여 명을 잡아들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어쩌다 마라톤에 빠지게 됐을까.

"2015년 2월에 여청수사팀에 발탁됐어요. 그 당시에는 2인 1조로 3교대 근무했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셌어요. 후배 경찰과 둘이서 일했기 때문에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고 체력을 보강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습삼아 당직 근무할때 경찰서 뒤쪽 주차장을 20바퀴 정도씩 뛰기 시작했어요. 그 후 마라톤 대회라는게 있길래 '한번 나가볼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거죠"

제복이 멋져서 경찰일을 시작했던 것처럼 마라톤도 처음엔 10km 코스로 가볍게 뛰었다. 하지만 한번 하면 제대로 하는 성격 덕분에 벌써 10km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마라톤 5회를 완주했다.

"뛰다보니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었어요. 한계도 느끼고 성취감도 느꼈어요. 어떤 마라톤에서는 2km 지점을 남기고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어요. 1km 정도는 다리를 절면서 갔죠. 피니시 라인이 보이니까 또 힘이 나서 전력질주하게 되더라고요"

서울까지 올라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던 그는 세계 각지로 눈을 돌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6대 마라톤 중 시카고 마라톤과 베를린 마라톤은 이미 정복했고 이제 그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뉴욕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뉴욕 마라톤을 완주하면 그가 목표로 하는 6대 마라톤 완주의 꿈의 절반을 이루는 셈이다. 

"풀코스도 뛰어보고, 산악 마라톤, 울트라 마라톤도 뛰어보고 하니까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던 중 세계 6대 마라톤이 있는 걸 알게되고 마라톤만 전문적으로 보내주는 여행사를 통해 신청하게 됐어요. 국제대회에 나가면 인종부터 문화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뛸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  ©Newsjeju
▲지난해 베를린 마라톤을 완주한 고명균 수사팀장. ©Newsjeju

처음부터 잘 뛰었던 것은 아니다. 늦은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한 만큼 체력적 한계에도 부딪혔지만 그때마다 그냥 묵묵히 달릴 뿐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경찰관들은 체력장이라는게 있는데, 애향운동장 4바퀴 뛰니까 위산이 종이컵으로 3분의 1정도 나오기도 했어요. 그때 다리에 쥐가나서 직원이 주물러주고 그랬죠"

1km를 달리는 것도 힘들던 그가 이제는 42.195km를 내내 달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험지' 마라톤에 언젠간 참가하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5박 6일 동안 사하라 사막 등 험지 500km정도를 달리며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마라톤이다.

고 경감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냥 달린다고 말한다. 마라톤에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한계를 극복하고 나면 뭔가 정복했다는 성취감을 느껴요. 달리다가 너무 힘들땐 '내가 이걸해서 무슨 이득이 있나. 다음부터는 안해!' 하다가도 완주 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또 어떤 대회가 있는지 찾아보게 돼요"

가족들의 응원도 그의 도전을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를 닮은 딸은 아빠를 따라 2번 정도 마라톤에 참가하더니 내년에는 동아마라톤에 같이 나갈 예정이다. 직접 뛰는 것엔 관심이 덜한 아내와 아들은 열심히 응원을 맡고 있다. 지난해 동아마라톤에서는 아내가 고 팀장을 응원하기 위해 같이 서울로 올라가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했다.

"아내가 출발할 때 봐주고 사진도 찍어줘요. 끝날 때도 올림픽공원에 와서 (제가) 들어오는 걸 보죠. 이번 동아마라톤 때 골인 지점에서 아내가 보이니까 조금 더 힘이 솟아서 엄청 뛰었어요"

▲  ©Newsjeju
▲2023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고명균 수사팀장. ©Newsjeju

경찰일을 하면서 고 경감의 달리기가 빛을 발한 순간도 있었다. 2018년, 초등학생을 어플로 불러내 유사강간한 20대 피의자를 직접 발로 뛰어서 잡았던 순간이 그때다. 당시 피의자는 피해자를 유사강간한 걸로 모자라 SNS상에서 이미 파악한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또 다른 친구를 불러오라고 협박하던 악질이었다. 

"피의자가 사용했던 채팅 어플이 일본 회사였기 때문에 압수영장을 신청할 수 없었어요. (외국 회사라) 영장 집행이 불가하더라고요. 그래서 피해자 부모님한테도 양해를 구하고 피해자인 것처럼 채팅해서 유인했어요. 유인 장소로 온 범인을 뛰어서 잡았는데 얼마안가서 잡혔어요" 당시 그는 50대였지만 꾸준히 달린 덕분에 20대 피의자를 금방 붙잡을 수 있었다.

그는 경찰일과 마라톤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결국 둘 다 '지구력 싸움'이라는 것.

"수사 업무에서 피의자가 특정된 경우도 있고 안된 경우도 있어요. 씨씨티비를 뒤져보고 DNA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데 어느 한순간에 놓치면 범인을 검거 못할 수도 있고, 검거 못하다 보면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뒤져봐야 되는 경우도 있어요" "달리기도 비슷해요. 방심하면 페이스를 놓치거나 호흡 조절이 힘들어져요" 

▲  ©Newsjeju
▲베를린 마라톤에서 고명균 수사팀장. ©Newsjeju

38년 간 누구보다 높은 책임감과 끈기로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 온 그는 어느새 은퇴를 앞두고 있다. "내년에 명예퇴직할 계획이예요. (청소년계에서) 초창기부터 시작했으니 여기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혹시 아쉽진 않냐는 질문에 "제2의 인생을 살아야죠"하는 대답에서 40여 년의 세월을 얼마나 올곧게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도 열정적으로 근무해 온 그에게선 후회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과 확신이 엿보였다.

경찰관으로서의 고명균은 이제 끝맺음 짓지만 인생을 마라톤 경기로 따지면 이제 겨우 3분의 2 지점으로 달려나가는 중이다. 여생은 멋진 남편, 아버지 그리고 마라토너로서 자신과의 싸움도 끝까지 이어나갈 계획이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