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8년 2월 12일)

구름이 짙어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존자암(尊者庵)에 머물렀다.

지난번 제주성 안에 있을 때,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면 산허리에 흰 구름이 항상 감겨있었다.
지금 깨달으니, 나도 흰 구름 밖에 있는 것이다.

드디어 장난스런 시를 지어 백운명편(白雲名篇)으로 이름 하였다.


백운의 흰 색깔은 비교할게 없고
백운의 높은 것도 헤아릴 수 없다네.
하계에서는 오직 백운이 높게 보이지만
백운 위에 사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네.
백운 위에 사람은 어찌 스스로 알랴?
머리 들어 하늘 문을 바라보니 만 길일세.
활달한 가슴 속에 불평사가 있다면
하늘 문을 두들겨 온통 씻어 내려 버리게나.

밤에는 스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하였다.

말이 노인성(老人星)에 미치자 스님이 말하기를 "이곳에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늦가을과 이른 겨울에 노인성이 새벽 밝아 올 무렵 남극 쪽에서 겨우 몇 길쯤 나왔다가 진다고 하는데, 유다른 별이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노인성은 곧 남극 하늘에 있고, 자산(玆山)에 올라야 바라볼 수 있으며, 크기는 달의 둘레에 필적한다고 하였다.

이제 스님의 말을 들으니, 전후하여 본 바 없다 하므로, 내 하늘 가운데 걸터앉아 사해(四海)로 하여금 장수하는 땅으로 삼고자 한다.

스님이 말하기를 "여름밤이면 사슴들이 산골짜기 물을 마시러 옵니다. 가까이에 산척(山尺)이 있어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산골짜기 물가에 잠복하였습니다. 사슴무리가 모여오는 것을 보니 숫자가 천백 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 제일 큰 사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색깔이 하얀색이었고, 그 사슴의 등 위에 백발노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산척은 놀라고 괴이하여 범하지를 못하고, 다만 뒤떨어진 사슴 한 마리를

신선의 산은 만 길이나 높아서
그 모습이 푸르고 깊은 바다까지 이르네.
그 가운데 학 머리새 노인이 있어서
노을을 먹으며 흰 사슴을 타고 다닌다네.
길게 두세 번 휘파람을 불자
바다에 뜬 달은 천개의 봉우리를 비춰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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