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에서든 연말, 연초에는 인사이동으로 무언가 어지럽고 어수선하다. 대기업의 승진, 전보 등 인사가 일간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도 하고, 이런 인사로 주식시장이 요동치기도 하며, 심지어는 다음해의 경제전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며 글을 열고자 한다.

서귀포 칠십리축제 때 쓸 대나무가 필요했다. 무려 삼 십여 개나 말이다. 게다가 아주 굵은 녀석들만으로 골라야 했다. 어떻게 대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서 잘라야 하며, 자른 대나무를 어떻게 옮겨야 할까? 막막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 “기획(企劃)”이 필요할까?

아니다.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내가 할 수 없는, 잘하지 못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게 경영학, 나아가 행정학에서도 말하는 “아웃소싱(외주, Outsourcing)"의 개념인 것이다.

나는 “도움”이란 말과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실 이런 말을 아주 어렸을 적에 배웠지만 본격적으로 하기까지에는 무려 30년 정도가 걸렸다. 물론 이 말들을 사용하는 것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웠다. 즉 “도움”을 받았다.

잠시 내가 도움이란 단어의 의미를 깨닫게 된 중대 사건을 소개하고 다시 대나무 자르기 얘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친구가 결혼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말이다. 이 녀석은 참으로 고생도 많이 했고, 직장생활도 고등학교를 갓 나오자마자 시작했으니 당시 직급도 과장에 직장인 12년차였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이 친구와 제부도로 놀러갔다. 그런데 이 녀석. 우리 아이를 위한 선물을 사가지고 왔다. 캣치볼 놀이를 위한 장난감. 그런데 엄청난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 캣치볼, 이거 집에 있는데. 이거는 너랑 집사람이랑 가지고 놀아.”
이크! 그때는 몰랐다. 그러다 며칠 후 아내의 뼈 있는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선물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것도 중요한거야. 당신은 주는 거는 익숙하지만, 받는 거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누구든 선물을 주면 그냥 고맙게 받으면 되는 거야.”

친구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종이에 손을 벤 것처럼, 가슴에 생채기가 생긴 것처럼 시려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니 과연. 나는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부모님 댁을 가끔 가서 머무르다 떠날 때 부모님이 바리바리 싸주신 음식이며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저기서 구해온 내 아이를 위한 낡은 장난감들. 나는 그냥 받지 못하고 꼭 ‘이런 거 안 먹어. 며칠 있으면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결국엔 버리게 돼.’, ‘뭣 하러 이런 장난감들 주워오는 거야.’라며 부모님을 상심하게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선물을 받으면 필요가 없어도 고맙게 받고, 부모님들이 싸주시는 것들은 비록 며칠 후 냉장고에 들어갈지라도 고맙게 받는다. 남의 정성은 필요, 불필요를 떠나서 모든 게 고마운 것이다. 그뿐이다.

다시 대나무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앞서 말한 대나무는 결국 우리 사무실의 직원 두 분이 대나무 있는 곳을 찾고, 자르고, 베었다. 나는? 그냥 자른 대나무를 차에 싣는 것만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대나무를 다른 직원이 묶을 때 나는 큰 깨달음을 다시금 얻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동료, 상사들한테 가끔 들었던 말이 있다.
“너 끈 무지 못 묶네?”
나의 콤플렉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물건들을 튼튼하게 묶거나, 현수막 끈들을 튼튼하게 붙들어 매는 일에는 완전 젬병이다. 그래서 항상 끈을 묶을 때는 다른 작업을 하거나 딴청을 했다.

역시 이때도 나는 다른 직원이 대나무를 힘차게 묶어 차에 고정하기까지 5분정도를 그저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참 열심히 묶으시는구나. 사람과 끈. 이것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사람과 인연을 맺으려면 나도 잘해야 하겠지만 상대방도 잘 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 두 사람을 이어줄 끈과 같은 매개체가 있었야겠구나.’

이 끈은,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술자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것보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받는 것이라고 믿는다.
남이 못하는 것을 내가 더 잘하면 발 벗고 나서는 것. 사소한 도움이라도 남들이 버거워하면 도움을 주는 것. 이러한 “도움”이라는 끈은 더 크게 생각하면 봉사(奉事), 아주 크게 생각하면 헌신(獻身)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도움은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주는 비율과 받는 비율이 다를 수는 있지만.

사람과 끈, 어떻게 이을까?

먼저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해보자. 그리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먼저 도와줘 보자. 눈에 보이는 끈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끈, 연줄은 언젠가는 끊기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교감이라는 끈은 어떠한 다른 사람이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만이 나눈 감정이므로 끊어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으니까.

돈을 벌려면 돈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야하고, 사람을 많이 얻으려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야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을 얻으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자신의 가족의 마음을 얻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가족에게 도움을 먼저 주고 그들의 마음을 얻자.
이미 가족은 온전히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직장, 이웃, 친지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그리고 그들과 끈끈한 교류를 시도해보자.

아, 참! 자신 스스로의 마음을 얻었는지가 전제가 되었는지를 말하는 걸 까먹었다.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믿고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 내 기분이 나쁠 때는, 우울할 때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돌보기 힘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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