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제주 강정 앞바다에서 수장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평화롭게 출렁거리는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소중한 세 가지의 가치들을 잃어버렸다.
하나는 우리 한반도의 평화요, 다른 하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이며, 나머지 하나는 우리 한국 국민의 양심이다,

한반도 평화의 종말

강정마을 앞바다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단지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평화로운 공동체였던 강정마을에 불화와 갈등, 반목과 싸움을 가져온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한반도 전체에도 그 불화의 불씨를 번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군사 요새가 아니다. 제주도의 해군기지는 북한의 해상 침략을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대중국 견제용이고 그 배후에는 미국의 방위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

왜 우리는 강대국들의 싸움에 어리석게 앞잡이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중국은 우리가 무기와 군사력으로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다.
우리가 중국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길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지원을 받는 강력한 외교력으로 맞서는 길밖에는 없다.
31조에 이르는 국방 예산을 싸움 준비로 허비하지 말고 우리가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 편이 되도록 세계 여러 나라를 친구로 삼는 일에 아낌없이 쓰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미국과 중국의 전쟁터로 만들려고 드는가?

이 두 초강대국의 전쟁 속에서 폐허가 된 이 땅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이야기는 서울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말처럼 한심한 말이다.
전쟁이 나면 서울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나라에서의 전쟁은 핵전쟁 이상으로 무모한 전쟁이다.
북한이 아무리 불장난을 한다 해도 북한을 타이르고 얼러야 옳은 것이지 가만 놔두어도 붕괴할 북한과 싸우려 드는 것은 정의로운 대결이 아니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북한에 군사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평양을 불바다로 만든들 북한의 미사일 몇 기만 서울에 떨어져도 우리나라는 6·25의 폐허로 돌아갈 텐데 정작 그러기를 바란단 말인가?
북한은 얼마 가지 못할 위약한 정권이다. 그때까지 전쟁 분위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럴진대 왜 북한의 코앞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해서 북한을 자극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인가?
NLL선은 남북 간에 서로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우리 남한이 일방적으로 영토 주장을 하고 실효 지배를 하는 불확실한 경계선이다.
따라서 NLL선은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매우 민감한 경계선이어서 북한의 군사적인 도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 안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핵무장이냐 비무장이냐?

어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개발했는데 우리도 국방을 강화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정말 북한의 핵무기가 걱정이라면 핵확산조약을 무시하고서라도 우리도 핵무기를 생산하든지 아니면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을 겨냥해서 사용하지 않도록 북한과 화친을 맺든지 둘 중의 하나가 현명한 대응이 아니겠는가?
남한이 핵무기를 제조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미국이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라면 미국이 무슨 문제겠는가? 미국이 우리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단 말인가?

실제 미국은 수천 기의 가공할 만한 현대식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들의 새로운 핵무장은 금지시키려고 드는 어린애들조차 비웃을 옹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예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다 핵무기를 폐기하고 다시는 핵무기 제조를 금하는 조약을 체결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불평등한 핵확산금지조약은 폐기되어야 한다.

진정 우리가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면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이스라엘처럼 서둘러 핵무장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쟁을 위해 핵무기의 사용도 불사하는 그런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명분이 좋은가? 우리의 주적 북한이 핵무장을 한 마당에 우리도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핵무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꺾을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우리나라도 북한이나 이스라엘처럼 핵무장을 하고 나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의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주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미국의 핵우산 밑에 빌붙어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존엄성과 국격을 깎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한반도가 전쟁의 불바다가 되지 않고 전장이 되는 것을 피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나라를 미국의 군 기지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중국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근세 이삼백 년을 제외한 모든 시대에 걸쳐 세계 최대의 강국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교롭게 우리는 중국이 역사상 가장 위약했던 이 짧은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다. 이제 다시 중국이 비상하고 있다.

진정 군사력으로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한다면 빨리 미국의 방위 체제에서 탈피해서 중국의 우방으로 돌아서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침몰하는 명나라에 충성을 해야 한다는 조정 대신들의 시대 착각 때문에 청나라에게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왕이 청 태종 앞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절을 올리는 국치를 겪는 쓰라린 경험을 했었던 것이 불과 300년 전 일이다.

바로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우리는 이 비극적이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다시 반복하려 들고 있다.

대한민국의 종말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정부는 우리나라의 기본인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강정마을의 사례를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정부가 헌법 제1조에 새겨진 국가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불법을 자행하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사소한 몸싸움은 철저하게 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선량한 시민을 죽인 살인자가 이에 항의하는 피해자 가족에게서 얻어맞은 것을 가지고 고소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강정마을이 처한 현실이다.

이렇게 반대하는 시민들을 철저히 잡아들이자고 경찰과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모의를 했고, 그 결과 반대 시위자들은 법의 이름으로 30회 이상 경찰에 붙잡혀 갔다.

주민들은 대한민국이 다시 민주주의국가로 거듭나기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 정부가 더 이상 정부의 정책에 이의를 갖고 있는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해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공세를 할 것이 아니라 이 반대자들도 존엄한 국민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반대자들의 의견도 청취하고 이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며 그래도 설득이 안 되면 포기하는 것이 민주주의국가의 대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민들은 반대를 결정했는데도 주민들이 찬성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정부를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니까 정부 요인들도 거짓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나라가 점차 사이비 공화국이 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가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장차 이 나라의 그 어느 동네도 똑같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은 점차 더 포악해지는 정부와 싸워야 하는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

강정은 작은 마을이다. 이 작은 구멍을 막지 못하면 이후에는 국가 전체의 운명을 위협하는 거대한 둑이 무너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도래할 것이다.

 

 

한국인 양심의 실종

강정 앞바다에서 잃어버린 또 하나의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 한국인의 양심이다. 우리들은 강정마을의 비극적인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쳐다보고 있다.

화순이나 위미처럼 바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기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온다고 온 마을이 뭉쳐 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벌였던 이웃 마을조차도 강정마을을 측은하게 팔짱을 끼고 지켜볼 뿐인데 멀리 육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빚어진 강정마을의 분란에 대해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고 지역의 공동체성이 파괴당한다 해도 나나 내 가족의 일이 아니니까 무관심하다면 이미 우리의 양심은 그 빛이 바랜 것이나 다름없다.

제주도 토박이들은 육지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이 있다. 해방 후 4·3사건으로 제주도의 무고한 시민들이 3만 명이나 희생되는 상황에서도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이 피비린내 나는 동족의 대학살극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양심은 이미 그때부터도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본다. 한국인들의 양심의 민족사적인 부활을 꿈꾸어 본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남부 몽고메리라는 작은 도시에서 재단사 보조로 일하는 42세의 흑인 여성 로자 팍스가 자기 자리를 백인에게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부당한 요구에 불응하고 경찰에 연행되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한 평범한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당했던 이 차별은 어디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 처음 부임한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의 신앙과 양심 때문에 이 억울하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공분하고 항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작은 사건이었지만 이 일에 대한 의분과 저항은 불길처럼 타올라 이후 미국의 거대한 인종차별주의의 빙산들을 녹여내게 된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당하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처우에 대해 더 이상 함께 분노하지 않고 항거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의 양심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우리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이미 정직성을 포기하였으니 어디 양심인들 남아 있으랴마는 그래도 다시 사그라지는 화로 재 속에서 작은 불씨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국민의 양심에 호소한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강정 주민들을 존중해 드리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도록 이 오만하고 강퍅한 정부 관리들을 질타해 주기를 간청한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당하는 억울한 심경을 함께 느끼고 비뚜로 나가는 우리 정부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똑같은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아무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대한민국을 고발한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행정부를 고발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훼손했다. 또한 나는 우리 국민들을 고발한다.

나는 한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양심을 저버리고 강정마을의 무고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억울한 고통과 신원하는 목소리를 외면한 우리 국민들의 죄과를 고발한다.

강정마을은 제주도의 미래이고 제주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다. 강정마을의 평화는 제주도와 한반도의 평화의 전조다.

어떻게 국가와 더불어 싸울 수 있느냐는 절망적인 자포자기를 하지 말자. "우리 조상들이 수백 년 동안 지키고 일구어 온 땅을 다 빼앗기게 되었는데 우리 후손들이 '그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고 묻는다면 나는 적어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허탈하게 쓴웃음을 짓는 강동균 마을회장의 이야기가 강정 바닷바람처럼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일지라도 뒤로 물러서지 말자. 훗날 역사는 우리가 그 시대의 불의에 대해 맞섰는가 그렇지 않고 타협하고 안주했는가를 가지고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해군기지 대신 UN 본부를 세우자

나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에 빌붙어 안보를 애원하는 비굴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 주실 것이라는 신념으로 선택하는 평화의 길이다.

이 평화의 길을 찾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민중들의 용기가 우리나라 권력자들에게 인 박인 사대주의와 굴종 근성을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화를 피해 나갈 수 있다.

우리 한반도가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한반도에 전 세계를 담는 길이다.

무엇보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예술, 스포츠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국제기관들과 그 본부들을 유치하자. 특별히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라는 태평양 주변의 세계 최강대국들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

우리가 이들 중 어느 한 강대국의 시녀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립적으로 이 네 나라의 균형점이 되어 동북아의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고 조정하기 위한 각종 국제회의들을 유치하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정치·외교의 중심 무대가 되도록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시각은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친미·친서방 국가라고 여기고 있지만 세계 여러 나라들은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중립국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나라임을 꿰뚫어 보고 우리나라의 외교관이었던 반기문 씨를 중립 국가에서만 선출될 수 있는 UN의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던 것이 아닌가?

한반도의 중립화는 서슬 퍼런 박정희 시대의 친미·반공·안보 국가 속에서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다보았던 미래상이었다.

박정희는 한반도의 핵무장을 추구했고 김대중은 평화적 중립을 전망했다. 나는 이 사라진 별들이 서로 다른 미래상을 내다보기는 했지만 차라리 오늘날의 정치가들보다 오히려 현실 인식과 자신들의 신념에 더 충실했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반기문씨가 UN 사무총장으로 있는 동안 더욱 자주 UN이 조직하는 국제적인 회의들을 우리나라로 유치하고 더 나아가서는 UN 산하의 중요한 국제기구들과 그 본부들을 우리 한반도에 세우도록 이 기회를 선용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비싼 세금으로 명중률도 불확실한 외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구입하는데 허비하거나 누구를 위한 방위인지도 불확실한 미국 중심의 미사일 방어 체제(MD)에 승차하면서 천문학적인 대가를 지불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것이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들어 중국의 제일 차 폭격 목표 지점이 되게 할 것이 아니라 천혜의 관광지 제주도에 UN 본부를 유치하자. 현재 UN 본부는 북미에서는 미국의 뉴욕에 있고 유럽에는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 무대는 더 이상 대서양을 둘러싼 북미와 유럽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아시아의 새롭게 떠오르는 용 중국을 비롯해 일본과 러시아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아시아의 강대국들이다.

지금까지의 UN은 2차 대전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긴 과거사의 유물인 셈이다.

아마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면 새로운 UN 본부가 아시아에도 생길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많은 군사 전략가들이 전망하는 것처럼 중국과 미국 사이의 전쟁이 될 테니까. 만일 그런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 미국 방위 체제의 최전선에 놓인 우리나라는 잿더미 속에서 핵 오염으로 민족 멸종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3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제3의 UN 본부를 미리 아시아에 만들자. 우리 국방비 전액을 들여서라도 UN 본부를 만들고 세계 모든 나라의 대표들을 우리나라에서 일하며 살게 하자.

나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 제주도야말로 새로운 제3의 UN 본부로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UNESCO가 생물권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아름답고 풍부한 자연 조건을 갖고 있다. 또한,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해 아직도 해독을 거부하는 암호 같은 문자 4·3사건으로 일컬어지는 대학살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제주도에 인류 평화를 위한 UN 본부 건설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제주도가 더 이상 한반도의 부속 도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인류의 희망의 섬이 되게 하자.

제주도를 다시금 해군이 아닌 해녀들의 섬으로 돌아가게 하자. 마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주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의 악몽을 거둬 내고 차라리 전망 좋고 양지 바른 강정마을 언덕 위에 세계의 평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UN 대학을 세우자.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제주도에 웬 해군기지를 세운다고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가? 왜 우리 정부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이 시대에 20세기의 냉전과 구체제의 산물인 무장과 군비 경쟁으로 퇴보하려고 드는가?

이제 제주도에서 더 이상 칙칙한 군복과 살벌한 총과 대포로 무장한 군인들과 무기들을 모두 거둬 내고 대신 엘리트 경찰들로 구성된 세계 최고의 국제경찰(Interpol)들이 군인들을 대신하여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게 하자.

더구나 지금 제주도는 스위스 비영리재단 '뉴세븐원더스(New 7 Wonders)'가 주관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스물여덟 군데의 쟁쟁한 명경관들과 더불어 최종 결선까지 올라와 있다.
제주도가 세계 7대 경관으로 선정되면 그 파급효과와 제주도민들의 이익은 군인과 군속들의 월급봉투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푼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것이다.

이런 시점에 정부가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생태계 보전 지역이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호구역에 인접한 강정마을 앞바다의 '절대 보전 지역' 해제 결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바다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살기등등하게 무장한 군함들의 항구를 만든다는 것이 과연 제정신에서 나온 발상이란 말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평화의 섬 제주도는 무엇을 선택해야만 할 것인가? 제주도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그것은 전쟁이 아닌 평화의 비전이다. 숱한 허물과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기독교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군사훈련조차도 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는 예언자들의 명령이 성경 말씀에 새겨져 있고(사 2:4, 미 4:3)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평화이시기 때문이다(엡 2:4).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은 현실의 모든 부정적인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살아 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전쟁도 군인도 없는 세상을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은 마치 그런 세상이 이미 도래한 것처럼 그 평화로운 미래를 미리 선취(先取)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민족과 인류 평화의 마지막 책임을 지어야 할 최종 책임자들이라고 믿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모든 국민이 안보를 명분으로 강정마을 공동체와 평화를 파괴하고 그 앞바다의 피조물들을 파멸시키려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마지막까지 평화를 지키고 창조 질서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반도를 드리우고 있는 군사주의와 폭력의 어두운 구름 사이로 비취는 한 줄기의 희망의 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강정마을을 마음에 담고 고민하고 있는 당신일 것이다.

당신의 의분과 사랑, 정의감과 양심, 자연과 환경에 대한 책임감, 평화에 대한 동경이 제주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구원할 실낱같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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