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네? 가로등이요? 잠깐만요! 담당자 바꿔드리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 손은 전화를 돌려받을 준비가 끝난 상태가 되어 있다. 맞다. 난 이곳 성산읍 가로등 담당자이다.

작년 11월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맡게 된 업무 바로 가로등 업무이다. 가로등 업무란 관내에 있는 가로(보안)등을 유지, 보수, 관리하거나 신설 등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말한다. 여기서 가로등은 도로폭 8m이상인 곳에 시설되어 있는 조명등이고 보안등은 마을안길이나 좁은 골목길에 시설되어 있는 조명등을 말한다.

약 세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로등에 관심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종일 가로등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마치 나비와 자신 중 어느게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는 장자의 꿈처럼 가끔 가로등이 나인지 아님 내가 가로등인지 헛갈릴 때가 있다. 좀 괴상망측한 말이지만 길을 걷다 가로등과 마주치게 될 때면 마치 거울을 보는듯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며칠 전엔 제주시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남들은 시내풍경과 분위기에 들떠 있을 때 난 제주시내에 설치된 가로등을 보며 설레고 들떠 있었다. 이른바 직업병에 걸린 것이다. 아니 사실 상사병에 걸린 것이라 표현해야 옳을 듯하다.

현재 성산읍 관내에는 총 1,661개의 가로등이 시설되어 있는데 이중에는 담당자의 속을 썩이는 요주의 인물들이 대다수 포진되어 있다. 이 인물들은 매일마다 내 책상위에 갖가지 민원만 잔뜩 쌓아두고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이 녀석들을 얘기할 때에는 뒤에 ‘때문에’라는 조사가 붙는다. ‘가로등 때문에 잠을 못 잔다’ ‘가로등 때문에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등등 이런 가로등과 하루 종일 씨름하다 퇴근할 때면 몸이 녹초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친한 친구끼리는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드는 것처럼 이 친구와도 어느새 정이 들어 이젠 하루만 안 봐도 보고 싶어지고 또 걱정도 하게 되는 각별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육지에서 온지 몇 달되지 않아 친구가 없던 내게 소중한 벗이 되어준 가로등 녀석, 어두운 마을안길과 위험한 도로변을 밝게 비춰주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처럼 외로운 내 마음안길과 불안한 내 인생길을 환하게 비춰주어 날 위해주고 지켜줄 내 담당업무 가로등업무라고 생각하고 믿으며 오늘밤도 가로등 점검 순찰에 나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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