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국내 휘발유값이 ℓ당 2000원을 넘어서는 등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정부와 기업, 소비자 등 경제주체가 총체적 비상국면이다.

이처럼 유가가 지속적으로 급등하고 있어 정부와 국민은 과소비를 자제하고,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나 저탄소 녹색성장을 조기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공직자들도 이 같은 분위기에 솔선수범해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 해야 한다. 아울러 정유업계도 정부의 방침과 서민들의 생활고 등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휘발유와 경유 등 유가인하에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정부 관료들의 에너지절약 노력이 서민들보다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고유가 시대,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 고위공직자들은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민영통신사 뉴시스가 청와대를 비롯해 장·차관급 등 정부 고위 공직자의 출·퇴근 차량 이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예년과 다름없이 관용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 출퇴근하는 사람은 이재오 특임장관 뿐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일주일에 서너번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었으며,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가절약을 위해 관용차 대신 자신의 그랜드 카니발을 이용, 출퇴근하고 있었다.

◇청와대 수석(급)이상, 아반떼 하이브리드로 비용절감

청와대 참모들은 다른 부처 공직자보다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있는 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에너지 절약 실천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내 수석(급)비서관 이상은 행정안전부의 규정에 따라 차량을 이용한다. 행안부의 '배기량 권고기준'에 따르면 장관급은 3300cc, 차관급은 2800cc 이하를 이용해야 한다.

차관급인 청와대내 수석(급)비서관 대부분은 현대차 1600cc 아반떼를 이용하고 있다. 경제성을 고려해 2009년부터 청와대가 제공한 친환경차 LPi 하이브리드 아반떼다.

홍상표 홍보·박인주 사회통합·천영우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등이 하이브리드 아반떼를 타고 출퇴근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고급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전부 없앤 덕에 하이브리드 아반떼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며 "LPi 하이브리드 아반떼는 연료비 절감효과가 큰데다, 차량 5부제 적용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진석 정무수석비서관과 권재진 민정수석비서관은 아반떼와 함께 현대차 그랜저를 타고 다니고 있다. 정·권 수석비서관은 체격이 큰데다, 특히 정 수석비서관은 허리 디스크로 운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몸무게가 100㎏에 가까운 거구라 아반떼를 탈 때면 차가 비좁아 제대로 운전할 수 없다.

따라서 정·권 두 수석은 청와대 경내와 삼청동 등 청와대 인근에서 약속이 있을 때면 걷는 것으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한다고 한다.

장관급인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은 장관급에 준하는 관용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임 실장은 현대차 에쿠스를, 백 실장은 쌍용차 체어맨을 각각 타고 다닌다. 임·백 실장은 차량 5부제 때는 현대차 소나타를 탄다.

임 실장은 관용차량의 5부제인 금요일에는 삼청동 실장 공관에서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백 실장은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난방 온도를 낮추는 것으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한다.

이들 수석비서관급 이상을 제외한 비서관과 행정관 등 참모들 대부분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청와대까지 온다는 전언이다.

한 참모는 "수석님들이 회의 때 에너지 절약을 강조해 소등을 생활화하고 있다. 새벽에도 컴퓨터가 꺼져 있는지 점검하는 등 어느 기관보다 에너지 절약이 생활화돼 있다. 그래서 사실 겨울엔 좀 춥고 어둡게 생활했다"고 토로했다.


◇국무위원 대부분 관용차 이용…한 달 평균 유류비 100만원

고유가 시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 부처 장·차관들은 예년과 다름없이 관용차를 이용하며 출퇴근하고 있다.

이들은 에쿠스와 체어맨 등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들 차량은 고위공직자들의 공적 업무를 위한 전용차량이다.

에너지 주무부서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윤증현 기획재정부·정종환 국토해양부·김성환 외교통상부·현인택 통일부· 맹형규 행정안전부·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관용차량인 에쿠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차량 요일제가 되면 수행비서 차량인 하이브리드 아반떼를 이용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관용차인 에쿠스 대신 국회의원 시절부터 타고 다니던 기아차 그랜드 카니발을 이용하고 있다.

유류비는 전액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는다. 장관은 한 달 평균 100만원, 차관은 70만원 가량의 유류비를 지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장관의 바쁜 일정 등을 고려해 볼 때 한 달 평균 100만원의 유류비 사용은 많은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들 외에도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김준규 검찰총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이 관용차인 에쿠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하철로, 조현오 경찰청장은 걸어서 출퇴근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해 8월 취임한 이후 에너지 절약을 위해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이 장관은 매일 오전 6시 연신내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이 장관은 장관 취임때부터 관용차를 받지 않았다. 외부 일정이 잡히면 장관 취임 전부터 자신이 타고 다녔던 2007년식 카니발 승합차를 이용한다.

이 장관은 국민권익위원장 재임할 때도 자전거와 버스로 출퇴근했다. 지난해 7·28 서울 은평을 재보선 출마 당시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돌며 유권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이달 초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대중교통 출근을 제안하기도 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나라에 어려움이 많다"며 "장·차관, 국회의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준장 이상, 지방자치단체장, 청와대 수석 이상 등 고위공직자들이 출근시간만이라도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일주일에 두 번 가량을 제외하고는 도보로 출근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세문안교회 인근에 위치한 공관에서 미근동 청사까지 거리는 3㎞ 내외로, 도보로는 15분 정도 소요된다.

또 퇴근시 외부 일정이 있을 경우 관용차량을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 차량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관용차량 안에 무전기 등 장비가 구비돼 있어 업무시에는 관용차량을 이용한다"며 "그러나 간부들과 함께 이동하거나 지방순시 때에는 주로 경찰청 대형버스나 KTX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고위직, 관용차 버려야"

시민단체들은 고유가 시대에 관용차로 출퇴근하는 정부 고위공직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고유가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일반시민들에게 중형차 대신 경차를 타라고 권유하던 사람들이 왜 고급 관용차를 타는지 의문"이라며 "고위직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윤 사무처장은 "고위직도 이왕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관용차를 쓸 경우 하이브리드 차량 등 친환경차를 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석봉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공정한 사회'를 거론하며, 고위공직자들의 관용차 출퇴근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고위공직자들도)국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아픔을 나눠야지 고위층이라고 해서 관용차로 출퇴근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위공직자들도 관용차 버리고 경차를 타거나 고유가 위기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관용차량 타고 다니면서 국민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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