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여정... 곁에 있지 못하고 마음만 보내드립니다.

존경하는 신구범 선배님께

몇 십 년 전 고교시절, 도내 고교 체육대회, 교련대회, 심지어 축구경기장에서 경기가 있을 때 마다 수 백 번은 족히 불렀던 응원가가 문득 떠오릅니다.

“산 높고 물 맑은... 한라의 정기 받고 자라난...
남아의 의기는 대지 덮는다...씩씩하게 싸우자..”

응원가를 부르면서 저희는 때론 전율을 느끼며, 웃고 울면서 모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곤 하였습니다. 그 시절이 무척 그립습니다.

저는 과거 선배님의 도지사 재직시절과 최근 여정을 보고 들으면서 때론 동조하고 가끔은 반대의 뜻을 가졌던, 선배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후배임을 알려드립니다.

신구범 선배님

저는 선배님께서 동조단식을 선언하며 강정 해안가로 향하신 그 뜻을 모두 헤아릴만한 혜안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양윤모 교수와의 동조단식과 관련해서 며칠 전 모 언론사 칼럼과 선배님이 그 쪽에 보낸 답장을 보며 참으로 착잡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무례하지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사랑하는 선배님
선배님도 느끼시겠지만, 제가 지금껏 지켜봤던 강정마을 주민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지신 분들이었습니다. (해군기지 찬,반을 떠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강정마을은 음산한 기운만이 나돌고, 급기야 친척, 형제간의 대소사까지 외면하는... 그야말로 이웃 간의 정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비극의 공동체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도대체 해군기지가 무엇입니까?

정부의 정책시행의 정당성은 사회적 약자, 상대적 빈곤으로부터 개인의 삶이 위협받지 않도록 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 말한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라는 글귀가 절절히 가슴을 파고듭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현재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신구범 선배님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전, 현직 도지사님들의 공,과를 논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어려운 결정을 하셨을 테고, 지금 지사님도 최선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란 믿음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또한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선배님
과거, 의견 논쟁으로 이어지던 해군기지 문제는 이제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끝을 모르는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양자 모두 파멸해 버리는 비극만이 이 아름다운 강정마을에 남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국가 안보라는 대의명분으로 시행되는 해군기지 건설은 어쩌면 몇 명의, 아니 수도 없는 강정주민들의 희생을 더 요구할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선배님
주민들의 희생만은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저는 선배님의 이번 동조단식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해군기지 갈등 해소를 위한 일말의 희망의 메시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존경받는 원로들이 강정마을을 찾아, 주민들 간의 고소, 고발, 폭력의 사슬을 끊어주고, 순박한 주민들의 아픔을 감싸 안는 용기를 보여 줄 시점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때론 정치적 행동이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비난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선배님
선배님의 이번 어렵고 힘든 고단한 단식의 길이 존경하는 제주 원로들의 강정사랑의 발자욱으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선배님의 단식 소식을 접한 후, 목 터지게 불렀던 응원가의 가르침대로 씩씩하게 살지 못했던, 그래서 부끄러운 후배지만 선배님 같은 분을 존경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힘든 여정... 곁에 있지 못하고 마음만 보내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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