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 보고 듣고 느낀대로

트럭 위에 깔린 가마니에 누워 하루 종일 걸려 야전병원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이 되었다. 부상당한 후로 얼음판을 내내 기었기 때문에 팔과 다리에 동상기가 있는데다 트럭에 실려 오느라고 몹시 추웠다. 부상당한 상처의 통증도 심하여 괴로움을 참기도 힘들었지만 하루 종일 먹지 못한 배고픔도 견딜 수가 없었다.

야전병원이라는 어느 병원 학교 마당에는 운동장 하나 가득 전사자와 부상자로 채워져 있어 이번 전투의 참상을 짐작하게 했다. 배고픔과 추위로 벌벌 떨고 있노라니 군의관과 위생병이 손전등을 비추며 부상병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군의관은 부상병을 살펴본 다음 “육군병원!”, “야전병원!”하고 소리치며 지나갔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군의관은 “육군병원!”하고 지나갔고 그 뒤를 따라가는 위생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향의 이웃집 형임에 틀림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창언이 형!”
하고 소리 질렀고 위생병은 손전등을 내 얼굴에 비쳐보더니
“너, 임종이로구나! 기다려라. 일 끝내고 오마.”
하며 지나갔다.

그 형은 내가 배고픈 것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건빵 봉지를 들고 와 먹으라고 하면서
“너는 다리뼈도 부러지고 총탄도 2개나 뼈에 박혀 있어 육군병원에 가야만 수술할 수 있겠다.”
고 말했다.

나는 완치되면 원대 복귀하고 싶고 또한 아는 형이 있는 야전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었으나 야전병원은 수술할 시설이 없었고, 육군병원으로 가면 다른 부대로 배치되기 때문에 실망이 대단했다.

더구나 그 형은
“너 육군병원에 가면 걱정거리가 있다. 요즘 군의관은 의대 1, 2학년 다니다 입대한 사람들이라 어려운 수술은 피하고 잘라버리고 있으니 네 다리도 잘라 버릴까 걱정이다.”
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더구나 육군병원으로 후송되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트럭에 실려 육군병원으로 가야 했다. 야전병원을 떠날 때에 영동 근방에서 우리가 포로로 잡아 후송했던 인민군 군의관이 우리 부대 군의관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인사라도 하고 싶어 그 형에게 부탁하여 군의관을 만났더니 그도 반가워하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