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주말 프로로 KBS가 기획한 '유교 2500년 여행'이란 다큐멘터리가 인기리에 방영을 마쳤다.

'인의예지(仁義禮智)'란 부제로 드라마 형식을 택한 방송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일오일인 4일 프로가 끝나자 마자 이어진 9시 뉴스는 '호적제폐지'를 알려 줬다.

'정체성'이란 것에 대해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는데 '호적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보도가 되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쪽에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방송이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없애'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호적제'가 우리민족의 '전통성'을 지켜 온 본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어져 오도록 최소한의 역할은 해 왔다'는 것이다.

'호적제도'가 생긴 역사적 시기는 '구 한말', '갑오경장' 이후이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우리민족의 족쇄를 채우는 한편 지배의 한 방편으로 만든 것이 '호적제'이다.

그러나 그 호적에는 '본관'과 '호주'등 가족관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다.

그 이전에는 '족보'외에 다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족보제도'를 무력화, 뚜렸했던 반상의 차이를 없애고 우리민족을 일제에 협력을 하도록 하게 하는 장치로서 도입한 역사의 산물이 '호적제도'이다.

그 호적제도가 있음으로 해서 그나마도 '평등하게' 국민으로서 행세를 하며 1세기를 살아온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호적제도'가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데 '충분조건'은 아니었으나 '필요조건'으로서 기능은 해 왔다는데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전통마저도 사라지게 돼 우리가 너무 성급한 현대적 조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닌가 해서 아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호적제도'의 근간은 '호주'와 '본관', '출생지'등 가족관계이다.

그러나 그 '전통적 근간'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정착민족'이다. 서양이 '유목적' 개인성이라면 동양은 '정착적' 동질성이다.

그래서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한 곳에 정착을 하면 그곳에서 대를 이으며 사는 것이 동양적 특성이다.

고향을 중요시 한다.

그런데 고향이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적에 '본관'이 사라지고 '호주'나 '세대주'가 아무나 될 수 있고 '출생지'가 없어짐으로 이다.

물론 시대상황에 맞춰 고친다는데는 이의를 달 이유가 미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한 길도 돌아가는 것'이 전통적 미덕인데 너무 편의와 효율만 앞세워 자고이래로 내려온 것을 한꺼번에 송두리채 고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할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이다.

유교를 접해 연구한 한 영국 출신 교수는 '유교 2500년'방송도중 인터뷰를 통해 '개인주의'의 서양이 이제는 '유교적'동양문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 했다.

문화대혁명으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공자묘와 유적을 파헤쳤던 중국이 최근 '공자사상'을 복원키 위해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등을 복구하는데 한창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지켜왔던 '우리의 제도'를 성급히 허물고 있다.

우리처럼 '고향'이라해서 '명절때 못가면' 가슴아픈 아련함이 없는 서양인들이 이제는 동양의 이러함을 배워야 한다는데, 오히려 우리는 이런 '정서'를 버리려 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뜻이다.

내년부터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는 '얼치기'들이 태어 난다고 야단들이다.

이같은 '호적제폐지'소식에 이 나라를 떠야 되겠다는 네티즌들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라는 개념을 앞세우는 정착성이 사라지고 '나'밖에 모르는 개인성이 그것을 대표하고 있는 서양적 유목성으로 민족성이 바뀔 것은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지금 우리는 '우리'라는 개념은 흩어지고 '나'만이라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상황이다.

제주도 상황도 마찬가지다. '제주도'라는 전체는 도외시 하고 '나'와 '내편'만이 옳다고 야단이다.

그래서 '남이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적 개인주의 얼치기들이 난무, 목소리만 키우며 사회를 휘젖고 있는 것이다.

'유교 2500년 여행'의 마지막 '지(智)'편에서 공자는 '지식을 쌓는 것은 나와 남을, 더 나아가 사회를 유익하게 하기위함'이라 하고 있다.

다시말해 '자신'을 위함도 있으나 남을 위한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있다.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정신과 마찬가지다.

'자신을 위하고 또한 남을 위하는'것.

그것이 공동체의 근간이다. 그것은 '개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라는 공동체를 우선하는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가족관계도 그렇다. 그것을 우리는 '천륜'이라고 한다. 그 '천륜'을 법조문으로 구분할 수가 있을까. 그것이 문제다.

'대한민국'이 '얼치기 대한민국'으로 변하지나 않을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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