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앞 도로는 천막으로 채워졌다.

연일 '농성'으로 편안한 날이 없을 지경이다.

'해군기지반대'를 위한 단식천막, 삼영교통 노조의 임금인상 농성, 중앙로 횡단보도 설치 반대 시위등 천막농성으로 인도는 천막촌으로 변한 모습이다.

한마디로 '야단법석(惹端法席)'이다.

'야단법석'이라는 말은 원래가 야외에 대사(大師)가 설법을 하기위해 마련된 법석, 즉 엄숙한 '야단법석(野壇法席)'인데 이러한 엄숙함이 어떤사안으로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야기, 자리가 어지러워진데서 비롯된 말이다.

지금 제주도의 상황이 이와 같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청 앞은 가히 '야단법석'이다.

'평화'때문이다.

평화를 보는 눈이 서로 평행선을 그어 접점을 찾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한 쪽은 '평화 그 자체만으로 실현돼야 한다'고 하고 있고 한 쪽은 '평화는 그 자체만으로는 실현이 어렵다'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해군기지건설은 '평화 그 자체를 깨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 반면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안보가 있게 되고 그 안보가 튼튼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시각차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풀끼가 없다는 말이다.

그 정도의 의견차이라면 풀끼가 조금만 있어도 접점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이 그렇게 안되고 있다.

각자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콩가루 집안'꼴이다.

콩가루는 물을 넣어 섞어도 반죽이 되지를 않는다.

풀끼가 없어 서로 붙지를 않기 때문이다.

친화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떡'을 콩가루 만으로는 만들 수가 없어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다.

우리 제주도가 지금 그 모양세다.

각자 제 갈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서로 미워하며 제 갈길을 가고 있어 더욱 문제해결기미가 멀어지는 형국이다.

왜 이처럼 우리는 날이 갈 수록 미움만을 쌓아 가는 것일까.

사회적 기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졌다는 말의 다름아니다.

교육이 그러하고, 종교가 그러한 몫을 제대로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에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며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도 이러한 사회적 충격 흡수장치가 없기 때문에 갈등만 커지고 있다.

교육과 종교가 사회를 받쳐주는 두 기둥인데 그 두기둥에 대한 신뢰에 금이가 각자가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 제주도의 모습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만 있고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인간성이 상실 된 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휴머니즘'이다.

해군기지를 '평화가 깨진다'고 우겨 '철회 됐다'고 해도 이것의 바탕이 없이는 사상누각이다.

또한 '안보가 튼튼해야 평화가 지탱된다'고 해 해군기지를 건설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의 바탕이 없는 한 어느 것도 결국 실패한다.

바로 그것이 접점을 찾는 '지혜'의 근간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종교와 교육이 그렇게 부르짖는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디로 갔는가.

'사랑해'라는 말이 길가의 낙엽처럼 지천에 깔려 있어도 정작 '사랑'은 없다.

'공염불'이다.

그래서 '중'들도 싸움만 하고 있다.

결국은 누구의 잘못인가.

결국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정신교육'을 등한시 하면서 물질적인 것, 외부적인 것에만 치중한 우리모두의 업보다.

'접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종교와 교육이 지혜를 찾아 해결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콩가루 처럼 흩어지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도록 진실된 '사랑'으로 안아 함께 가도록 해야한다.

쫒아 다니면서라도 이해와 설득을 시켜 접점을 찾도록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 어느 한 쪽의 주장만 옳다고 '단식'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종교인의 올바른 처신이 아닐 것이다.

모두를 감싸안아 함께 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진정한 '목자'가 아닌가.

그러한데 온갖 종교단체들이 대거 제주도로 몰려와 '총력투쟁'을 선언하고 있어 갈등만 더 부추기고 있다.

'콩가루 집안'꼴만 보여 주는 결과가 되고 있다.

시쳇말로 '쪽 팔리는 짓'이 아닌가.

탈무드에 이런말이 있다.

'쇠가 이 세상에 처음 나타났을 때 나무들은 무서워서 떨었다. 하느님이 나무들에게 말했다. '두려워 말라. 너희들이 자루만 만들어 주지 않으면 쇠는 너희들을 해칠 수가 없다'고 했다.

잘 들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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