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복권이 출시 한달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총 5회 발행됐는데 판매 물량이 모두 매진된 것이다.

'제2의 로또 열풍'이라 불리는 연금복권은 당첨금을 20년 동안 매월 500만원씩 나눠 받는 '연금식'으로, 1등 당첨확률이 로또보다 높다. 일각에서는 당첨자의 대부분이 40~50대 회사원이라는 점에서 연금복권의 인기가 노후에 대한 우리사회의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다.

뜨거운 관심 속에 지난 3일 저녁 제5회 연금복권 추첨이 이뤄졌다. 생방송 2시간 전, 기자는 연금복권 추첨이 진행되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YTN을 찾았다.

복권을 구매한 사람에게는 한주의 기다림을 확인하는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일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번호 맞추기 게임일 뿐. 시청률도 1%대에 머문다. 하지만 실제 추첨 현장에는 의외의 재미(?)가 있었다.

로또 추첨방송과 달리 방청객이 없는 까닭에 35평(115㎡) 남짓한 스튜디오는 조용했다. '발사기'와 '추첨기(0부터 9까지 숫자가 적힌 회전판)'의 봉인 테이프를 해제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화살이 나가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발사기의 압력을 6.5±0.5kg/㎠에 정확히 맞추고, 발사기와 추첨기와의 간격도 일일이 자로 잰다.

발사기와 추첨기를 보관하는 창고는 외부에 따로 마련했지만 어디까지나 '극비'다. 혹시 있을 지 모를 '조작'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란다. 창고에서 스튜디오로 옮겨진 기계에는 전부 테이프가 붙어 있다.

연금복권 추첨은 45개의 숫자가 적힌 볼을 무작위로 뽑는 로또(탁구공식)와 달리, 숫자가 적힌 회전판에 화살을 쏴 맞히는 '화살식'이다. 과거 주택복권과 같은 방식이다.

연금복권 판매를 담당하는 한국연합복권 관계자는 "처음에는 '주택복권과 변한 게 없어 식상하다'는 지적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유통물류협회에 조사 용역을 의뢰한 결과 소비자들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추첨방식으로 '화살식'을 선택했고, 신뢰성 확보 차원에서 이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화살은 여벌로 3개를 더 준비한다. 추첨기도 '일 단위'부터 '조 단위'까지 6개가 필요하지만 오·작동에 대비해 2개를 더 마련해 둔다.

기계 점검이 끝나면 아나운서와 추첨 도우미가 합류해 실전과 똑같은 리허설을 진행한다. 리허설은 보통 한 번에 끝나지만 기계 오류가 발생하면 한 번 더 실시한다.

스튜디오에는 경찰 공무원 1명이 입회한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노숙자들의 형님'으로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던 남대문경찰서 서울역지구대의 장준기 경사(51)다. 서울역 일대 노숙인들을 관리하는 일이 그의 주 업무지만, 수요일이 되면 복권 추첨을 감독하기 위해 이곳 스튜디오에 들른다. 경찰관 제복을 입은 그는 "사실 오늘 여름휴가인데, 이것도 내 일이니까 일부러 나왔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공교롭게도 리허설 당시 1등 당첨번호 두 개의 앞 두자리가 동일하게 나왔다.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일제히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본방송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리허설이 아닌 본방송이었다만 분명 연금복권 게시판이 '조작설'로 도배가 됐을 것이다"

별 걱정을 다 한다 싶겠지만, 사실 연금복권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복권 관계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자칫 정부가 '사행산업'을 부추긴다며 비난여론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첨 과정에서의 정확성, 공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연합복권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복권 기금으로 마련한 아파트에 '복권 아파트'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복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면서 "연금복권의 판매수익이 여러 공익사업에 쓰이는 만큼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복권발행 기금을 저소득취약계층, 서민주거안정, 문화예술진흥, 국가유공자, 재해재난 등 5대 공익사업에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복권의 실수요자인 서민들은 이러한 복지혜택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금사업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정책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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