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8월15일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1945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됐고, 3년 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졌다. 그리고 1974년에는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에 대통령 대신 영부인(육영수 여사)이 명을 달리했다.

이런 8월15일을 산고곡심이 기념하려고 제목을 ‘오늘은 대한민국을 세운 날’로 정했더니 한 젊은 지인이 “거 좀 위험합니다”라며 당혹스러운 충고를 건네왔다. 뉴라이트 계열이 중심으로 현재의 광복절(45년 기념)을 건국절(48년 기념)로 바꾸려고 애를 썼다가 진보진영의 거센 공격을 받아 쑥 들어간 상태라고 말이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건국일을 기념하지 타의에 의해 식민통치가 끝난 날을 기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자, 일부(아마도 진보쪽)에서는 그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4월 11일(1919년)을 건국일로 정하자고 나선단다.

식민시대부터 세계 최빈국을 거쳐 강소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지금까지 80년을 넘게 이 땅에서 산 사람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이념의 과잉이 심하다. 진보와 보수의 건전한 논쟁이 발전적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우리네는 편가르기가 너무 심하다. 보수도 옳은 게 있고, 진보도 틀릴 수 있다. 거꾸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슴 아프게도 보수가 진보라고 사람을 잡아죽이는 시절이 있었고, 또 진보는 마녀사냥 식으로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아주 소모적이다. 외교관, 스포츠행정가, 태권도 수장으로 많은 나라를 방문해, 많은 중요한 사람을 만난 내 특별한 경험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좀 내 기준에 안 맞아도 기념할 것은 기념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 산고곡심의 제목도 그냥 두기로 했다.

어느 나라건 나라를 세운 기념일이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1948년 8월15일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출범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의 생일을 맞아 1945년 8.15와 1948년의 8.15,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싶다. 다들 아는 밋밋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직접 체험한 사람의 증언인 만큼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왔고, 또 역사의 물결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1945년 8월 15일 군국주의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해방됐다. 그때 기쁨과 희망에 찬 민족의 함성과 태극기의 물결은 지금도 눈에 선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중학생이던 필자는 그때 학도 동원으로 학교 대신 경기도 안양에서 곡갱이질을 하고 있었다. 수수, 조, 쌀, 밀이 혼합된 밥으로 세끼를 때웠다. 일본은 전쟁터로 빨리 보내기 위해 중학교도 4년제로 단축했고, 재학생은 각종 군수노역에 동원했다. 당시 서울 시내 중학교는 공부는 전폐하고 여러 지역에서 노역에 동원됐다. 필자가 재학 중이던 아사히오카(旭丘-현 경동중학교)중학교의 경우, 4학년은 부평 탄약공장에, 우리 3학년은 안양의 탄약고 작업에 각각 동원됐다. 그런 와중에 하루 아침에 세상이 달라지고 우리의 세상이 온 것이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우리 독립지사 선배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진주하며 남북이 갈라졌다. 그리고 3년 동안의 좌우 격돌을 거쳐 1948년 8월15일 유엔 감시하에 선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유엔의 승인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날, 필자는 고3으로 대입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 땅에서 처음 치러진 선거(5월10일)와 계속되는 좌우 대립으로 무척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2년 후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고, 필자도 고시공부를 중단하고 군문으로 들어가 19세 청년장교로 최일선에서 나라를 지켰다. 그 후 4.19 학생혁명(1960년), 5.16군사혁명(쿠데타로 부르는 사람도 많다. 1961년)을 거쳐 12.12쿠데타(1979년),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등 한국은 정치적 격변을 거쳐 19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의 길을 달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온 국민이 피땀 흘려 일한 덕에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 즉 산업화에도 성공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를 서울로' 모아놓은 것을 계기로 한국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로 도약했다. 그리고 경제발전은 계속됐다.

연간 100만불 수출도 하기 어려웠던 나라가 이제는 연간 1조불에 육박하는 무역을 하는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외환보유고만도 3100억불에 달하고 G20정상회의를 서울에서 주최할 정도로 국격도 올라갔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서울올림픽을 비롯, 2002한일FIFA월드컵,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3대 메이저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고 그 외에도 동하계 아시안게임, 동하계 유니버시아드를 개최했고, 이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2014인천아시안게임, 2015광주유니버시아드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기력도 동하계를 막론하고 세계10위권을 유지하는 스포츠 강국이 됐다.

사통팔달한 고속도로망과 고속철도, 그리고 세계를 누비는 항공망 등 선진국 급 교통체제를 갖췄고, 헐벗고 새빨간 산야도 녹지가 됐다. 대학도 400개나 되고 골프장도 300개나 된다. 대학졸업자, 박사학위 취득자도 세계 2위라고 한다(물론 대학등록금의 비싸기도 미국 다음이라 반값 등록금 논쟁이 제기됐지만 말이다). 여기에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세계적인 산업과 최근의 한류열풍까지 참 자랑할 게 많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걱정거리도 많아졌다. 들여다볼수록 위협적인 중화민족주의의 중국, 우리의 독도주권을 넘보는 일본, 재정적자가 심한 미국, 의뭉한 러시아 등 외교에서 골칫거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최근의 독도 문제는 아주 불쾌하다. 국제법상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명백한 우리 땅으로 전쟁이 아닌 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일본 극우파의 정치쇼에 놀아나는 느낌이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조용한 날이 없다. 문화의 충돌이 거센 까닭에 안전하기로 유명한 노르웨이에서 극우 광신자에 의한 학살이 발생했고, 중동에서는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다. 굶어 죽어가는 소말리아와 아직도 시끄러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바람잘 날 없는 세계 정세에서 신흥강국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도 중요하다.북한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다. 국제적 압력에도 아랑곳없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않고 있고, 천안함 폭침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 무력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함께 북한의 위협에는 한미일 협동작전과 군사적 공조협력 태세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내실있는 국방력 증강도 당연히 큰 과제다.

안방을 들여다보면 더욱 답답하다. 정부나 사회지도층에 병역의무를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한 사람이 너무 많다. 미국에서는 나라에 봉사하고, 희생한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가 평생 보답하는데 우리는 충(忠) 사상이 점점 잦아들고 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더 가지려고 하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발견하기 힘들고, 국민의 불신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도 서민을 등쳐먹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최근 엄청난 피해를 안긴 폭우는 방수·방화·방진·방역 시스템을 확고히 재정비하는 것을 숙제를 남겼다. 무엇이든 미리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터진 다음에 땜질은 소용없다.

또 소모적인 사회 갈등과 포퓰리즘에 놀아나는 정치도 속이 상한다. 자연재해에도 충실히 대비하지 못하고,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반격하지도 못하는 판국에 182억 원을 들여 단계적 급식과 몽땅 급식을 놓고(무엇이 다른지 분명치 않지만) 주민투표를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쟁점이다. 특정 정치인의 대선 야욕 때문이라는 여론이 여론 조사에서 50% 이상 나오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도 가장 큰 이슈가 될 복지 문제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 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35%의 높은 지지율을 지키고 있는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국형 복지와 손학규(孫鶴圭) 제1야당대표의 전체형 복지 중 어느 것이 우리 경제력과 현실에 맞느냐는 것은 국민이 선택할 문제다. 여기에는 선진국의 실패의 예도 고려해야 한다. 복지와 관련해서는 급속히 다가오는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시대에도 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재벌의 독식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홍준표(洪準杓) 한나라당 대표가 "재벌은 착취"라고 말한 것은 사회의 재벌에 대한 감정을 나타낸다. 재벌에 대한 감세 조치 철회나 대우조선해운, 우리금융지주 그리고 인천공항공단의 국민주 형식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행보에 비판 여론도 있지만 일부 언론사설도 지적하듯 박수를 보내는 국민이 의외로 많다. 한국의 재벌은 공도 많지만 제3공화국시대, 경제개발을 위한 자본축적을 위해 정부가 육성한 것이다. 정부의 비호, 금융 지원, 세제 지원, 환율 개입, 사법 보호, 출자제한철폐 등을 통한 육성 덕에 성장했다는 시각이 많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회적 자신인 것이다. 당연히 대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골목에서 소상인들의 몫에 손대지 말고 더 큰 투자와 상생의 길로 가야 한다. 자본축적만 하지 말고 투자와 고용을 늘렸으면 좋겠다. 최근 삼성(三星)을 필두로 재벌기업들이 잇단 MRO 사업 철수를 발표하고 있어 다행이다.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정권의 책무는 국민의 안전(국방)을 지키고 복지를 신장하는 것이다. 부디 편협한 이데올로기나, 인기주의(Populism)에 휩쓸리지 않고 사회지도층 인사, 재벌 등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건국의 날을 맞이해 다시 한 번 건국의 정신에 되돌아가서 일류국가를 향한 여정에서 국민이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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