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한국인이라면 다 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다가 우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경주마 경매 사상 최저가인 700여만원에 낙찰된 절름발이 말 '루나'가 마주와 조교사의 특화된 재활훈련과 보살핌에 힘입어 2004년 데뷔 이래 13회나 우승한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챔프'다.

300승을 올릴 정도로 잘 나가던 기수 '승호'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것도 모자라 시신경까지 다친다. 3년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시력을 상실케 된 승호는 결국 퇴물 기수로 전락하고 생활고에 처한다.

딸 '예승'과 제주도로 향한 그는 사람을 태우기를 거부하는 백마 '우박이'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경주마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이 말은 도축장에 끌려갈 위기다.

다시 말을 타고 싶은 승호는 우박이를 맡겠다고 자처하지만 녹록하지 않다. 그러던 중 승호는 '윤 조교사'로부터 우박이가 사람을 거부하게 된 것이 교통사고로 새끼를 잃고 다리를 다친 뒤부터라는 사연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사고가 자신이 3년 전에 일으켰던 사고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후 승호는 우박이에게 진심을 다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우박이 역시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문다. 둘은 기수와 말을 넘어 솔 메이트가 돼 잃어버린 꿈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챔프(감독 이환경)' 시사회에 참석한 박하선(오른쪽)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격해하자 차태현(가운데)과 김수정이 웃고 있다. 선천성 기형으로 절름발이가 된 경주마와 시력을 잃어가는 기수(차태현)의 불가능을 뛰어넘은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챔프'는 9월 7일 개봉한다. go2@newsis.com 2011-08-30
국내 첫 말 소재 스포츠 영화 '각설탕'(2006)을 연출한 이환경(41) 감독이 5년 만에 들고 온 이 영화는는 전작의 재미와 감동은 그대로 이어가면서 역동성과 호쾌함은 더욱 업그레이드 했다.

승호와 우박이가 제주도 바닷가를 질주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푸른 평원을 누비는 장면은 마음을 실로 편안하게 한다. 전설 속 유니콘을 떠올리게 하는 백마의 아름다운 자태, 간간이 등장하는 더러브렛종 고가 경주마의 윤기가 좔좔 흐르는 잘 빠진 외모, 당나귀의 코믹한 모습 등 아직까지 흔히 접하기 힘든 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득 이 영화를 보고 말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압권은 할리우드를 능가할 정도로 스펙터클한 경주신이다. 승호·우박 커플이 한참 뒤처져 달리다 뛰어난 추입력을 발휘해 마침내 역전승을 거두는 장면들은 실제 경주를 바로 코 앞에 지켜보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대규모 공중 촬영을 하는 등 제작비 10억원을 쏟아부으며 총 138㎞에 달하는 주행거리를 달린 보람을 찾은 셈이다.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를 더욱 알차게 만든다.

차태현(35)은 1년에 걸친 말타기 훈련을 통해 경주신을 제외한 거의 장면을 소화해내며 리얼리티를 높였다. 특히 '과속스캔들'(2008), '헬로고스트'(2010) 등에서 이미 어린이와 찰떡궁합을 과시한 차태현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평소 실제로 되고 싶다는 '딸바보'가 돼 보는 이의 가슴 깊은 곳에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끌어낸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챔프(감독 이환경)'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차태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절름발이가 된 경주마와 시력을 잃어가는 기수(차태현)의 불가능을 이기고 감동을 전하는 '챔프'는 9월 7일 개봉한다. go2@newsis.com 2011-08-30
예승을 연기한 김수정(7)은 앙증맞고 귀여운 일곱살 꼬마는 물론, 사랑하는 아빠를 위험으로부터 지키려는 딸의 진정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하게 표현해내며 새로운 '국민딸'의 위치를 굳혔다.

박하선(24)은 경쟁영화들인 '푸른 소금'의 신세경(21), '통증'의 정려원(30)처럼 영화의 중심은 아니다. 하지만 승호에게 시도 때도 없이 대놓고 면박을 주면서도 유일하게 승호를 감싸주고, 그를 위해 기꺼이 카드를 건넬 정도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한 응급구조사 '윤희'로 영화의 윤활유 노릇을 톡톡히 한다.

윤 조교사 역의 유오성(45)은 묵직한 연기로 영화의 균형추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 특히, 시력을 잃은 승호가 이쑤시개를 후춧가루인 줄 알고 설렁탕에 뿌린 뒤 이를 먹으려 할 때 묵묵히 자신의 그릇과 슬쩍 바꿔주는 모습에서는 사나이의 진한 정이 묻어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윤희석(36)은 불법 사설경마(맞대기) 조직의 간부로 나와 '망가짐'을 불사하는 맛깔스런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배가하고, 백도빈(33)은 승호의 사고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승호를 멸시하는 동기생 기수로 사실상 악역이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시력을 잃은 기수'와 '다리를 다친 말'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우승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은 사실 작위적이라고 볼 만하다. 무엇보다 이 감독의 말대로 한국마사회(KRA) 규정상 시력이 0.8 이하인 기수는 경주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챔프(감독 이환경)' 기자간담회에서 아역배우 김수정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절름발이가 된 경주마와 시력을 잃어가는 기수(차태현)의 불가능을 이기고 감동을 전하는 '챔프'는 9월 7일 개봉한다. go2@newsis.com 2011-08-30
그러나 이 영화의 목표 중 하나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라면 최소한 이 영화는 그 목표만큼은 확실히 달성한 셈이다. 그래서 영화 시작과 끝에 나오는 '인생은 추입이다'는 다소 유치한 문구가 그 어느 종교인의 말보다 더 값지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러닝타임이 133분에 달하는데 그 중 영화 전반부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다. 비닐하우스 맞대기 장면이나 제주도 기마경찰대 목장 신 등을 과감히 축소하는 편집의 묘를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추입마가 주인공인 영화여서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템포가 빨라지니 편하게 지켜보면 된다.

제작 화인웍스·예인문화 등, 배급 쇼박스㈜미디어플렉스. 12세 이상 관람가. 9월7일 개봉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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