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음악과 여행<65>

음악하는 필자로서 뭐니 뭐니 해도 태국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전통음악이 곧 대중음악이라는 것이다.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이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서양음악의 지배를 받지 않고 비교적 전통을 잘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궁중음악에서부터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악기들이 있으니 어딜 가나 태국적인 풍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태국의 주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지역 본래의 원주민이 아니라 중국의 남쪽 지방인 광둥(廣東)성과 윈난(雲南)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지금의 맹체(Meng-che)로 알려진 윈난성의 난챠오(Nan-chiao)는 AD600년 무렵 타이족의 도시로서 매우 번성했다. 몽골족의 침입을 받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은 외세의 구속을 받지 않고 송나라와 문화교류를 했다. 그러기에 당시 타이족의 음악은 송나라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3세기 후반 몽골이 송나라를 침범하자 중국인들은 남쪽으로 쫓겨났고, 태국인들은 지금의 타이지방으로 이주해 수코타이와 아유타야라는 두 도시를 중심으로 새 왕조를 세웠다. 1350년 무렵 아유타야왕국이 수코타이왕국을 지배하면서 아유타야가 태국의 수도가 되어 1767년까지 유지됐다.


타이왕조 건국이후에는 긴 세월 동안 캄보디아의 위협을 받아왔으나 1431년 앙코르를 정복하며 기세가 역전됐다. 이 무렵 한국 역사를 보면, 신라가 가락국을 멸망시켜 우륵의 가야금 음악을 수용했듯이 아유타야 왕조도 캄보디아의 크메르음악을 수용하며 새로운 궁중음악의 색깔을 지니게 됐다. 아무튼 타이왕조와 캄보디아의 관계를 보면, 로이에 예술단의 공연에서 앙코르와트 벽화를 떠올렸던 것은 당연한 결과인 듯싶다.

캄보디아를 정복한 아유타야는 번영일로의 길을 걸었지만 평화는 그리 길지 못했으니 1767년 버마(현 미얀마)의 침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 수도를 방콕으로 옮기고 차크리왕조가 시작됐다. 차크리왕조의 왕과 왕자들은 태국의 궁중음악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태국 궁중음악은 차크리왕조의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거쳐 오래 전부터 동남아 전역에 퍼져있던 인도음악의 색깔과 중국적 성향까지 가세한 태국의 고유한 음악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마하사라캄대학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음악학회에서 태국 음악학자들의 논문 내용들이 대부분 즉흥연주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만큼 태국 음악은 즉흥연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인데,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산조와 닮은 점이 많다. 김창조의 허튼 가락에서 비롯된 가야금산조가 여러 유파로 갈라진 것은 스승의 음악을 따르되 자기 나름의 음악 세계를 펼쳐갔기 때문이다. 연주자 나름의 개인적 음악 세계의 본질은 즉흥연주에 기인하는 것이니 악보에 충실한 서양음악에 비하면 연주자에게 상당히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셈이다.


독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겠지만 합주에서 즉흥연주를 한다면 여러 연주자들이 어떻게 가락을 맞추어 나갈까? 소리길이 달라지는데도 여러 연주자가 감각적 이심전심으로 합주를 하는 데는 나름의 정해진 길이 있으니 한국의 시나위합주에서 각각의 연주자가 장단의 틀 위에서 서로 맞추어 가는 방식과 상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의 합주음악을 들어 보니 높은 음역의 악기와 저음역의 악기들이 서로 독립된 선율을 동시에 연주하는 폴리포니적인 악곡들도 더러 있었다. 이때 자연적으로 화성적 현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서양의 화음과는 달랐다.

태국의 폴리포니적 합주는 인도네시아의 가멜란음악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데 이는 동남아음악의 독특한 예술경지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율적 특징으로는 등거리 7음계(Equidistant heptatonic scale)를 들 수 있다. 악사들에게 부탁해 등거리 7음계를 음렬 순으로 들어 봤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처음 태국음악을 들었을 때, 여러 악기에서 울려나는 등거리 7음계로 된 선율이 잘못 조율된 음이라고 여겼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자기중심적 오해였었다.

태국 악기들은 음량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아 다소 단조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가야금을 세게 퉁기고, 여리고 퉁겨도 그 음량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과도 비슷하다.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도 현을 뜯어서 소리 낼 때 음량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므로 피아노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여리게도 세게도 칠 수 있다고 해 ‘피아노포르테’로 불렀었다. 이러한 점에 미루어 보면, 오래된 악기의 음량의 한계는 동서의 사정이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 전통악기는 음량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지만 선율 도약과 농현으로 흥청거리는 시김새의 폭이 크므로 단조로운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반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음악은 선율의 도약이 그다지 크지 않고, 선율 골격이 매우 촘촘해 우리들 귀에는 단조롭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현상은 추운지역과 더운 지역의 음악적 차이 이기도 하다. 동선의 폭을 크게 해 심장 박동을 자극하므로써 몸의 열을 내야하는 추운 지역 음악은 비트가 강하고 선율의 도약이 큰 것과 달리 더운 지역 사람들은 움직임의 폭을 줄여서 체온을 내려야 하므로 박의 비트나 선율전개가 미세하고 촘촘한 것 현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태국에도 한국의 가야금병창과 같이 현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거나 판소리와 같이 타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태국에서는 놋쇠로 만든 캐스터네츠 크기만 한 칭(ching)이나 북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노래반주라면 화음이 들어가는 것에 익숙한 서양 학자들은 이를 매우 흥미로워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낮 설 것이 없으니 이는 아무래도 아시아적인 공통성에다가 중국을 사이에 두고 태국과 한국에 겹쳐지는 문화적 고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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