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교수(경희대 한의대 신계내과학) '성학'<31>

먼저 정관팽대부가 없는 불구(?)이면서도 많은 남성들이 동경하는 뱀을 알아보자. 한의학에서는 원래 뱀의 허물 벗은 껍질 사퇴(蛇退)를 대풍창(大風瘡), 개선(疥癬), 나력(瘰癧) 등 악성피부질환의 치료제로 사용했다. 나력(瘰癧)을 치료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폐결핵에도 많이 응용하지만 체내 음혈(陰血)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금기(禁忌)이며, 아무튼 껍질을 써야 한다.

또 뱀의 머리와 꼬리를 제외한 몸통 부분을 술에 담근 사주(蛇酒: 뱀술)도 약으로 사용했는데 이 역시 대풍창(大風瘡)이나 나병(癩病)의 치료제로만 가끔씩 사용했다. 따라서 뱀은 정력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유추하건대 뱀의 육질(肉質)은 남성호르몬의 원료로 사용되는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므로, 과거 못 먹었던 시절에는 영양 보충 식품으로 정력에도 일조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정력에는 뱀술이 최고라며 뱀 몇 마리를 통째로 술에 넣어 마셨다가 기대(?)하던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급성신부전(急性腎不全)으로 사망했다는 매스 미디어의 보도를 접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기까지 설명했는데도 뱀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 분들을 위해 약간을 덧붙이니, 독자들께서는 충분히 검토하실지어다.

“뱀은 독이 있어서 약으로 쓰기에 요긴하지 않지만, 대풍과 나병 치료에는 사용 가능하다. 유종원(柳宗元)의 포사자설(捕蛇者說)에서도 뱀의 용도를 말했는데, 옛날에는 가끔씩만 사용했다. 근래에 뱀은 자음보혈(滋陰補血: 인체의 음혈을 보충하는 것)의 효과가 있으므로 신체가 허약한 자에게는 선약(仙藥)이라면서 심한 자는 날마다 자기 몸을 보양하는 정력제로 삼으니, 이는 과연 무슨 까닭으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직껏 뱀이 정력제로 효과적이라는 걸 보지 못했고, 해악(害惡)만 늘어가니 뱀을 약용으로 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蛇사 有毒無緊유독무긴 只可療大風癩疾지가료대풍나질 柳文유문 捕蛇者說포사자설 亦云是역운시 已用古方穻用이용고방우용 至近者지근자 稱爲滋陰補血칭위자음보혈 而陰虛勞損等症이음허노손등증 例爲仙藥예위선약 甚者심자 以爲平日自奉之食品이위평일자봉지식품 此因果차인과 何以然歟하이연여 未見其效미견기효 徒增其害도증기해 用藥者宜愼之용약자의신지]”

우리의 불쌍한 멍멍이를 살펴보자. 문헌에 따르면 “개고기[犬肉견육]는 성(性)이 온(溫)해서 장양(壯陽: 양기를 튼튼하게 하는 것)의 효과가 있지만, 양기가 떨어진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기서 잠깐 ‘성(性)이 온(溫)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보자.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모든 약재는 각각 나름대로의 성미(性味: 성질과 맛)가 있다. 이 성미는 다시 ‘한(寒)·열(熱)·온(溫)·량(凉)·평(平)’의 오성(五性)과 ‘산(酸)·고(苦)·감(甘)·신(辛)·함(鹹)·담(淡)’의 육미(六味)로 구분된다. 각각의 성과 미는 나름의 작용이 있으니, 이런 성미의 작용을 인체에 응용해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 약물이론의 기초 원리다. 먼저 성(性)을 예로 들어보자.

가령 엄동설한에는 난로를 쬐려 하고, 삼복더위에는 시원한 물속에 뛰어들려는 것처럼 인체가 차가우면 뜨거운[熱열] 성질의 약으로 데워야 하고, 인체가 뜨거우면 차가운[寒한] 성질의 약으로 식혀야 하는 것이 너무도 손쉬운 약성(藥性)의 기초이론이다. 이를 개고기에 적용시키면, 개고기는 성질이 따뜻하므로 몸이 냉(冷)한 사람에게 적합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또 이를 한 번만 더 응용하면 개고기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해롭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味)란 무엇이냐? 이것도 쉽게 생각해보자. 살구처럼 신 과일을 먹으면 입에 침이 고이고 얼굴이 수축되면서 찡그리게 되니, 신맛[酸味산미]은 늘어져 있는 것을 수축시키거나 수렴(收斂)시키는 작용을 한다. 땀을 잔뜩 흘리고 축 처졌을 때 신맛 나는 오렌지 등을 먹으면 늘어졌던 몸이 일순 긴장을 되찾고 활기를 띠지 않던가? 그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매운 고추장을 먹으면 입을 벌려 ‘호호’거리면서 숨을 내쉬고 땀을 흘리니, 매운맛[辛味신미]은 발산(發散)시키는 작용을 한다. 가벼운 감기에 고춧가루를 탄 얼큰한 콩나물국이 최고라는 것은 이런 발산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육미(六味)가 지닌 나름대로의 독특한 작용을 인체에 적용시키는 것이 또한 한의학 약물이론의 두 번째 기초 원리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체를 구성하는 오장(五臟)의 기운 또한 살펴야 하고, 약물 한 가지도 오성과 육미가 마구 섞여 있기 때문이다. 개고기만 해도 미는 신감함(辛甘鹹)하다고 했으니, 어찌 한 가지로만 해석하겠는가?

너무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니 다시 개고기로 돌아가자. 독자들 중에는 어찌됐든 개고기가 양기를 북돋는 소위 정력제라는 게 문헌에도 나오지 않느냐며, 뱀은 몰라도 개고기는 괜찮겠다 싶겠지만 그 판단은 주의점을 살펴보고 나서 내리는 게 좋다. 먼저 ‘마늘과 같이 먹으면 원기(元氣)를 손상시킨다[與蒜同食損人여산동식손인]’고 했다. 또 ‘피를 제거하고 사용하면 효과가 적어 이롭지 못하다[不可去血불가거혈 去血力少거혈력소 不益人불익인]’고 했고, ‘9월에 먹으면 정신을 손상시킨다[九月勿食傷神구월물식상신]’고 했다.

자. 이 정도면 고기냄새 없애는 마늘은 절대로 넣지 않고, 선짓국처럼 응고된 핏덩어리가 둥둥 뜨는 개장국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보신탕이 무슨 따로국밥도 아니고 꼭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할까?

한편 뱀탕이나 멍멍이탕까지는 찾지 않더라도 모든 한약재를 정력제 취급하며 상복(常服)하려는 남성들도 있으니, 여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말(馬)의 정액이 떨어진 곳에서 자란다[馬精落地所生마정낙지소생]’는 전설의 육종용(肉蓯蓉)이 있다. 육종용은 기생(寄生)성 다년생초본인 오리나무 더부살이의 육질경(肉質莖)으로 생김새가 음경과 비슷한데, 그 끈적거림과 냄새까지 남성의 그것과 흡사하다. 여기에 모든 남성을 주눅 들게 만드는 거대한 음경의 소유자인 말의 정액이 필수적인 비료로 작용한다는 ‘설[說]’까지 가세했으니, 정력제로 여길 모든 조건(?)을 완비한 셈이다.

실제로 육종용은 자양강장(滋養强壯) 작용이 있어서 정혈(精血)이 부족한 사람에게 효과를 발휘해 양기를 굳건히 지킨다는 쇄양(鎖陽)의 이명(異名)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알맞게 사용해야 한다. 양기를 좋게 한다고 갑작스레 다량을 복용하면 설사만 해대기 십상이니, 밤새 화장실 들락거리다가 끝날 수도 있다.

또 ‘어떻게[何하] 머리가[首수] 까맣게[烏오] 되었나요?’라는 물음에 대답 대신 내놓은 약재였다는 전설의 하수오가 있다. 하수오는 여뀌과에 속한 다년생초본인 하수오의 뿌리다. 인체의 정(精)을 보충하고 두발(頭髮)을 검게 하며, 안색을 아름답게 하는 약리작용이 있다. 그러면 머리가 까만 것과 정력은 어떤 관계이기에 하수오가 정력제로 취급받는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신주발(腎主髮: 인체의 모발은 신이 주관한다)’과 ‘발자혈지여(髮者血之餘: 모발은 정혈의 잉여이다)’라는 한의학의 생리 이론이 필요하다.

먼저 신(腎)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장(五臟)중의 하나로 인체의 비뇨·생식·내분비·성·노화 등을 총괄적으로 주관하는 장부(臟腑)다.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비뇨생식기계나 내분비계의 각종 질환은 신(腎)의 기능과 밀접하다고 파악하며, 치료 또한 신기능을 조절하는데 비점을 둔다. 이런 신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전신의 모발을 주관하는 것이고, 모발은 정혈의 잉여분이라는 이론에 근거한 결과, 인체의 정혈을 보충하는 하수오는 결국 신의 기능을 도와 성기능을 왕성하게 한다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아니 이런 복잡한 이론 필요 없이 윤기 나는 까만 머릿결이 성적 매력을 물씬 풍긴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만 떠올려도 하수오가 정력제로 취급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여튼 하수오는 부족한 정혈을 보충하는 약물로 임상에서 많이 활용된다. 이 때문인지 시중에는 박주가리과에 속한 백하수오(白何首烏)라는 게 등장해서 진짜 하수오를 밀어내며 더욱 고가(高價)로 팔리고 있다. 마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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