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언어로 시와 수필을 쓰며 40여년 수도공동체에서 수녀 생활을 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가 28일 모방송에 출연해 '진짜 그 분이 있는지 의심 할 때가 있다'는 말을 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날 제주도에도 '진짜 부처님이 있을 까'를 의심하는 사건이 관음사 접수를 놓고 벌어졌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관음사 사태는 급기야는 법원 집달관의 관음사에 대한 강제집행에서 막을 내렸다.


그동안 관음사를 지키겠다고 '사수'를 다지며 관음사 전 주지 중원스님을 중심으로 한 중원스님파는 총무원에서 주지직무대행으로 임명한 시몽스님에게 밀려 관음사를 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불자들은 이분화, 적대시 하며 싸움을 벌여 왔다.


중원스님측 신도들은 어쩌면 희생양일 수도 있다.


불교에는 '사홍서원(四弘誓願)과 삼귀의(三歸依)'라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법문이 있다.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라는 '사홍서원'은 기도이며 '시방에 항상 계시는 부처님께 귀의하옵니다. 시방에 항상 가득한 법에 귀의하옵니다. 시방에 항상 계시는 스님께 귀의 하옵니다.'는 '삼귀의'는 결의 이다.


 


신도들은 늘 이처럼 기도하고 결의를 다지며 불법에 들어 스님께 '귀의'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신도들은 스님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불교계에는 조계종뿐만 아니라 태고종 천태종등 여럿 종파가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불교에서 조계종은 교세에서 단연 태고종과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최대 불교 종파이다.


 


차치하고, 관음사는 이같은 조계종 제주도 본사이다.


비록 절 숫자에서는 태고종에 못 미치나 중앙집권적 본사로서 그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다.


그러기에 관음사 주지는 제주도 불교계를 대표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음사 주지의 위치는 비단 이러한 외부적 위상만이 아니다.


제주도 불자들의 종교적 사표로서 추앙을 받는 자리가 관음사 주지라는 위치인 것이다.


 


그러함에 이에따른 책임 또한 막중하다.


그래서 추앙과 존경을 받아야 하며, 사표로서 불자들을 이끌고, 이들을 '귀의'시켜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살아 있는 '부처'로서의 역할을 해야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중원'은 진정 그러한 '책임'을 다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봐야 한다고 여긴다.


그를 추종했던 신도들은 '삼귀의'에 따랐을 뿐이다.


'늘 시방에 항상 계시는 스님께 귀의합니다'는 모든 것을 '스님께 맡긴다'는 뜻이다.


우리는 '중생'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어린 양'이다.


그러한 어린 양들을 안전하게 푸른 목초지로 이끄는 '책임'을 '중원'이 했는가가 오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중원을 관음사에서 밀어 내고 이를 접수한 총무원이나 시몽스님이 그러한 종교적 사표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의 문제다.


어떻게 흐트러진 신도들의 마음을 불법으로 어루만지면서 이들을 품안으로 다시 '귀의'토록 하게 해야 하는 문제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다.


 


부처님의 '인과법칙(因果法則)'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속된다.


누구든 거기에서 벗어 나지는 못한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는 불법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 '업보(業報)'다.


그러함을 새삼 깨닫도록 관음사 사태는 우리를 교육시키는 것은 아닐까.


이를 계기로 제주도 불자들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야 한다.


그래야 '시방세계에 항상 부처님이 계실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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