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교수(경희대 한의대 신계내과학) '성학'<48>

술과 담배. 이 두 가지는 성인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기호품이다. 물론 저자의 형님처럼 이 성인들의 군것질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건강을 이유로 독하게 끊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까닭에 ‘좋아해서 먹기를 즐긴다’는 의미의 기호품(嗜好品)이란 단어도 적절하지 않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술과 담배가 성인들이 즐기는 기호품의 두 거두(巨頭)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는 청소년들이 어른 행세를 흉내 낼 때 이 두 가지를 가장 많이 따라한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성인들의 기호품은 성인이 되고서야 발휘 가능한 성기능에는 악영향을 끼친다. 땀 흘린 뒤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불안하고 초조할 때 담배 한 개비. 모두 그럴듯한데 도대체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영웅호주색야(英雄好酒色也)’, ‘주색잡기(酒色雜技)’ 등의 구절은 술과 성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암시한다. 도대체 술은 성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우선 술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 거치는 과정부터 알아보자.
사발로 벌컥벌컥 들이키는 막걸리가 되었든, 혀끝으로 살짝 마시는 위스키가 되었든 술의 성분은 알콜(alcohol), 정식명칭으로 에틸 알콜(ethyl alcohol)이다.

이 유동성의 강력한 유기용제(有機溶劑)는 지질(脂質)로 이루어진 세포에는 어디든 들어간다. 술 속에 함유된 알콜(C2H5OH)의 약 80%는 소장에서, 20% 가량은 위에서 흡수되어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 이후 혈중 알콜은 다시 간장(肝臟)으로 보내져 산화과정을 거친다. 먼저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로 변한 뒤 초산(醋酸)으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돼 몸 밖으로 배설된다.

취(醉)한다는 것은 간장에서의 산화과정 중 발생하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 때문이다. 그나마 숙취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왜냐하면 아세트알데히드의 강력한 독성은 간장에 무리를 초래해서 지방간이나 간경화 등의 질환을 유발하며, 간혹 알콜중독증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편 물은 그만큼 못 마시면서 맥주는 한 번에 대여섯 병씩 들이키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주가(好酒家)도 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술은 문자 그대로 ‘술술’ 넘어가기 때문이라는데, 사실은 알콜이 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계속 흡수되므로 흡수되는 양만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즉 보통의 음식물은 위에서는 흡수되지 않고 장(腸)으로 보내져서 흡수되는 까닭에, 이전에 들어간 물이 장으로 보내지기 전에 연거푸 마시면 위장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 좋아 마시든 화가 나서 마시든 일단 술을 들이키면, 혈액 중의 알콜은 마취제로 돌변해서 인체의 뇌세포와 신경세포를 얼큰하게 만든다. 이것이 취(醉)한다는 것이다. 취하는 정도는 혈중의 알콜농도에 따라 결정된다. 대략 소주 석 잔, 맥주 한 병 정도면 혈중 알콜 농도는 0.05%가 되는데, 취기(醉氣)가 돌기 시작하는 이때 핸들을 잡았다간 음주운전으로 망신당하게 된다. 멀쩡하던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는 험한 세상에 어찌 맨 정신으로 다니겠느냐고 항변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2홉들이 소주 한 병 반 정도면 혈중 알콜 농도가 0.15%를 넘어 ‘만땅’으로 취하는데[滿醉만취], 이때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일쑤이다. 0.3%를 넘어서면 똑바로 서지 못하고, 0.5%를 넘기면 호흡중추까지 마비돼 혼수에 이르며, 1%라는 마지노선을 넘으면 아무리 술이 센 사람이라도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술은 일종의 마취제이므로 적정량만 들이키면 신경을 안정시켜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때로는 용기를 북돋아줘서 소심한 사람의 성기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아울러 신경마취의 결과로 성감이나 사정이 지연돼 조루증 환자의 치료제로도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술에만 의존해서 모든 일을 해결하고자 하면 곤란하다.

음주가 습관화되면 성욕과 성반응이 감퇴하고, 때로는 주량을 늘려야만 같은 효과를 얻는 등 악순환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또 과음을 하면 알콜로부터 산화된 물을 자꾸만 배설해야 하니, 이런 빈뇨는 성기를 이완시켜 나아가서는 배뇨직후성 발기부전증까지 일으키기 때문이다. 비록 과음으로 인한 성기능장애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소심한 사람은 ‘다음에 또 그러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실제 발기부전증 환자가 돼 과음은 피해야 한다.

혹한(酷寒)에 바닷물이 얼지언정 술은 얼지 않으므로 술의 성질[性성]은 뜨겁다[熱열]고 했다. 술은 모든 한약재가 갖는 여섯 가지 맛 중 단맛, 쓴맛, 매운맛[甘苦辛감고신]을 갖는다. 온갖 사사로운 기운을 물리치고[殺百邪惡毒氣살백사악독기], 전신의 혈맥을 소통시키며[通血脈통혈맥], 근심을 잊게도 또 화를 내게도 하며[消憂發怒소우발노], 큰소리치거나 뜻한 바를 펼치게끔 만든다[宣言暢意선언창의] 했다. 그러나 독(毒) 또한 있어서 적게 마시면 정신을 튼튼하게 하지만[少飮壯神소음장신], 과음하면 수명이 깎인다[過飮損命과음손명]고 경고했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천혜(天惠)의 선물, 술! 성기능에 대한 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어떻게, 또 어느 정도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명이 깎일 정도로 과음한 뒤 길거리에서 다시 반납하는 추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말자!

전 세계적으로 금연운동이 한창인 요즘에는 담배만큼 천대받는 성인의 기호품도 없을 듯하다. 아니 사실 담배보다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대접받지 못한다. 하여간 담배는 금세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부상해서,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혐연권(嫌燃權)까지 자주 거론된다.

이와는 약간 별개로 인류학자들은 성인의 흡연을 어렸을 적 엄마 젖을 빨았던 것의 대상(代償)행위로 간주해서, 담배가 결국은 형태를 얼른 알아채기 힘들게 바꿔놓은 ‘모조 젖꼭지’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담배 없이는 못 산다’는 애연가들은 ‘식후불연(食後不燃)이면 발기부전(勃起不全)이라!’를 외치며 맛있게 담배를 피워 문다. 과연 담배는 건강에, 또 성기능에 어떤 영향을 줄까?

담배는 500여 종에 이르는 각종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성분은 바로 니코틴(nicotine)이다. 니코틴은 대단히 유독한 무색의 액체상 물질이어서 농업용 살충제나 수의과에서 외부기생충 살충제로도 많이 사용한다. 니코틴의 치사량은 약 5㎎인데 담배 한 개비에는 20~30㎎이 들어 있으므로 한 모금만 빨아도 사망할 것 같지만, 인체 내에서 신속하게 대사돼 오줌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식욕감퇴를 일으키거나 위산분비를 저하시키고, 중추신경계에 작용해서 오심(惡心), 구토 등을 유발한다. 또한 심장의 혈액 박출력을 약화시키고 말초혈관의 부전상태를 일으켜 혈압 및 체온을 떨어뜨린다. 아울러 니코틴은 발기에 필수적인 음경해면체 근육의 이완을 저해해서 음경 안으로의 혈액 유입을 감소시키고, 음경 안으로 유입된 혈액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정맥의 수축력을 상실시켜 발기장애를 유발한다.

니코틴 이외에도 담배에는 일산화탄소라는 맹독가스가 단 한 개비 속에도 2만ppm이 들어 있어서 이를 그대로 다 마시면 10분 이내에 사망한다. 그러나 이 역시 공기 50㏄와 같이 마시면 200~00ppm 정도만 폐 속으로 들어가므로 안전하다. 하지만 폐 속으로 들어간 일산화탄소는 혈색소인 헤모글로빈과의 친화력이 강하기 때문에 산소를 제치고 혈액 속으로 들어가 산소결핍증을 일으키니, ‘팽’하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유발한다. 또 심장의 부담이 커져서 심장질환의 원인이나 빈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발암물질로 알려진 타르(tar)도 한 개비에 20~30㎎이 들어 있기 때문인지 흡연자에게는 폐암이 많다고 보고된다. 특히 담배 중에서도 독한 담배를 젊어서부터 폐 속까지 깊숙이 흡입하며 꽁초가 될 때까지 피워대는 사람일수록 폐암의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담배는 아주 해롭기만 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과다하게만 피우지 않는다면 흡연은 뇌의 활동과 혈류량을 높여서 뇌를 산뜻하게 만드는 한 모금의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화가 났을 때의 흡연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비즈니스 때의 흡연은 대화를 부드럽게 하며, 잊고 싶은 게 있을 때의 흡연은 담배연기 속에 생각을 담아 훌훌 날려 보내게 만든다. 최근에는 노인성 치매라는 숙명적인 질병의 예방 목적으로 담배가 적극 권장될 정도이다.

이번에는 담배를 한의학적으로 살펴보자. 한의학에서 연초(煙草)라 일컫는 담배는 성(性)은 열(熱)하고 매운맛[辛味신미]을 갖고 있어서 한독(寒毒)과 습독(濕毒)을 다스린다고 했다. 또 담배는 선행선산(善行善散)하고 다조다화(多燥多火)하므로 음체(陰滯)에 쓰면 신효(神效)하지만 원기가 부족해 땀이 나는 사람[氣虛多汗者기허다한자]이나 마른 사람[瘦人수인]에게는 좋지 않다고 했다.

독자들께서는 성미(性味)까지는 알겠는데, 한독(寒毒), 습독(濕毒) 다음에 나오는 말들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쉽지 않은 한의학의 생리 병리 이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하여튼 간단히 설명해 보자.

먼저 차갑고 축축한 습기(濕氣)로 가득찬 방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해도 습기가 제거되고, 방바닥 밑에 불을 때도 차가운 공기는 따뜻해지니, 담배는 바로 이런 작용을 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차가운 물은 자꾸 응축하려 하고 뜨거운 불은 자꾸 타오르면서 퍼지려고 하니, 신열(辛熱)한 성미(性味)를 가진 담배는 어떤 작용을 하겠는가? 당연히 무엇인가 발산시키는 작용, 습기를 쫙 말리는 작용을 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담배는 비쩍 마른 건조한 사람보다는 쥐어짜면 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한 뚱뚱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이는 ‘비인습다 수인화다(肥人濕多 瘦人火多: 뚱뚱한 사람은 습기가 많고 마른 사람은 화기가 많다)’라는 한의학의 가장 기초적인 병리관(病理觀)과도 일치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슬과 안개가 자욱해서 축축하고 차디찬, 소위 한습(寒濕)한 기운이 넘쳐흐르는 산길을 지날 때는 담배가 이롭다는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또 담배를 많이 피워 가슴이 답답할 때는 반대로 물을 마시는 게 가장 좋을 거란 추측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도 금연 시 나타나는 금단증상(禁斷症狀)을 이기려면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다고 하니, 니코틴 등의 화학물질을 거론하지 않아서 그렇지 한의학에서는 담배의 성미(性味)를 가지고 이미 설명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덧붙여 한의학에서는 오성(五性)과 육미(六味)가 우리의 심신(心身)을 길러주기도 하지만 과복(過服)하면 유해하므로 절제(節制)할 것을 주장했는데, 특히 신미(辛味)를 너무 많이 섭취하면 몸의 근맥(筋脈)이 무너져 늘어지고 정신마저도 황폐화된다[味過於辛미과어신 筋脈沮弛근맥저이 精神乃央정신내앙]고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담배도 술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어떻게 피우느냐가 중요하다. 의사들은 성기능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흡연을 즐기기 위한 방편으로 흡연량을 하루 20개비 이하로 줄이고, 연기를 깊숙이 흡입하지 않으며, 길이는 3분의1까지만 태우되 필터를 사용할 것 등의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런데 저자 같은 한의사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기 마련이다. 바로 자신의 체격, 즉 앞서 설명한 비수(肥瘦)를 염두에 두고 담배를 즐기시라고….

애연가 제위이시여. 사람이 많이 모인 공공장소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자제하고, 금연구역에서는 절대로 피우지 않으면서, 의사의 권고사항까지 준수하는 멋진 남성(물론 여성도 있겠지만)이 되시옵소서.

지상사 02-3453-6111 www.jisangsa.kr<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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