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16년 만에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형두)는 18일 노상에서 술에 취한 취객들의 지갑을 절취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절도)로 기소된 이모(44)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이씨는 지난 6월21일 새벽3시05분께 서울 중구 관철동 삼일빌딩 앞 노상에서 술에 취한 A씨의 바지에서 지갑을 꺼내다 현장을 지나가던 경찰에게 체포됐다.

조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이씨에 대해 특이한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손가락 지문 대조기법을 통해 이씨가 이미 법적으로는 '사망자'였던 것이다.

이씨는 출생 직후 부친이 사망하고 모친은 가출해 큰아버지의 아들로 살다가, 1992년 큰아버지가 사망하자 친척들과 연락이 끊겼다.

친척들은 이씨의 행방을 찾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1994년 법원에 실종선고를 청구, 1995년 3월 실종선고에 따라 사망자가 됐다.

그러나 당시 이씨는 주방보조로 일하거나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다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실종 선고 후 출소하게 된 이씨는 하루아침에 법률적으로 사망자가 됐고, 이로 인해 신분을 증명하는 어떠한 신분증도 발급받을 수 없었다.

이후 이씨는 호적을 살리려고 경찰, 검찰, 구청 등 각 기관에 문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있는 이씨는 다시 절도를 하는 등 지난해 5월까지 총 5차례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앞서 지난 7월 진행된 공판준비기일에서 이씨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그곳에서도 신분증을 요구해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 절도범행을 반복하게 됐다"며 "실종선고가 취소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진 뒤 재판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어 "호적을 살리려고 여러곳에 문의를 했지만 경찰 및 검찰에서는 구청으로, 구청에서는 법원으로, 법원에서는 사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미뤘고, 교도소에 있을 때는 신청할 비용도, 증명할 서류도 없어 호적을 살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이씨에 대한 형사처벌도 중요하지만,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출소 후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5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하면서 국선변호인이 실종선고 취소심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남현우 국선전담변호인은 이 사건 증거기록에 첨부된 손가락 지문번호 대조자료를 이용해 이씨와 사망자가 동일인임을 소명, 지난 8월24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취소심판을 받아 16년만에 사망자 신분을 벗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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