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걷이가 끝나면 부종(조 파종)이 이어진다. 부종 역시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어서 서로 수눌어(몇 사람이 조를 짜서 집집의 일을 순서대로 돌아가며 합동으로 일하는 일종의 계) 작업으로 하는 것이 예사였다. 부종을 앞두고 아버지께서는 산에 방목한 암소와 암말을 끌고 와 대비한다. 농촌에는 부종하는 날엔 보리밥에 콩과 팥도 섞고 반찬도 갈치나 고등어조림을 하여 마치 잔칫날과 같았다. 밭갈이 하는 『부릉이』(숫소)에게도 청촐만 아니라 보리겨나 콩을 먹이는 등 더위먹지 말고 밭가는 일에 힘쓰라고 정성을 들인다.


아버지는 밭 갈고 어머니는 섬피(나뭇가지 묶음)로 이랑을 끌어 메우고, 동네 아저씨는 말과 암소를 엮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뒤따르며 밭을 밟는다. 어린 나도 한 몫 한다. 앞선 아저씨는 흥겹게 노래를 선창하는데 노래의 끝에는
"얼얼럴 하량." 하고 끝냈고, 뒤따르던 우리들도 "얼얼럴 하량." 하고 후렴을 읊었다. 그 " 얼얼럴 하량." 하는 뜻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점심때가 되면 흙먼지를 뒤집어 쓴 얼굴에다 손도 씻지 않고(씻을 물이 없었기 때문)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어버지는 느닷없이


"막아지가 되어야 하는데‥‥."


하고 말하면, 아주머니들은


"막아지 안되면 검질(잡초) 매젠 허민 죽어날 겁주."


하고 응답하는 것이었다. 그 『막아지』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듣고만 있던 내가 훗날 알고 보니, 부종이 끝나고 일 주일 정도 비가 오지 않으면 『막아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부종 끝에 비가 오면 검질이 많이 돋아 나고 일 주일 정도 비가 안 오면 잡초가 많지 않아 잡초제거하는 수고를 덜게 된다는 뜻이었다.


요새는 좁쌀이 쌀값보다도 더 비싸져 아직도 부종하는 번거로움 때문인가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라 참새 때문에 조를 재배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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