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입동(立冬).


겨울 초입에 들어 선다는 입동을 하루 앞둔 7일은 본격 겨울철이 오기도 전인데 얼음판을 깨트리는 돌덩이가 떨어 져 '판'이 깨져 버린 날이다.


 


산하가 붉다 못해 타들어 가는 듯한 겨울 초입, 만추(晩秋)의 계절에 '대선(大選) 판' 지각이 파열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금 국민들 시선은 다른 것을 볼 겨를 없이 깨진 '대선 판'으로 온통 모아지고 있다.


 


이것이 지금 이 계절에 우리들에게 다가 온 '현실'이다.


 


산에 오르고 계곡에 들어가 단풍이 물들 듯이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물 들이려 해도 그럴 여유가 없다.


산속에 가 있어도 마음은 그 '판'속에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40여일 앞 둔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마음을 추스려 현실을 다시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도 살피자는 뜻이다.


 


오늘 이같은 현실의 닥침은 돌을 던짐에도 기인하고 있으나 돌을 던지도록 불러 들인 데도 원인이 있다.


모두가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되도록 불러 들인데 기인 한 것이다.


즉 '그렇게 되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로마'가 세계제국을 건설, 개인이 국가에 함몰 되던 시기에 로마를 풍미했던 '스토아'학파는 그러한 '운명론'을 펼쳤다.


'전체'를 '개체'에 앞 세우는 시기에 '운명'이란 '그것에 따라 일어 난 것이 일어 났고 일어 나는 것이 일어 나며, 일어 날 것이 일어 날' 그런 '원리'라고 스토아 학파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이 '이(李)씨의 나라'가 된 것 처럼 된 것은 아닌가.


'이'씨들 이름만이 '판'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이란 이씨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 '이재오'가 나오고 '이인제'가 다시 나오고 '이회창'이 또 다시 나오고, 따라서 '제2 이인제'가 '이회창'의 대선출마 선언으로 다시 거명되더니 '이방호'까지 이씨가 나오고 있다.


 


정모씨, 문모씨, 심모씨, 권모씨등은 저만 치 있는 것 같은 형국이다.


가히 '이씨 대한민국'이 된 것 같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박근혜 전대표가 엄연히 존재해 있는 '판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박 전대표'가 움직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게 됐다.


 


그러함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든 현실은 '잘 했다', '잘 못 됐다'로 갈려 져 있다.


'홀홀 단신 출마결심을 했다'는 '필마단기(匹馬單騎)'를 '경선전통을 깨는 배신'또는 '자기만 아는 독선'이라고 비난을 하는가 하면 '올 것이 왔다'고도 하고 있다.


 


틀린 말이 라고 할 수 만은 없다.


숱한 경선과정을 거치며 처절한 경쟁을 뚫고 얻은 '후보'를 누구는 '가만히 앉아 있다' 가 그냥 그것을 앗아 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반면 '잘 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고 고개를 끄덕이는 쪽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무소속'이란 제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일어난 사단이다.


 


그러기에 그것 또한 '그렇게 되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어제는 판이 깨졌고 오늘은 이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새 판'이 짜여지고 있다.


이것이 오늘 또 다른 현실이다.


 


정동영후보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 한 것 처럼 한나라당도 '전력투구(全力投球)'를 선언하고 나섰다.


본격적인 합종연횡(合從連衡)의 시작이다.


 


8일 이재오 최고위원이 전격 사퇴를 했다.


 


'신호탄'이다.


 


그 또 다른 '판'을 읽기 위한 '여론조사'가 매체마다 또 불이 붙었다.


앞다퉈 '여론조사기관'돈벌이에 앞장서고 있다.


 


아무리 판세를 미리 보려 해도 '그렇게 되게 될 것은 그렇게 될 것'이 아닐까.


 


한 켠의 이 같은 생각이 한 단계 위에서 밑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것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플러스 마이너스 오차범위가 몇%'라고 여론조사 정확도를 밝히고 있으나 '그렇게 되는 것'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 기에 더욱 그렇다.


 


'운명'이란 '틀'에는 오차범위가 없을 것이기에.


 


'일어 난 것이 일어났고 일어나는 것이 일어나며 일어날 것이 일어 나게 되어 있는 것'이 또한 각자의 '현재(現在)'라는 운명일 것이다.


 


일주일 후면 '김태환지사'에게도 '일어 날 것'이 일어 난다.


대법원 '판결'이란 '운명'이란 '현재'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시점에서의 '예단'은 아무것도 없다.


어떠한 것이 일어나든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는 '운명'외에는 없다. 


 


'2007년 가을'.


이 가을에....


'운명은 순종하는 자를 인도하고 거역하는 자를 강제한다'는 스토아 학파의 '철리(哲理)'를 음미 해 보며 낙엽을 밟아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붉게 타오르는 단풍 잎도 곧 낙엽이 된다는 순환을 생각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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