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米壽)'를 바라보는 8순의 노 언론인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자전적 수상집을 냈다.
15년여 제주신문 편집국장직을 수행하면서 숱한 제주도민을 만난 소회와 제주도민이 아니면서 제주화 하는 과정을 '추억'과 함께 담담하게 그려 냈다.
'현초(玄焦) 최현식'
해방되던 시절 제주도와 인연을 맺어 1.4후퇴 때 혈혈단신 제주도로 입도, 온 갖 풍상을 겪으면서 켜켜히 쌓아 온 자신만의 '추억'을 언론인의 시각과 작가적 눈으로 제주사회를 보며 평생을 해온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냈다.
그래서 노후 '인생'을 다시 관조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모음 집을 냈다.
제목은 그래서 '달빛은 천강에 비치더이다'로 지었다.
평소에 가장 존경해 왔다는 입이 닳도록 말했던 판사 스님인 '효봉스님'의 마지막 법어 '무엇이 있다면 천강에 비치는 달빛 뿐이다'라는 말에서 비롯, '인생에서의 허무'를 뜻하려 하는 본인의 심중을 표현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올해로 84세.
마지막 산등성이를 지팡이를 짚고 넘어가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지나 온 발자취를 더듬 듯 써내려 왔던 지난 '칩거'몇 년간의 소회를 일간지와 문학지등에 실렸 던 글들을 다시 손질, 최근의 심경과 함께 '자신의 속내'를 펼친 글들의 모음이다.
그는 이책을 내면서 '인연'에 감사를 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제주바다'에 고맙다고 하고 있다.
제주도에 정착, 이 땅의 여인과 결혼을 하고 13평의 첫 둥지를 튼 감회를 첫머리에 놓고 있다.
그만큼 아직도 그 추억이 그에게는 '감사'의 마음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는 그외에는 '소유'한 것이 없다.
소유한 것이 있다면 이역만리 제주땅에서 살며 제주도와 가진 '인연'외에는 없다.
고향은 함경남도 홍원.
그 후 그는 고향을 잊었다.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그의 고향은 제주도라는 또다른 고향에 묻고 오늘까지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 왔다.
그 소중함을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될 것이 확실환 222쪽에 남아 있다.
그는 1946년부터 50년까지 '삼천리'기자를 거쳐 57년 '노루'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작가로 등단한다.
'예총제주도지회장'을 역임했고 제주도문화상도 받았다.
그는 제주신문 편집국장 당시 80년 5.18 신군부에 의해 편집국장직에서 강제 해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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