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인하도 턱 없이 부족한데 수업일수는 왜 줄인 겁니까?"

대학들이 2012학년도 등록금 인하안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시끌시끌하다. 등록금을 내렸다지만 인하액은 겨우 10만원 수준이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수업시수와 졸업이수학점 등을 줄여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다 학생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한양대와 광운대는 최근 각각 등록금을 2% 내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내리면서 올해부터 한 학기당 수업일수를 16주에서 15주로 축소키로 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양대 학생들은 등록금과 수업일수를 바꿔친 대학의 '꼼수'라며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등록금 추가인하와 수업시간 16주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 게시판 '아고라'에서는 수업일수 원상 복구와 수업일수 축소에 비례해 등록금을 더 내릴 것을 요구하는 청원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 청원은 애초 500명의 서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현재 500명을 훌쩍 넘긴 600여명이 서명을 마쳤다.

게시판에는 또 '등록금을 인하한다고 수업일수를 줄이는 것은 대학이 교육을 장사로 보기 때문이다', '등록금 올릴 때 수업일수 늘었나요', '학생들의 실정을 무시한 채 생색내기 인하와 뒤로는 학생의 수강권리조차 빼앗는 어처구니 없는 한양대' 등 대학을 비판하는 댓글이 잇달아 오르고 있다.

한양대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는 지난 9일 서울 성동구 교내 신본관을 찾아 항의 집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최초에 학교에서 제시한 예산액은 국가장학금을 포함해 203억원 규모였다"며 "그러나 2% 등록금 인하를 제시하면서 등록금 인하액과 장학금 50억원 등을 합하니 146억원으로 줄어들었다"고 꼬집었다.

중운위는 지난 1일 ▲203억원 이상의 예산 활용 ▲수업일수 16주 유지 ▲단과대학별 자율예산 삭감내역 공개 ▲등록금 재협상 창구 마련 등의 요구사항을 담은 성명서를 총장실에 전달하기도 했다.

대학들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의무 수업일수가 학기당 15주로 규정돼 있고 계절학기를 늘려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양대 관계자는 "수업일수가 16주 때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인 1주일동안 모두 수업을 하지 않았다"며 "15주로 변경하면서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도 수업을 하도록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4주간 계절학기를 운영할 당시 6학점만 신청할 수 있어 잘못 받은 학점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치중했지만 이제 계절학기를 5주로 늘리고 9학점까지 신청이 가능해 학점을 많이 따야하는 다중전공과 융합전공이 활발하게 운영돼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운대 관계자는 "일부 학점교류대학이 15주 동안 수업을 실시해 그에 맞추기 위해 수업일수를 줄인 것"이라며 "올해부터 교수님들이 재량껏 실시하던 휴강 등의 행위를 금지해 수업이 더 충실히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생색내기 등록금 인하에 이어 지출을 최대한 줄일려는 학교측의 행태를 비난했다.

한양대 2학년에 재학중인 김모(23)씨는 "수업일수를 한 주 줄인다면 등록금도 16분의 1만큼 인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학이 계절학기를 강화해 교육기회가 확대됐다고 하지만 방학 중에 다음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도 벅찬 학생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광운대 3학년에 재학중인 서모(25·여)씨는 "다른 대학들은 수업일수 축소 없이 등록금을 2~5% 인하했는데 우리 학교는 수업시수도 16주에서 15주로 줄이고 등록금은 고작 2% 인하했다"며 "수업일수가 6.25% 줄었지만 등록금은 2%밖에 인하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등록금이 인상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아예 졸업이수학점을 축소한 대학도 있다.

가천대 글로벌캠퍼스는 올해 한의학과와 건축학과를 제외한 영어영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 등 일부학과의 졸업이수학점을 130학점에서 120학점으로 낮췄다. 또 기초교양과목 이수학점을 대폭 줄였다.

익명을 요구한 이 대학의 교수는 "대학이 지난 여름부터 각 학과에 졸업이수학점 축소 관련 의견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학점 줄이기를 준비했다"며 "대학으로써는 교양학점을 줄이면 시간강사료와 시설비용이 줄어들어 예산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학 가천대 관계자는 "학사기획팀 등 관련부서가 많은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한 것"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인 백모(25)씨는 "이수학점이 줄면 졸업은 좀 더 쉬워질 수 있지만 이게 정말 바람직한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며 "교양과목을 통해 상식과 시야를 넓힐 수 있는데 이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등록금 인하에 따른 수업일수와 이수학점 줄일 경우 자칫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덕원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수업일수와 졸업학점을 줄이는 것이 예산절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며 "수업일수와 졸업이수학점을 줄일 경우 자칫하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써 그 취지에 맞는 결정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규 등록금넷 조직팀장은 "등록금이나 교육의 질과 관련된 문제를 대학이 단독으로 결정해 통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수업일수와 이수학점을 줄일 때에도 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신중해야하고 학생들과 충분한 논의 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생색내기 등록금 인하도 모자라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데만 급급한 대학 행정은 '꼼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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