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제문(漢拏山祭文)
만력 29년 9월 을미 그믐 25일 기미에, 국왕(國王)은 성균관 전적 김상헌(金尙憲)을 파견하여 한라산 신령께 제사를 드리고 엎드려 아뢰옵니다.
산은 높고 둥글게 바다 가운데 있어, 아래로는 수부(水府)에 도사리고 위로는 운공(雲空)에 닿아, 백령(百靈)이 계시며 모든 산악의 으뜸입니다. 탐라의 진산(鎭山:나라 지키는 산)이 되고 땅은 남유(南維)의 끝이 됩니다.
하늘을 대신하는 신령(神靈)의 권능으로 우리 백성을 도우시니, 질역(疾疫)의 재앙이 없고, 풍우가 때를 맞추어서 화마(火麻)가 땅에 깔리고 축산(畜産)이 번성하며, 고을은 그래서 편안하고 나라가 이같이 도움이 됩니다. 풍족하고 유택한 것이 신령(神靈)의 덕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찌하다 못난 무리들이 감히 흉역(兇逆)을 도모하여, 드디어 숨어살며 날로 속이고 현혹시키며 개미처럼 무리를 모아 해독이 점점 커졌습니다. 비록 나라의 불행이나 또한 신령(神靈)의 부끄러움입니다. 음모가 일찍 탄로나서 두목이 처단되고, 온 섬이 평안을 얻었습니다.
큰 난리가 일찍 끝났으니 신령께서 도와주심이 아니었던들 어찌 이렇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에 마땅히 사신을 보내어 경건히 아뢰옵니다. 제물은 비록 박하오나 정의는 돈독합니다. 지금부터 앞으로는 세세 흠향(歆享)하시어 세상의 소요를 그치게 하소서. 길이 바다 변방에 전례(奠禮)를 드리옵니다.(지제교 이수록(李綏祿) 지어 올림)

제사를 지낸 뒤 절정에 올라 설순(雪淳)의 시축(詩軸) 가운데 외할아버지의 시운(詩韻)에 버금하여 시를 짓는다.(2수)

북객이 어이하여 이 봉우리에 이르렀나,
한 개의 대지팡이에 의지하여 여기 왔네.
왕사 또한 평지와 험로 있음을 알지니,
경종(景鐘)에 이름 오르길 바라서는 안 되리.

바다 밖의 외로운 배 어느 날 돌아가련고,
아득한 물결 보니 꿈속에 온 듯하구나.
그러나 선경에 다시 오기 어려우니
해 진다고 돌아가자 재촉일랑 하지 마오.

지지(地誌)에 의하면 ⌜한라산은 주(州)의 남쪽 20리에 있다. 그 이름을 한라(漢拏)라 한 것은 은하수를 잡을 수 있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또한 두무악(頭無岳)이라고도 하는데, 그 봉우리마다 모두 평평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두모악(豆毛岳)이라고 하는데, 산의 연락이 하나같지 않고, 봉우리 꼭대기에 모두 못이 있어 마치 물을 담은 그릇을 닮았기 때문이다. 또 원산(圓山)이라고도 하는데, 산 모양이 활이나무지개처럼 높고 길게 굽히어 둥글기 때문이다. 높게 중천(中天)에 닿아있고, 수백여 리에 웅거(雄據)한다. 산꼭대기 절벽은 병풍 같은데, 높이 수백여 길이나 된다. 절벽 위에는 직경이 수백보나 되는 못이 있다. 못 가에는 모래가 평평하게 깔렸으며, 총죽(叢竹)과 자단(紫檀) 향목(香木)이 섞여 절벽 밑에까지 뻗어 있다. 진귀한 나무로는 영릉향(零陵香)⋅산다(山茶)⋅산유(山柚)⋅녹각(鹿角)⋅송목(松木)⋅비자(榧子)⋅측백(側栢)⋅황백(黃栢)⋅동백(冬柏)⋅칠(柒)⋅적률(赤栗)⋅가시률(加時栗)(두 나무는 모두 열매가 도토리 같지만 맛이 달고 쓰지 않으므로 제주 사람들은 주워 모아 저장하여 두었다가 흉년에 대비한다.)⋅상실(橡實)⋅이년목(二年木)들이다. 잡목들로 둘려 쌓여 빽빽하고 무성하며 가지가 서로 얽히어서 어두컴컴하고 사시사철 오래 푸르며 사람 발자취가 통하지 않는다. 대정(大靜)으로부터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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