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우세할 거라는 여론조사가 심심찮게 나왔음에도 보수는 대체로 지는 선거로 보고 풀이 죽어 있었고 진보는 이기는 선거라는 확신을 품고 기세등등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4월8일 한겨레신문이 정치전문가 28명에게 물어본 결과 22명이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될 것이라고 답했던 걸 봐도 이 결과는 의외였다.

쏟아지는 각종 해석들과 수도권 접전지의 상당수를 새누리당이 가져간 사실을 보태보면 이번 선거에선 '보수의 숨은 표'가 '진보의 숨은 표'를 압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진보진영의 꽹과리 소리가 너무 요란하다 보니 진보는 스스로 도취했고 ,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터지면서 몸을 낮췄던 보수는 더욱 숨을 죽이면서 위기감을 느껴 똘똘 뭉쳤던 것이다.

보수의 목소리가 클 때 진보의 숨은 표가 늘어나고, 진보의 목소리가 클 때 보수의 숨은 표가 늘어나는 건 충분히 일리가 있다.

'나꼼수'는 진보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서울에서 20대가 보여준 경이로운 투표율 64%와 새누리당의 강원도 싹쓸이, 충청도 약진은 분명히 '나꼼수- 김용민 막말' 과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시사 돼지'가 진보진영에서 몇 석을 까먹었는지, 선거결과를 뒤집었는지는 추정일뿐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막말 동영상'이 보수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스스로 그 덕분에 선거를 이겼다고 말하는 건 낯 뜨거운 일이다. 투표율 올라가는 걸 초조해 하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노릇이다.

선거가 이렇게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이 의외로 많이 퍼져 있다. 거꾸로 투표결과를 분석할 땐 집단이성이 작용해 필연적인 결과를 빚어낸다는 믿음이 배경에 깔려있는 걸 흔히 보게 된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도 범보수 52.7%(158석) 대 범진보 47.3%(142석)는 한쪽이 독주하거나 주눅 들지 않게 황금분할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한다. '사찰'보다 '막말'에 더 흔들릴 정도로 국민이 비이성적이라고 보면서 동시에 그 국민이 지혜로운 집단이성을 발휘해 황금분할을 만들어 냈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한국매미는 5년, 미국매미는 13년,17년의 생애주기를 갖고 있다. 각각 굼뱅이로 땅속에서 5년, 13년,17년을 살다 성충으로 탈바꿈해 한 달간 교미하고 알을 낳고 죽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애주기가 모두 소수(素數)라는데 있다. 미국매미의 천적은 대개 2~ 5년의 생애주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굼벵이가 매미로 변신하는 시점에 천적을 덜 만나려면 2,3,4,5의 배수가 되는 해를 피해야 한다. 즉 소수가 되는 해라면 천적을 최대한 피할 수 있다. 소수는 알다시피 1과 자신을 제외하곤 어떤 수의 배수도 아닌 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미들이 집단이성을 사용해 생애주기를 소수해로 맞춘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훨씬 합리적인 해석은 2~12년과 14~16년 생애주기를 갖고 있던 매미들이 천적들을 더 많이 만나 모두 도태되고 13, 17년 주기의 매미만 살아남았을 거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결과에서 드러난 민의를 읽을 수는 있지만 집단이성이 황금분할을 만들어낸 건 아니다. 유권자들은 대부분 이기적(이정현, 김부겸 낙선)이고 계급적(강남 새누리 몰표)인 투표를 하며 때론 이성적(김용민 낙선)이지만 때론 비이성적(김형태 당선)으로 투표를 할뿐이다. 선거는 정책, 인물, 시대정신, 우연 등 수많은 변수들의 총합에 의해 움직일뿐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도 집단이성도 없다.

이번 총선에서 다수의 유권자는 진영논리를 떠나 보수가 주도하는 국회가 아직은 내구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산 중인 권력 심판보다 유력한 미래권력 후보 '간 보기'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황금분할은 박근혜 위원장의 집권을 정권교체로 보는 시각이 정권심판론을 희석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뉴시스】최효극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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