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의 국내 시장 공습이 장기화되고 있다.

메릴 스트립 주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2주 연속 흥행 1위를 차지한 것이 신호탄이다. 문근영, 김주혁 주연의 ‘사랑따윈 필요없어’가 곧바로 1위를 탈환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지난주에 1위를 차지한 한국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개봉 4주차로 2위를 유지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관객동원 차는 크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다음 주에 또다시 할리우드 영화의 1위 탈환이 가능하다.

이 주에 개봉되는 할리우드 영화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맷 데이먼 주연의 ‘디파티드’다. 이에 맞설 한국영화는 아직 관객동원력이 검증되지 않은 김래원 주연의 ‘해바라기’다. 만약 이 주에 ‘디파디트’가 1위를 차지한다면, 미디어는 곧바로 ‘또다시 할리우드 영화에 빼앗긴 국내 극장가’를 연발할 것이다. 지난 여름, 10주 연속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1위를 빼앗긴 악몽을 떠

그렇다면 진정으로 한국영화는 아직까지 할리우드에 약한 것이 맞을까. 할리우드가 들이민 최상의 상품 앞에서라면 수년째 지속된 한국영화 열풍도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는 것일까.

먼저, 직전의 1위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부터 생각해보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아니었다. 제작 규모도 비교적 작고, 현란한 기술력이 보유된 것도 아니다. 그닥 할리우드 최대 강점을 살리지는 않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흥행성공에 대해, 네티즌들은 ‘된장녀 열풍’을 쉽게 연결시켰다. 물론 사회적 화제성으로 보았을 때 충분

그러나 단순히 된장녀 심리를 자극한다 해서 첫 주부터 흥행 1위를 차지하기란 어렵다. 외국영화는 초기 홍보가 힘들다. 자국영화는 출연배우들을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간접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언론도 개봉 주의 출연배우 기사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이런 효과를 얻기 힘들다. 여기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홍보 방식에 딱히 된장녀 열풍과 연결 지으려는 태도가 없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생각할수록 알쏭달쏭해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흥행의 해답은, 시각을 달리해 보면 쉽게 나온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성공은 전형적인 팬베이스 흥행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인기는 로런 와이스버거의 원작 소설이 시초다. 원작 소설이 이미 국내 각종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그 뒤로는 단순한 전이 과정이다. 소설의 팬들이 극장

소설은 입소문으로 인기가 번져나가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그러나 영화의 폭발적 인기는 입소문의 그것이 아니었다. 팬 베이스 흥행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어 계속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데스노트’의 경우도 이와 같다. 오바 츠구미-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원작 팬베이스가 극장을 찾은 것으로 봐야한다.

여기서 올해 들어 외국영화가 국내 흥행 1위를 차지한 예를 찾아보자. 한국의 자국영화 열풍 속에서 1위를 꿰찬 외국영화는 현재까지 모두 8편이다. ‘미션 임파서블 III', '다빈치 코드’, ‘포세이돈’, 'X-맨 3: 최후의 결전’, ‘수퍼맨 리턴스’, ‘캐리비안의 해적 2: 망자의 함’, ‘일본침몰’ 그리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들 중 ‘일본침몰’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팬

7편 중 3편은 속편이고, 2편은 리메이크이며, 2편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 원작이다. 베스트셀러 원작 흥행은 당연하다. 속편 흥행 역시, 전편이 극장 흥행작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비디오나 케이블 TV 등 접근도 높은 미디어를 통해 잠재적 팬베이스가 다져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리메이크작도 마찬가지다. (사실 ‘일본침몰’ 역시 고마츠 사쿄의 원작이 있고, 모리타니 시로 감독의 1973년작 영

이 주의 ‘디파티드’ 1위 가능성도 팬베이스 흥행이 가능하기에 유력히 점쳐지는 것이다. ‘디파티드’는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이다. ‘무간도’는 극장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비디오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팬베이스가 이미 다져진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흥행한 대부분의 외국영화에는 ‘팬베이스’라는 비결이 있다. 그저 무턱대고 ‘할리우드 영화라서’가 아니다. 천문학적 제작비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여서, 우리 여력으론 따라잡기 힘든 기술력을 보유해서도 아니다. 그런 종류의 피해의식은 이젠 구닥다리에 속한다. 한국 대중은 이미 자국 영화에 길들여졌고, 예전처럼 외국영화를 선뜻 선택하지 않는다. 이제 ‘자막을 읽는 것

이유 있는 시장잠식은 두려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고 넋 놓고 바라볼 일만도 아니다. 같은 방식을 한국영화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는 근래 들어 지나칠 정도로 오리지널 아이디어에만 기대고 있다. 든든한 팬베이스로 다져진 상업영화도 이제 다시 시동 걸릴 시기가 됐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딜레마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 한국은 팬베이스를 다지기가 힘들다. 출판시장이 4분의 1 토막 나고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됐으니 소설 팬베이스는 힘들다. 국내 영화끼리의 리메이크 역시, 이루어진 적도 드물 뿐더러 효과도 미진하다. 남은 것은 그저 속편 제작 뿐이다. 그나마 속편도 전편을 뛰어넘는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영화산업에는 수많은 전략이 횡행하다. 한국영화산업은 ‘터전’은 얻었지만 아직 ‘전략’이 부족하다. 대중은 결국 전략에 의해 움직인다. 구시대적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홍보방식, 관객동원 방식을 찾아야 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유명한 코멘트처럼, 현대 영화산업이란 “한 극장에서 다른 극장으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운송업”에 가까울 때가 많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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