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은 '금융위기'라는 단어에 남다른 트라우마가 있다. '구제금융'이라는 단어까지 조합하면 딸꾹질이 절로 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요즘 자고나면 들리는 뉴스가 바로 '금융위기'와 '구제금융'이다. 비록 남의 나라 얘기지만, 왠지 모르게 거슬리고 예민해진다.

이런 국민들에게 금융감독당국 수장들이 혼선을 줄만한 얘기를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

유럽발 세계 금융위기를 놓고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정반대되는 견해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이 올지 모른다"며 잔뜩 겁을 주는 반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심각한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펴고 있다.

7일 권혁세 원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로서는 그리스 유로존 탈퇴라든지 스페인의 부도위기와 같은 어떤 극단적인 시나리오로 흘러갈 가능성은 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불과 사흘 전 김석동 위원장이 "유럽 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으로 이해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딴판인 얘기다.

권 원장은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해설'도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위기감을 표출한 데 대해 "이번 유럽위기가 근본적인 해결에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경제가 긴축과 둔화가 굉장히 오래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단단하게 각오를 갖고 우리가 대비를 좀 해야 되겠다는 차원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긴장하라는 차원에서 겁을 좀 준 것 뿐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권 원장이 마냥 한가로운 얘기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길게 보면 지난 10년 동안 이상 금융완화정책에 따라 과잉유동성이 공급되고 이 유동성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세계경제 둔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비는 해 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9·11테러 발생 뒤 미국 주도로 단행한 전세계적인 저금리와 통화 공급에 따라 생겨난 부동산 등 자산거품이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 꺼지면서 경기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했다.

하지만 김석동 위원장의 '엄포'에 비하면 걱정의 수위는 한참 낮아보인다. 김 위원장은 4일 간부회의에서 "스페인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5배며,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예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한 뒤 이를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온 국민에게 알려 위기의식을 갖도록 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하지만 불과 며칠만에 김 위원장과 함께 금융시스템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장이 "별일 아니니 호들갑 떨 필요없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자 금융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의 말 한마디가 갖는 무게는 태산처럼 무겁다"면서 "금융인 생활 30년만에 이렇게 경솔한 경제수장들은 처음"이라고 성토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정보공유를 안하는 것인지, 해석의 차이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위기가 온다"며 겁을 준 사람과 "별일 아니다"라며 사람 중 한 명은 양치기 소년이 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서울=뉴시스】정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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