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은 외교부가 판단해서 한 것이다."

지난 2일 오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갑자기 기자실을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국무회의 밀실 추진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책임론이 불거지자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책임론은 외교부의 고위 당국자의 입을 통해 처음 흘러나왔다. 이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오찬에서 "한·일협정 밀실처리는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책임을 청와대에 떠넘겼다.

이같은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책임론과 외교·안보라인 문책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외교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겠다"며 입장을 하루 만에 번복하고 나선 것이다.

외교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안건이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처리된 사실이 알려지자 주무부처란 이유로 비난 여론의 집중 타깃이 됐다.

국방부가 추진하던 협정 체결이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서명 주체가 외교부로 변경됐고, '비공개 의결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음에도 윗선에서 묵살당한 외교부의 억울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협정 체결 논란과 관련해 외교부가 보여준 대응과정은 매우 아마추어적이고 무책임해보인다.

장관과 외교부 차원의 공식 입장을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채 외교부 당국자는 "청와대가 시켜서 한 것"이라고 민감한 발언을 흘렸다. 바로 다음날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김 장관이 청와대 책임론을 서둘러 부인하는 해명에 나섬으로써 '정치적 플레이'를 느끼게 했다.

군사협정 취소 파동과 관련해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발뺌하다가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꾼 외교부의 '오락가락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달 29일 서명 직전까지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명을 강행하다가 정치권의 압박으로 협정 체결이 보류되자 갑자기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도 그렇다.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사실상 레임덕에 들어선 이명박 정권과 일찌감치 거리두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외교부가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힘빠진 청와대를 겨냥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오히려 국내 정치에 골몰하고 있는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건 등과 관련해 외교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진실성 없이 책임 떠넘기기에 주력하다 지탄을 받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식의 전형적인 '면피성' 행정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삼을만 하다.

외교부는 그동안 지나친 관료엘리트주의와 무책임성, 무뎌진 윤리감각 등의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사안에서도 외교부는 여전히 기존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안타깝기 그지 없다.

국민이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외교부의 듬직한 모습을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까.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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