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큰아버지 댁과 우리집은 울담(울타리 담)도 없이 한 울타리 안에 살았는데, 나의 고조부님께서 이곳에 터잡을 때부터 심어 놓은 늙은 감나무였다.그러나 단감나무는 하나도 없었고, 모두가 쪼라운 감(떫은 감)뿐이었는데, 쇠불감(쇠불알같이 생긴 감)과 풋 감(팥처럼 작고 씨많은 떫은 감)이었다.쇠불감은 익어갈
‘농협-KB국민카드-롯데카드 등 신용카드 고객정보가 유출되어 고객들이 2차 피해에 대한 마음 졸이는 가운데 신용카드 3사의 책임회피 태도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농협카드와 KB국민카드, 그리고 롯데카드 등 3사의 신용카드 정보 약 1억400만 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 또한, 이번 유출과정에서 농협뿐만 아니라 다른
내가 철이 들 무렵 외가에서 살게 되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서당 훈장이셨으므로 그 밑에서 한문을 배워야 한다는 명분이었다.그러나 어머니께서 나를 외가로 보낸 속사정은 한문을 배우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점쟁이들이 권하는 말때문이었다.어릴적부터 몸이 허약해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에 대해서 어머니는 여기저기 점쟁이들을 찾아 다니며 내 운명을 점쳐 보았고, 그때마다
요즘은 삼년상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안에 상을 모시고, 일년 뒤 소상, 2년 뒤 대상을 치러서 삼년상을 지냈다.보도에 의하면 2009년 5월에 사망한 노무현 대통령 탈상은 만 3년이 되는 2012년 5월에 치렀다.삼년상의 참뜻을 모르는 무식한 처사다. 그냥 추념일 행사라 했으면 무식은 모면할 것이었는데....내가 일곱
옛날 어른들은 『이레잔?뽀磯鳴?말했다. 잔치날을 기준하여 전 3일, 후3일, 이렇게 꼬박 칠일동안 잔치하게 되느라고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준비 하느라 전 3일이 걸리고, 뒷 마무리 하느라 후 3일이 걸려 혼주는 물론이고 괸당(친척)들이 아주 녹초가 된다고 말했다.옛날에는 신랑신부가 연애하여 결혼하는 일은 없었고, 중매보다도 주로 부모 들끼리 서로 합의
누가 돌아가시거나 소상, 대상을 맞이하거나 결혼잔치, 훈장잔치가 벌어지면 어른들은 “먹을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먹을 일이 생기면 친족은 물론이지만, 친족이 아니더라도 온 동네가 합심하여 먹을 일을 도와줘야만 했다.옛날에는 수돗물이 없었기 때문에 먹을 일이 생기면 온 동네 여자들이 모여 물을 길어다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누가 돌아가시면 웃어른이 초
“설립이념·교육목표· 커리큘럼 근거해 자율적으로 학생 선발해야” 지난 번 글에서 결국 “좋은 교육 방법과 내용 못지않게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마감했다. 제 글에 대한 여러 반응들 중에 미래가치 트렌드 측면에서 보면 “미래에는 지금 같은 대학입시가 없어질 것”이란 것이 있었다.현재의 입시제도는 각 학교별로 입시전형을 만들고 기
내가 어렸을 때는 『전기』라는 말을 들어본 일도 없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성내(제주시내)출입을 하게 되면서, 시내 상가에 전기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서 신기하게 생각했다.내가 세상에 태어나 철이 들고 보니 우리집에서 밤에 밝히는 것은『각지불』아니면 『등피불』정도였고, 촛불은 제삿날에나 사용하는 것이었다.각지불은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데 그을음이
가만히 눈을 감고 회상해 보면 내가 살아온 80평생은 원시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최첨단 21세기까지를 다양하게 두루 살아온 것 같다.내가 어렸을 때 갑자기 어머니가 거처하는 족은 구들(작은방)에 보리낭(보리짚)이 수북히 깔리면 나는 뭣도 모르고 좋다고 그 위를 이리뒹굴 저리뒹굴 누워둥굴며 장난을 쳤다,알고 보니 어머니가 애기를 낳고 준비를 하는 줄도 모르고
전기가 없어 깜깜한 밤을 호롱불로 밝히고, 수도가 없어 장굴레비(장구벌레)가 우굴거리는 구릉물(봉천수)을 허벅으로 길어다 먹으며 살았지만 불편한 줄 모르고 행복하기만 했다.설에는 고운 옷을 입고 어른들게 세배를 올렸다. 새뱃돈을 받고, 떡 받아 먹으며 새해를 즐겁게 맞이했다.설을 지내고 새해가 되면 동네 어른들은 마을포제를 준비했다.마을 입구에는 솟(금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외가 덕을 많이 받고 자라났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 우리 외가의 외숙과 작은이오모는 일본에 가서 살고 있어서, 외조부모님 두 분만 오도롱(이호2동) 잣질(갖길)에 살고 계셨다.외조부님은 제주 고 씨 중시조 31세손 두정 공이시다. 외조부님은 평소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풍수지리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수은교에도 깊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 집안을 말할 때, 제주시 노형동 월랑마을 『큰 바랑밭』현훈장 댁이라고 불렀다.경제적으로 부농은 아니었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았고, 자손도 골고루 갖추어 있어 모두가 부러워했다.나의 고조부님께서는 연주 현씨 시조 담윤 공익 24세손이고, 제주도 입도선조 사경공의 15세 손인데 제주시 노형동 월랑마을 『큰 바랑밭』에 터잡아 외아들을 두셨으나
내가 홍완표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49년 제주북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신성여자중학교 사환으로 취직하면서 부터다.홍완표 선생은 당시 신성여중 교감선생님이셨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나는 학도병으로 출정했고 상이군인니 되어 돌아와 제주 미국공보원에 취직하게 괸 것도 홍완표 선냉이 제주 믹구공보원장으로 계셨기 때문이다.홍완표 선생은 붓글씨도
제주시농협이 제주시 농협 일도점 하나로마트 내 제과점 입점과 관련하여 제주시지역 내 소상공인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으면서 한동안 제주 최고의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는 일이 발생했다.이번 논란은 기존 소상공인을 배제하고 마트 내 제과점 위치에 대기업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트가 입점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 촉발됐다.특히, 기존 제과점과의 갈등과 더불어 지역경
북초등학교 6학년때 5반 담임이셨던 고창호 선생님은 3반이었던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지 못했지만 신성여중에 사환으로 취직하고부터 모시게 된 인연이다.신성여중은 천교회재단에서 설립한 사립중학교였고 재직하는 선생님 중 천주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지 못했었다.신성여중에 취직한 뒤 천주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고창호 선생님에게 교리를 배우게 되었다.당시에
뉴스제주를 사랑하는 애독자 여러분!그동안 진정으로 뉴스제주를 사랑하여 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2006년 10월 9일 탄생된 뉴스제주가 2014년에 들어 ‘뉴 패러다임’선언으로 새롭게 변하고자 합니다. 2012년 7월 13일 새로운 법인과 경영진으로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으로 심층 탐사보도 강화와 더불어 독자들의 적극적인
내년 제주도지사 선거가 다가오는 격변의 시간을 맞아 선거철 단골 메뉴인 ‘원희룡 前 의원 제주도지사 카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이와더불어 일부 언론에서는 원희룡 前 의원이 제주도지사 출마에 곧 나설 것이라는 분석 보도를 내놨다.현재 새로운 인물론과 제주경제 창조론을 주장하면서 김경택 前 정무부지사, 김방훈 前 제주시장, 양원찬 박사(재외제주
를 통해 윤정희를 은막으로 귀화시켰던 이창동 감독처럼 김혜자라는 배우를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초대한 봉준호 감독. 이는 아마 노년의 배우에 대한 '경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감독은 불균질한 형태로 배우들의 이면을 벗겨낸다. 가 지워져가는 기억을 대신해 음률로써 호흡을 채워갔다면 는 새살처럼 의도치 않게 자꾸
내가 일본에 계신 이종 사촌형님이 보내 주신 진학잡지 『형설시대』와 부록, 그리고 전일본대학 입학시험문제집 등을 갖고 공부를 해도 수학만은 기초실력이 워낙 약하여 고생을 이만저만하지 않았다.오현고등하교 수학선생님으로 계시던 고중석 선생님께서 새벽과 저녁 시간에 몇 명의 학생들에게 수학지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나도 그 속에 끼어볼까 해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제주지역 최고 명문이라는 제주대학교가 연일 제주를 넘어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최근 제주대학교는 국내 유력 일간지에 시험지를 빼내 성적을 올리는 부정한 사례가 발생해 전국적 망신당해 학교의 브랜드 가치가 크게 손상됐다.이러한 일이 뇌리 속에 지워지기도 전에 교수실에 재물손괴 사건이 발생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 제주대학교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