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출퇴근 시민들의 '친구'였던 무가지 폐간-감면 바람
스마트폰 때문에 '외면'… "요즘에 커피값 벌기도 힘들어"

【서울=뉴시스】장성주 기자 = "3~4년 전에는 하루에 무가지 신문만 100㎏ 너끈히 모았지. 그런데 지금은 커피값도 못벌어."

수년 째 신문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파는 박모(68)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6시 지하철역으로 출근한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23일 박 할아버지는 서울 종로구 한 지하철 역 개찰구 앞에 우두커니 서서 출근길 사람들이 버리는 신문을 모으고 있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지만 그의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종이 박스 안에는 무가지 신문 3~4부만이 아무렇게나 담겨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역력히 묻어났다.

"2~3년 전에는 지하철 전동차 안을 돌아다니며 무가지 신문을 모았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하루에 10만원도 넘게 벌 수 있었어. 그땐 정말 신이났지. 돈이 되는 만큼 다른 사람이 모아둔 신문을 훔쳐가는 일도 부지기수였어."

박 할아버지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김모(70·여) 할머니가 손에 무가지 신문 10여부를 들고 다가왔다. 김 할머니는 박 할아버지에게 신문을 넘겨주고 옆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이 신문을 모아서 가져다줘. 이게 큰 힘이 되지. 물론 그래봐야 저 종이 박스 하나 가득 채우기 어려워. 요즘 신문 1㎏에 100원 정도 하거든. 하루에 자판기 커피 한잔 값도 안나온다고 봐야지."

서울 광진구 한 지하철역에서 무가지 신문 가판대를 정리하는 홍모(42·여)씨도 매일 오전 6시 보급소로 출근한다. 3년 전에는 하루 600부의 신문을 할당받아 지하철역으로 향했지만 이제는 그 절반인 300부로 줄었다.

출근길 사람들은 가판대에 무가지 신문을 정리하는 홍씨 옆을 무심히 지나쳤다. 가판대 위 무가지 신문 5부가 자신을 데려갈 손길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무가지 신문에 광고가 잘 안 들어오다 보니 사라진 매체도 많고 가져다 놓는 부수도 확연히 줄었죠. 무가지 신문을 깔아놓는 역이 줄고 매체가 사라지다보니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줄었구요."

박 할아버지와 홍씨는 하나같이 기자에게 "무가지 신문이 사라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출근길 지하철역마다 자리 잡고 있던 무가지 신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직장인들의 출근길 모습도 완전히 달라졌다. 출근길 종이 신문을 손에 쥐고 뉴스를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모두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볼 뿐이다.

목동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김모(30)씨는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종이 신문을 접었다 폈다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불편을 준다"며 "간편하게 뉴스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3대 무가지 신문 중 하나인 'AM7'은 무기한 휴간을 결정했다. 석간신문 '문화일보'의 자매지인 AM7은 지난 2003년 11월 발행을 시작했지만 9년여 만에 사실상 문을 닫은 것이다.

국내 무가지 신문은 지난 2002년 5월 '메트로'를 시작으로 조간과 석간, 스포츠 매체 등 10여개 매체로 우후죽순 늘어났다. 업계에 따르면 2004년 3대 무가지 신문 '포커스'와 메트로, AM7의 발행부수는 200만여 부에 달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현재 메트로와 포커스, 스포츠한국, 노컷뉴스, 시티신문 등 매체만 남았다.

제일기획이 지난 2월12일 발표한 '2012년 국내 광고시장'에 따르면 신문 광고비는 2011년 대비 3.2% 줄어든 1조6543억원으로 조사됐다. 무가지 신문은 내수부진과 스마트폰 확산에 큰 영향을 받아 광고 매출이 대폭 줄었다는 평가다.

반면 모바일 광고시장은 2011년 대비 250% 성장한 2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유선 인터넷과 모바일을 합친 광고 시장만이 유일하게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무가지 신문의 설 자리를 위축시켰다고 분석했다. 특히 무료인 무가지 신문이 광고에 수익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광고 시장이 모바일로 이동한 것이 결정타였다는 설명이다.

무가지들은 오랜동안 조·석간을 발행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스포츠지들을 누르고 출퇴근 시민들의 '친구'로 자리잡았지만 몇년만에 이젠 거꾸로 스마트폰에 자리를 빼앗기는 운명이 된 셈이다.

이종혁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신문의 주요 수익원이 광고인 상황에서 광고수익의 악화가 고스란히 무가지 신문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무가지 신문이 모바일에서 제공되는 뉴스에 비해 양과 질적 측면이 떨어진 것도 한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무가지 신문 등 종이 신문이 살아남는 길은 '뉴욕타임즈'처럼 높은 질의 뉴스로 충성도 높은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모바일 분야 투자를 늘려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를 받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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