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한양상호 신용금고
[219]한양상호 신용금고
  • 현임종
  • 승인 2013.07.12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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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1991년 2월 말로 30년가 종사한 금융기관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퇴직한 나는 낙향하여 농장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서울 생활하느라 관리인에게 맡겨 놓았던 농장에 돌아와 보니 과수원은 엉망이 도어 있어 모든 것을 직접 손대기 시작했다.

밀감나무를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 수형은 엉망이었고 이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수확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손수 나무 전정을 시작했다.

이렇게 눈코뜰새 업이 바쁜 나에게 S사장이 찾아와 한양상호신용금고 사장이 나와 만나 점심을 같이 하자는데 시간을 내라고 했다.

안면도 없는 사장이 만나자는데 얼른 동의할 수 없어 이 핑계 저 핑계로 며칠을 끌었다. 여러 번 연락이 오므로 할 수 없이 만나 점심을 같이 하는데 한양금고를 맡아 운영해 달라고 했다.

공직에서 퇴임하여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농장에서 소일하려는 나에게 간곡한 부탁이었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내 전문 분야인 금융업으므로 맡아 운영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양금고는 도내 5개 금고 가운데서 유일하게 도와 사람이 설립한 금고여서 그런지 업무 실적이 최하위에 머물고 있어 내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실적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금고를 맡고부터 평소 나를 믿고 도와주던 분들의 도움으로 수신 실적이 하루가 다르게 신장하기 시작했다.

금고 운영을 맡으면서 느낀 것은 주식회사인데도 1인이 100%주식을 소유하고 있는데서 의아스러운 느낌이 있었고, 정관이나 법에도 없는 회장제도를 만들어 평이사밖에 안 되는 독점주주의 장인인 전임 L사장이 회장으로 앉아 사장의 업무를 감시 했지만 개인 회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독점주주는 장인에게 위임했으니 직접적인 간섭은 없었지만 회장이란 이름이 붙은 이사인 전임 L사장은 사사건건 간섭을 시작했다.

이북 출신이라 제주의 풍습에 익숙치 못한 탓인지 제주의 관혼상제를 비롯한 모든 풍습을 미개인의 행위로 치부하는 성격이 보였다.

예를 들어 운전기사의 집에 소상이 있어 같이 조문가자고 했더니 “요새도 소상을 하는 미개인이 있어요? 당신도 조문 갈 필요 없어요.” 하고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회장이야 그러지만 매일같이 차 타고 같이 다니는 기사의 집에서 선친 소상이 있는데 모른 체하는 사장도 도리가 아니어서 직원들을 데리고 조문하였다.

다음 날 회장은 자기가 조문 가지 말라고 했음에도 사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조문 다녀왔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하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거래선 확대를 위해 내가 거래처의 경조사에 찾아 다니는 것까지 공금에서 지원은커녕 그럴 필요 없다고 했고 심지어 내가 사장을 맡고 난 다음 사장취임 인사장을 만들어 금고 업무 안내서와 동봉하여 제주시내 및 조천, 애월, 한림 등지에 발송하도록 했는데 사장취임 인사장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금고에서 우편료를 부담할 수 없다 하여 내 개인 부담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회장이 늙은 나이에 홀로 제주에 와서 오래 근무하니 피곤하다며 퇴임하겠다 하여 임원 퇴직금을 지급했는데 보로금은 없느냐고 요구하여 퇴직금 외에 5천만원의 보로금을 지급했다.

퇴직수속 후 한 달도 안되어 다시 복직하겠다 해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개인 회사이므로 어쩔 수 없이 복직수속했다.

그결과 실무적으로 퇴직금 반환과 세금 문제가 대두되는 어려움을 야기시켰지만 개인 회사여서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괴로뭉믈 안겨 주기도 했다.

회장고 평소 가깝게 지내는 K사장은 빌딩을 근저당하여 거액을 지원받고 있었지만 일인당 대출한도를 초과하여 있었기에 나는 추가지원을 억제하였다.

하루는 K사장이 찾아와 1억원을 추가지원해 달라고 했으나 나는 거절하고 퇴근해 버렸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내 결재도 없이 1억원이 추가 지원되어 있었고 회장은 나에게 고객의 어려움을 못 들은 체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힐책했다.

법에도 어긋나고 담보물도 부족한데 추가 지원하라는 것은 회사를 망하게 하는 꼴 밖에 안 된다고 항변했다.

어느 날 K사장은 서울에서 큰 돈을 지원받게 되었으니 담보물을 해지해 부면 대출금 전액을 상환하겠다고 말하며 우리와 거래를 끊겠다고 말했다.

천만다행이라 생각한 나는 대출금 전액을 회수하고 담보물을 해지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찾아온 K사장은 신용으로 멏 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통사정했다.

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자 K사장은 회장을 찾아가 서울에 설정한 빌딩을 후순위로 10억원에 설정하여 추가 지원을 요청했고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가지원되었다.

K사장은 결국 부도나고 빌딩은 공매처분되었으나 한양금고는 선순위에 밀려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손실을 당했다.

이거 저것에 골치아픈 L회장은 떠나고 외환은행 감사 출신인 S씨가 회장으로 내려왔다. 기가 막힌 것은 사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L회장이 성경하여 생계 문제가 걱정되니 월 200만원씩 생계비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퇴직한 사람에게 생활비 지급하라니 나더러 부정을 저지르라는 말이다.

S회장은 내려오자 업무에는 관심도 없고 매일같이 골프장으로 출근했다. 금고는 매일같이 수신이 늘어가지만 자금운용을 못하여 애먹고 있었다.

예금이 많이 들어와도 들어온 예금을 대출하여 이자수입을 올리지 못하면 망하게 된다. 경기 불황으로 믿을 수 있는 대출 거래처는 없고 찾아오는 대출 희망자는 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 뿐이어서 자금운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여유 자금을 금융결제원에 콜논(금융기관간 일시대출금)으로 운영하기로 마음먹고 100억원 정도를 콜론으로 보냈다.

하루는 20억원을 콜론으로 보내기로 결재하고 견혼주례차 나갔다 돌아와 보니 콜론은 취소되고 외환은행에서 증권을 사 버린 것이다.

실무자는 S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리했다며 금리도 0.5% 높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자이 결제한 것을 법적 책임도 없는 회장이 취소시켜 버린다면 그 사장은 필요없는 존재다. 콜논 이자에는 세금이 없고 증권 이자에는 세금이 붙으니 금리가 0.5% 높다 해도 실지 소독은 콜론 이자보다 떨어져 몇 백만원 손해가는 것을 모르는 회장 밑에서 사장직을 맡아 보다가는 내가 무능한 경영인이 될 것 같아 그 날로 사표를 던져 버리고 한양금고를 떠나 버렸다. 한양금고에 몸 담은 지 4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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