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연간 생산되는 차의 량이 2,000톤 정도 되는 것에 비해 중국 후발효차 수입량은 상당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중국 후발효차가 한국에서 아직 인기가 있고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중국 보이차에 대응하고자 최근 한국에서도 풍미가 좋은 고품질의 후발효차가 개발되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본 회에서는 한국의 차 매니아들이 많이 소비하고 있고 관심이 높은 후발효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후발효차는 녹차를 만들고 난 후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발효가 되는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본에서 ‘녹차를 만든 후 나중에 발효되는 차’라는 의미에서 후발효차(後醱酵茶)라고 명명하여 차의 한 종류로서 분류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미생물에 의해 발효된 차’라는 의미에서 미생물발효차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차의 외관에 근거하여 차를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의 6종류로 분류하고 있는데 후발효차는 흑차에 해당한다. 아마도 차가 강하게 발효되어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운남성, 사천성, 호북성, 광동성 등 여러 지역에서 많은 종류의 후발효차가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는데 각 지역마다 독특한 제조공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각 후발효차의 모양과 풍미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고 잘 알려져있는 후발효차가 푸얼차(普洱茶, 한국에서는 ‘보이차’로 통칭됨)이다. ‘푸얼’은 중국 운남성의 지역명으로서 예부터 차의 유통 집산지로 유명한 지역인데 푸얼 지역 주변에서 생산되어 푸얼 지역으로 들어오는 차들을 푸얼차로 통틀어서 명명하였다. 한 마디로 지역의 차 브랜드명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푸얼녹차, 푸얼홍차 등의 명칭도 있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운남성에서 생산되고 있는 후발효차를 푸얼차(보이차)로 일반화해 부르고 있다.
후발효차는 지금으로부터 약 950여년 전, 중국 송나라 시대에 사천성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사천성의 녹차는 차마고도(茶馬古道, 차와 말을 교역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중국의 역사적 육상 무역로)를 따라 티벳으로 보내지고 있었는데 차를 운송하기 쉽도록 긴압차(緊壓茶, 눌러서 덩어리 형태로 만든 차) 형태로 만들어 부피를 작게 했다.

이러한 후발효차의 공정은 사천성과 함께 긴압차를 만들고 있던 호복성, 운남성 등지에도 자연스럽게 전해지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후발효차의 제조 공정은 각 지역마다 다르지만 가장 대표적인 후발효차인 푸얼차의 공정을 보면 먼저 찻잎을 덖고 유념(비비기)한 후 햇볕에 하루 정도 건조를 시켜서 녹차를 만드는데 이렇게 만든 녹차가 푸얼차의 원료가 된다.
그 후 푸얼차의 원료인 녹차를 퇴적시켜 발효 공정에 들어가는데 물을 뿌려서 수분을 가하고 1주일 간격으로 뒤집어주는 작업을 3-4차례 하면서 약 20-30일간 발효를 시킨다.
이러한 발효기간 중에 차의 품온은 60-70℃의 상당한 높은 온도까지 올라가게 되고 발효가 거의 다 진행되면 온도가 30-40℃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퇴적 공정을 마친 차를 다시 햇빛에 하루 정도 건조를 시켜 푸얼차가 만들어진다.
발효된 푸얼차는 풍미를 높이기 위해서 1년 정도의 후숙기간을 거치고 난 후 소비자에게 유통된다. 사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수분을 가하여 발효를 유도하는 푸얼차의 제조 공정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개발된 방법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푸얼차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인 전문가가 나와서 푸얼차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그 전문가의 설명에 의하면 오랜 시간 동안 저장하여 자연적으로 미생물이 발생하여 발효되는 생차가 진정한 푸얼차이고 인위적으로 발효조건을 만들어 단기간에 발효되는 숙차는 가짜 푸얼차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에는 생차 제조공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지는 생차는 중국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도 없고 오히려 생차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공정을 개선한 것이 숙차라 생각한다.
실제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생차와 흑차를 입수하여 조사를 해보면 차의 유효 성분적인 측면에서 생차와 숙차가 거의 유사하며 생차가 숙차보다 뛰어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생차와 숙차를 두고 관능심사를 해보면 생차의 풍미가 더 좋다는 사람과 숙차의 풍미가 더 좋다는 의견이 반반으로 나누어진다.
필자는 소비자가 어떠한 후발효차를 선택하더라도 상관없으며 자신의 기호에 잘 맞는 것이 자신에게는 가장 좋은 후발효차라 생각한다.
한편 후발효차에 작용하는 미생물은 크게 2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퇴적공정에서 발효에 작용하는 미생물과 후숙기간 동안 작용하는 미생물이다. 지면 관계상 후숙기간의 미생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퇴적공정에 관여하는 미생물만 살펴보면 Aspergillus속(누룩곰팡이), Rhizopus속(거미줄곰팡이), Penicillium속(푸른곰팡이) 등의 곰팡이류가 주로 나타난다.
후발효차에서는 이러한 곰팡이들의 작용에 의해서 다른 차류의 제조공정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화학적 반응들이 일어나고 상당히 다른 화학성분들이 생성된다. 퇴적공정 중 찻잎에 함유된 대부분의 성분이 산화 분해되고 중합반응에 의해 고분자화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미노산의 변화로서는 발효 중에 미생물이 아미노산을 질소원으로 사용하여 분해하는 동시에 미생물의 단백질 분해효소 작용에 의해 찻잎의 단백질이 일부 분해되어 새로운 아미노산이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퇴적공정 중에는 아미노산의 총량이 감소하면서 각종 아미노산의 비율도 변화하게 된다. 카테킨류와 폴리페놀 성분은 거의 소실되어 갈색의 산화중합물과 몰식자산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후발효차는 떫고 쓴맛이 감소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후발효차가 특이한 것은 후숙기간 동안 아미노산과 카테킨의 함량은 감소하는 반면에 가용성분은 증가한다는 점이다.
가용성분이 증가하면 차를 우렸을 때 찻잎의 성분들이 많이 우러나온다는 의미인데 후발효차는 녹차나 홍차보다 가용성분이 더 많아져서 더 진하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발효차의 발효공정은 맛 성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향기 성분도 생성하게 된다. 후발효차는 게라니올, 리나롤, 네롤리돌 등의 꽃과 과일 냄새를 내는 향기 성분들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녹차, 우롱차, 홍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향기성분을 가진다.
퇴적 공정 중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후발효차 특유의 발효취(오래된 가구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함)가 생겨나게 되는데 이러한 후발효차의 독특한 향취를 싫어하는 소비자도 있지만 푸얼차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후발효차 특유의 발효취가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즉 후발효차의 매력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발효공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맛, 진하고 깊은 수색과 풍미, 미생물들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른 차에는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향기라 하겠다. 푸얼차 매니아들에게 들어보면 이러한 관능적인 요소들이 푸얼차를 다시 마시고 싶게끔 중독성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후발효차 건강에 대한 효능들이 연구자들에 의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어서 후발효차의 소비가 촉진되고 있는 요인이도 하다.
푸얼차를 비롯한 후발효차들은 매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하여 우리나라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의 후발효차가 거의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중국 후발효차에 의존해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중국 후발효차의 수요에 대응하고자 최근 한국에서도 꽤 훌륭한 후발효차가 개발되었다. 최근에 개발된 한국의 후발효차는 한국의 청국장에서 동정하여 분리한 균주를 사용하여 위생적인 환경에서 과학적으로 발효된 것이다.
또한 삼나무통에서 장시간 후숙을 하여 지금까지 중국의 후발효차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후발효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중국의 후발효차만 편향되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새로운 싹을 튀워나가고 있는 한국의 후발효차를 마셔보고 평가해보는 것도 흥미롭고 의미있는 차생활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