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신용보증기금 중부지점장 때 일이다.

친구와 저녁 약속하고 온평경찰서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경찰서에서 눈물을 닦으며 걸어 나오는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여의도로 가젠허민 어디 가서 타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가젠허민』이라는 말투로 보아 제주도 아주머니가 틀림없어 보이기에 “나도 이 곳은 처음이라부난 잘 모르쿠다.” 하며 미소지었다.

나의 말 『모르쿠다』소리에 아주머니 얼굴이 반가운 낯으로 변하면서 “아주방도 제주도우꽈?” 하는 것이다. “어떠 허연 경찰서에서 울멍 나왐수과?” 하고 묻자 “아이고, 말도 맙서!나를 사기쳐 먹은 년, 몇해를 찾아 다니다가 오늘 붙잡아서 여기 갔다 드리쳐 놓고 나왐수다.”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보아하니 보통사람은 아닌 것 같은디..... 경찰에서 이 년 풀어 주카부덴 걱정이우다. 나에게 사기친 것 해결 안 하면 풀어 주지 못하게 하는 방법 없우과?” 하며 애원했다.

이런 대화하는 사이에 저녁 약속한 친구가 도착했고 나도 그 부인과 오래 대화할 시간이 없기에 명함을 드리면서 “내일 아침 우리 사무실로 찾아 오시면 자세한 말 들어 보고 방법을 찾아 보게마씀.”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 보니 아주머니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 말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머니는 제주시내에서 연탄공장도 경영했고 아라동 지경에 큰 밀감밭도 갖고 있었다. 제주시내 명문가의 딸인 C여사가 밀감밭을 담보용으로 빌려주면 농협에 담보제공해서 대출받아 쓰겠다 했고 평소 친히 지내는 사이라 서슴지 않고 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C여사는 대출받은 뒤 이자도 안 갚고 서울로 도망쳐 버려 밀감밭은 경매처분 당하게 되어서 C여사를 찾으러 서울에 올라와 서울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C여사도 찾지 못하고 밀감밭이 경매되면 제 값도 못 받을 것 같아 종로 1가에 있는 복덕방에 찾아가 밀감밭을 팔겠다고 의뢰하면서 C여사의 관계를 자초지종 얘기하고 나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승용차가 멈추더니 젊은 여자가 내리면서 “아주머니! 무슨 걱정 있으세요? 아주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다방에 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얘기나 들어 봅시다.“ 하고 유인한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어서 그 여자를 따라 가 사연을 얘기했더니 “걱정마세요. 제가 도와 드리지요. 서울에 묵을 집이 없다니 우리집으로 가서 머물면서 기다리면 과수원 파는 문제 등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며 승용차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방을 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친절을 베풀더라는 것이다.

어느 새 둘이는 친해져 언니, 동생 되었고 2,3일 동안 그 집에 머무는데 그 여자가 “언니! 서울에 오래 있어 봐야 큰 과수원이고 금액이 벅차서 얼른 처분이 안 될 것 같으니 제주에 내려가 있으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내가 농협 부채도 갚았고 경매취하 하도록 조치했으니 안심하고 가서 기다리세요.“ 하며 몇 백만원을 마련해 주기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제주에 내려와 기다리는데 전화 오기를 “과수원이 너무 커서 현금 주고 사겠다는 사람은 아직 없고 여관을 경영하는 사람으로부터 여관과 과수원을 맞바꾸자는 제의가 있으니, 여관은 잘 팔리므로 교환한 후 여관을 처분하자.” 고 제의해 와서 “동생 하자는 대로 할게. 알아서 해.” 하고는 밀감밭 매도에 필요한 서류를 챙겨 상경했다.

바꾸겠다는 여관에 데리고 가 보여 주면서 위치가 좋아 금방 팔릴 것이라고 추겨 새우며 안심시키기에 과수원 매도 서류에 서명 날인해 버렸다.

또 다시 “제주에 내려가 잠시 기다리세요. 여관이 팔리게 되면 부를께요.” 해서 안심하고 내려 왔는데 3개월이 넘어 가도록 연락이 없고 전화통화도 안 되었다. 걱정스러 맘에 상경하여 그 여자 집에 찾아 갔더니 딴 사람이 살고 있으면서『그 여자에게 잠시 집을 빌려준 정도』라는 대답을 하면서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여관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여관주인은 과수원과 바꾸자는 말을 해 본 바 없다며 『편드룽』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초 C여사가 농협에서 7천만원을 빌려 연체하고 갱매신청되어 그 돈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결국 5억원 짜리 과수원을 날려버린 셈이 된 것이다.

그 뒤로 그 여자를 찾기 위해 2년 동안 서울시내를 휘젓고 다니다가 오늘은 우연히 당초 들렀던 종로1가 복덕방 근처를 배회하다가 그 복덕방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붙잡은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복덕방과도 연관이 있는 눈치라고 했다. 당초 그 복덕방에 들러 하소연할 때 칸막이 뒤에서 모든 것을 듣고 나와 승용차로 유인한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울화가 터져 나는 그 아주머니를 데리고 검사출신 변호사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붙잡아다 놓은 여자를 풀어주지 못하게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변호사는 치안본부의 고위직에 있는 분에게 통화하여 그리하였고, 정식으로 고발장을 작성해 주면서 『증거서류』를 빨리 갖고 오라는 지시를 했다.

다음 날 그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러와 “그 여자 남편이 찾아와 합의하자고 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제주출신이고 보험관계 업종에 근무하는 간부인데 우선 현금으로 몇 천만원 주고 잔액은 지불각서를 쓸 터이니 고소를 취하하여 여자를 풀어주는 데 합의하면서 풀려 나오는 즉시 해결해 주겠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물어왔다.

나는 한 마디로 “안됩니다! 아주머니는 마음이 약해서 합의하라고 하는 모양인데 또 속아 넘어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액 현금으로 받기 전에는 합의하지 마십시오.” 하고 강하게 나가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아주머니가 내 사무실로 찾아와 “현금 일부 받고 지불가서 받아서 고소 취하해 줘 부렀수다.” 하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왜 내 권유대로 인하고 또 속아 넘어가십니까? 이제 끝나 버렸으니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도 맙서,” 하고 냉정하게 돌려 보냈다.

몇 해 뒤, 내가 정년퇴임하고 한양금고 사장에 취임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화분을 들고 찾아왔다.

“그 때 그 잔금 다 받았구과?” 하고 물었더니 “말도 하기 싫수다. 아저씨 말대로 하지 않은 내 탓인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 합네까?” 하며 쓴웃음지었다.

“그 남편이란 사람, 제주출신이라 하던데 누굽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거 알앙 이제 뭣 하쿠과? 모르는 게 좋을 거우다.”하며 가 버렸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을 보았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