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공공기관장 조카, 토익위조로 농정원 채용됐다 국감서 적발

농림축산식품부 산하로 지난해 개원한 공공기관인 농림수산식품문화정보원(이하 농정원) 채용에 큰 구멍이 뚫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공기관장을 역임했던 농축식품부 고위공무원 출신 인사의 조카로 알려진 직원이 채용과정에서 가공의 토익성적을 낸 뒤 합격해 다니다, 국정감사 자료요구 과정에서 의원실에 의해 적발됐다.

김우남 의원(민주당, 제주시 乙, 농축식품해양수산위)이 밝힌 바에 따르면, 농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요구자료 중 지난해 8월 정규직 신입채용과정에 큰 문제가 발견됐다.

문제의 직원이 토익성적 부족으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되자, 가짜 토익성적으로 점수를 올렸고 결국 합격했던 것. 이 과정에서 농정원 내부의 조력자나 기관 고위직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정황들이 엿보인다.

그 직원은 서류접수시 895점의 토익성적표(원본)를 냈으나 서류마감직전, “945점짜리 토익성적이 있다”며 전화로 담당자에게 정정을 요구했다. 평범한 지원자로서는 알 수 없는 `배점표에 따른 서류탈락가능성`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대목이다.

공고된 지원자격은 토익 700점 이상이었고 토익점수 배점표는 지원자들에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945점은 서류전형상 어학만점(40점)에 해당된다. 정정된 토익으로 합격권인 21등에 오를 수 있었던 그는, 895점(35점)을 그대로 냈을 경우엔 86위로 탈락할 상황이었다. 전체 지원자는 625명, 서류통과인원은 45명이었다.

게다가 전화상으로만 945점 토익성적표 보유를 주장한 뒤, 면접당일 지참해야할 성적표는 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무난히 합격했고 지난 1년간 재직해왔다.

지난달 김우남 의원실로부터 국정감사를 위한 강도 높은 자료요구가 진행되자, 이 직원은 그제서야 토익성적확인 화면을 캡쳐한 이미지파일을 `위조`했다. 위조한 파일을 `성적표`를 대신해 회사에 냈고, 국감 자료요구를 통해 의원실에 제출됐다. 종이성적표를 위변조하는 수준의 사문서위변조행위를 하진 않았지만, 중대한 범법행위다.

이 과정에서 농정원은 `성적확인 이미지파일`을 채용당시 출력해 보관했다고 주장하다가, `위조`가 밝혀지자 “한 달전쯤 `파일`을 제출받았다”고 사실관계를 수정했다. 담당자의 실수라기보다는 조직적 은폐시도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의원실에서 직접 토익위원회에 조회한 결과, 945점이 찍혀있는 성적확인 이미지파일은 `가짜`였다. 파일에 적혀있는 2011년 5월 29일, 응시일에 그 직원은 아예 시험을 치른 적이 없음이 확인됐다.

대담하게도 토익성적을 위조한 그는 의원실의 계속된 추궁에도 거짓을 이어갔다. “미국 워싱턴에서 치른 토익이라 한국 토익위원회에서 점수조회가 안 될 것”이라고 변명하더니, “제출한 캡쳐파일은 한국토익위원회 성적확인화면이라, 미국점수라면 애초에 성적확인이 안 돼야 하는 것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더니, 이번엔 “미국유학을 마치고 체류중이던 2011년 5월에 한국에 잠깐 와서 토익을 봤다”며 말을 뒤집었다.

결국 출입국확인서까지 요구한 끝에, “성적확인화면을 위조했다”고 시인했다.

직원은 “채용당시 2년이 경과돼 유효하진 않았지만 2010년경 미국 워싱턴서 945점 토익성적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하며 “단독으로 회사를 속였고, 회사와의 공모는 없다”는 요지의 `경위서`를 11일 회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여전하다.

미국 토익성적 주장은 현재 2년 경과로 확인이 어려울 뿐 아니라, 서류전형에서부터 누군가의 조력을 받지 않고선, 합격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성적표제출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 통화상 구두설명만으로 토익성적을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회사 고위직과의 관련혐의는 더욱 짙다.

홈페이지문구를 베껴 직무소견서를 낼 정도로 치밀하지 않은 문제의 직원이 토익정정요구, 면접고득점, 성적파일위조 등 일련의 쉽지 않은 과정을 단독으로 해결했다는 해명은 정황상 믿기 어렵다.

지난 9월부터 본 의원실의 강도 높은 자료요구와 추궁이 시작되자, 조직적인 채용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진위조회가 쉽지 않은 2년이 경과한 `가짜` 토익성적표파일을 조직차원에서 만들고 국감에 대응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농정원의 채용과정은 `가짜 토익성적`을 인정해 준 허술한 시스템 외에 전반적으로 다양한 비리나 개입이 가능한 요소를 담고 있다.

먼저 이력서양식에 부모 등 가족모두의 `출신도(道)`를 기재하게 돼 있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부모출신지를 묻는 방식은 공정한 채용에 큰 저해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대기업이나 큰 공기업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김우남 의원실이 농축식품해양수산위 소관 24개기관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족의 `출신지`를 묻는 기관은 `농정원`이 유일했다.

의원실에서 지난해 8월 합격자를 조사한 결과, 9명의 합격자 중 7명의 부모가 경상도출신이었다. `출신도`를 기재하게 한 이력서는 특정지역 출신을 `우대`하거나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하기 마련이다.

`공기관`의 채용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이력서 양식에서부터 `지역차별우려`를 지원자들에게 내비친 것은 큰 잘못이다.

또한 수 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전문 채용대행업체(취업포털)에 서류전형을 의뢰했지만, 토익성적을 임의로 “상향조정 해줄 것”을 업체에 요구한 것도 큰 문제다. 국민세금인 예산을 써 가며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목적인 `공정성 확보`를 기관 스스로 저버렸다.

문제의 직원이 써 낸 `직무소견서`에 대한 업체의 `만점(서류전형시 10점 가점)`부여 또한 의심해 볼 여지가 크다. 의원실에서 직무소견서를 검토해 본 결과, 농정원홈페이지 기관소개 문구를 그대로 베낀 정도의 수준이었다.

기관고유 임무에 대한 본인의 업무기여가능성을 피력한 타 지원자들의 소견서와는 질적으로 크게 차이가 났지만, 오히려 점수는 최고점을 받았다. 채점은 대행업체의 `정성`평가로 이뤄진 탓에 추가검증이 불가능하다. 다만 누가 봐도 문제소지는 다분하다. 전체 응시자 625명 중 10점 만점을 받은 사람은 18명에 불과했고 서류합격자 45명 중에도 10점 만점은 단 3명에 지나지 않았다.

면접을 담당한 5명의 외부위원들 중 일부가 채용부정에 `직간접`으로 이용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문제의 직원은 위원 5명중 4명으로부터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받아 면접대상 45명 중 4등으로 통과했다. 토익성적을 위조한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줬던 위원들은 농정원에서 공개적으로 실명을 밝히고, 향후 모든 공공기관 면접위원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부정을 저지른 직원을 오히려 높은 점수로 합격시킨 위원은 `면접위원`자질이 의심된다. 기관고위직의 청탁과 지시가 있었는지도 의심된다. 만약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서류전형시 `외부대행업체`와 면접전형시 `외부위원들`이 공기관의 `내맘대로 불공정`채용에 들러리를 서는 형국이다.

김우남 의원은 “그간 공기관의 채용비리나 불공정사례는 규모가 작은 산하기관에서 많이 적발됐다”며 “지켜보는 눈이 많고 감사가 잦은 중앙기관보다, 감시가 소홀한 산하기관에서의 부정한 채용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중앙부처 고위직출신이 기관장인 기관에서 흔히 보이는 채용비리는 두 가지”라며 “기관장이나 고위직인사 자제가 편법을 써서 직접 들어오거나, 타 기관장에게 청탁을 해 입사시키는 게 보통인데 국정감사 등에 의한 국회감시가 심해지면서 최근엔 적발이 어려운 후자가 더 많이 쓰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회는 이번 농정원 채용 적발 건에 고위직이 연루됐거나 지시를 내렸다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며 “만약 고위직의 지시에 따랐을 뿐인 인사실무자를 징계한다면 이는 비열한 꼬리짜르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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