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중소기업은행 지점장 시절 중앙정보부 제주지부 과장이 전화로 “오는 10시에 중대 발표가 있으니 잘 들어보고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했다.

근무시간 중이지만 숙직실로 가서 TV를 켜 보았더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와 『남북합의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해방 후 남북이 가로막혀 오가지도 못하는 철의장막인 북한이고 더구나 6.25전쟁으로 수 많은 인명이 목숨을 바쳐 싸워온 사이여서, 남북이 평화공존을 위하여 합의문을 도출했다는 것은 놀라운 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중대 발표가 끝난 다음 나에게 소감을 물어왔기에 나는 솔직하게 내 느낌을 말해줬다. 우리나라를 위하여 참으로 훌륭한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하며 우리 민족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락 부장의 발표문 가운데 『앞으로 우리 정부가 UN의 결의에 따라 남북통일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신중하게 검토하지 못한 것 같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나의 이 말에 중정과장은 놀란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현재 UN의 상임이사국은 중화민국이 빠지고 중공이 대시 들어가 있기 때문에 과거 6.25때 UN이 대한민국을 호의적으로 대접해 주던 시절과 달리 우리와 국교가 없는 중공의 힘에 의하여 우리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데 UN이 우리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려도 우리가 수용하겠다는 뜻이 되고 말았지 않느냐고 설명해 주었다.

내 말을 심각하게 듣고 간 과장이 며칠 후 찾아와 고마운 뜻으로 점심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현 지점장님의 지적 사항을 중앙에 보고했더니 사실은 전국 각지에서 여론수렴을 했지만 현 지점장님처럼 핵심을 지적한 분은 한 분도 없었다고 하면서 마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줘 큰 도움이 되었다는 칭찬을 받았노라고 자랑 하는 것이었다.

해방 후 UN의 승인 아래 출범한 우리나라였고 6.25전쟁 때에도 UN군의 도움을 받은 바 있는 처지였지만 중화민국이 UN에서 추방되고 우리와 전쟁 상대국이었고 국교가 없는 중공이 대신 들어가 상임이사국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소홀히 생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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