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내가 중소기업은행 지점장으로 임차한 관사에 살고 있을 때 도둑이 들었다.

아내는 아이들 돌반지와 탯줄을 넣어둔 주머니를 도둑맞았다고 억울해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도둑이 언제 어떻게 침이했는지도 모르고 물건만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한참 지난 후 지금의 우리집을 마련하고 이사왔다. 3층 집이지만 아래층은 창고로 세를 주고 2층, 3층은 주택으로 살고 있는데 아들 둘은 3층에 딸 들과 막내 아들과 장모님은 2층 건넌방에, 우리 내외는 2층 안방을 사용했다.

추은 겨울 밤 하늬바람이 세차게 불어 창문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한 밤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내 얼굴 위로 손전등 불빛이 스쳐 지나가고 부시럭대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방안을 살펴 보았다.

웬 사람이 내 책상을 뒤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도둑이라는 판단이 섰다. 살금살금 일어나 도둑을 뒤로 와락 껴안아 몸싸움을 하게 되자 책장 유리가 박살나고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둑놈은 신발을 신은 상태였고 나는 맨발이어서 깨어진 유리조각에 내 발이 다치게 되어 도둑을 놓아 주고 말았다.

도둑놈이 도망가고 난 다음 침입한 곳을 조사해 보니 부엌쪽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온 것인데 바람소리 때문에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도둑놈과 몸씨름을하느라 집안이 소란했지만 3층의 아들들과 옆방의 딸들도 단잠에 빠져 알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도둑과 몸싸움 하는 동안 벌벌 떨며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아내가 “오늘 보니 당신, 정말 용감합데다. 도둑놈을 쫓아 버릴 것이지, 붙잡고 싸움질하다가 흉기로 찌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려고......” 하며 소름끼친 듯 말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이 되고, 집안에서 온가족으로부터 『용감한 아버지』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정년퇴직하고 아이들도 따로 살게 되니 우리집은 시청에 출근하는 딸과 우리부부만이 살았다.

딸이 출근하고 나면 나도 외출해 버리고 처는 문단속하고 성당으로 가는 게 일과였다. 낮에 잠깐 집에 볼 일이 있어 돌아와 보니 잠겼던 문이 열려 있고 안방에는 웬 남자가 방안을 뒤지고 있었다.

“당신 누구요?” 하고 소리치자 나를 밀치고 도망질치는 것이었다. 마침 대낮이었고 도둑이 도망가던 길목 슈퍼앞에 젊은 사람들이 보였다.

“도둑놈, 잡아 주시오!” 하고 소리지르자 슈펴에서 나오던 젊은 사람 대여서이 달려들어 도둑놈을 붙잡았다.

파출소에 신고하고 경찰관이 올 때까지 도둑놈 몸수색을 했더니, 다이아반지, 금 가락지, 금 목걸이 등 30여 점이 쏟아져 나왔지만, 우리집에서는 도난당한 물건이 없었다.

여기 저기 다니며 도둑질해서 갖고 다니는 것들이었다.

드 도둑놈은 S택시회사 택시기사였고 그 택시는 매일같이 동네에 와서 세워져 있던 것을 목격한 사람이 많았다.

그 도둑이 잡히고 단 다음부터 우리동네에 도둑들었다는 집이 없어졌으니 그 친구가 동네집을 휘젓고 다녔던 모양이다.

얼마 후 아는 사람의 재판이 있어 법정에 구경 갔더니 형사 피의자의 변호사가 피고에게 묻기를 “피고는 삼도1동 현임종 씨 집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도둑질하러 간 것은 아니지요?” 하고 질문했다.

순간 정신이 바짝 들어 살펴보았더니 우리집에 들었다가 잡혀간 도둑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나오는데 그 변호사가 어떤 부인을 나에게 데리고 와서 피고의 부인이라고 소개시키면서 “죄송하지만 피고를 위해 합의서 한 장만 써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형사 피고에게 합의서라니? 교통사고 피의자도 아니고 절도 피의자에게 무슨 합의가 필요합니까?” 하며 돌아서 와 버렸다.

사실은 도둑놈을 잡아 경찰로 인계한 수 제주경찰서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었다.

“절도범을 조사하다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어, 합의서 한 장 써 주시면 가볍게 처리할 수 있으니 부탁합니다.” 하고 말했다.

“당신, 경찰관 맞아요? 주민이 잡아 보낸 절도범을 동정하는 것은 좋으나, 합의서 운운하다니...., 법대로 처리할 일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얼굴도 안 보이는 전호로 이런 부탁하면 결찰관인지 누군지 내가 어떻게 믿겠소?” 하고 불편한 심기를 말한 바 있었다.

나에게 전화한 사람이 경찰관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런 전화 받게 되는 것에 불안감도 생겼는데 변호사마다 『합의서』운운하며 피고가족을 나에게 대면시키는 것은 어쩐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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