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시절에는 땔감이 모자라, 어느 집 할 것 없이 땔감을 마련하느라고 애먹곤 했다.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는 주로 보리낭(보리짚)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 철의 보리낭만으로는 1년 동안 사용할 땔감이 되지 못하므로, 소나 말이 먹다 남긴 촐찌꺼기(쇠되치)와 솔잎, 삭다리(썩은 나뭇가지)등을 최대한 마련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시간만 나면 산에 올라가 삭다리를 주워와야 했고, 초겨울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솔잎 걷으러 글겡이(갈퀴)들고 또 산으로 갔다.

삭다리나 솔잎 걷으러 간 사람들은 자기가 짊어지고 올 수 있는 만큼만 주워 오는게 아니라, 욕심을 부려 두 사람 몫 이상을 거두엇다.

일단 한 짐 지고 일정거리에 내려와 부려두고 다시 올라가 남은 것을 지고 내려왔고, 이렇게 여러번 되풀이 하면서 내려 오다 보면 집 식구 중 누구 하나가 마중나가 나누어 지고 함께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마중나온 식구를 처음 마주칠 때의 반가움이란 얼마나 큰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특히 솔잎을 걷으러 가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었는데 산더미처럼 둥그렇게 솔잎을 흩어져 버릴 것처럼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게 똘똘 잘 묶어 내려오는 것을 보렴 여자분들의 솔잎묶는 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엌에서 사용할 땔감도 중요하지만 겨울철 굴묵(온돌 아궁이) 지들 땔감도 중요했다. 이는 주로 고스락(까끄라기-보리이삭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이용한다.

그러나 보리농사를 얼마나 많이 지어야만 고스락으로 한 해 겨울 굴묵을 땐단 말인가.

아침마다 길바닥을 누비며 쇠똥, 말똥을 주워다가 말려서 썼고, 소나무밭에서 솔똥(소나무 열매)을 주워다 굴묵을 때곤 했다.

쇠똥, 말똥을 잘 주우려면 새벽 같이 일어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거리를 누벼야지 늦잠 자서는 기회를 놓치고만다.

솔똥을 줍거나 솔잎을 걷으려 하는 시기가 절기상 바람이 싸늘하게 부는 겨울철이다. 더구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야 솔잎과 솔똥이 더 많이 떨어지므로, 춥다고 집에만 있으면 기회를 놓치고 말게 되니, 좀처럼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다.

지금은 소나무밭에서 일부러 풀을 베어내지 않기 때문에 잡초가 우거져 있으니 솔잎 긁어모을 방법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소나 말에게 먹일 촐을 항상 베어냈으므로 소나무 밑이 깨끗하여 솔잎을 긁어모으기 쉬웠다.

집안에 남자 일꾼이 있는 집에서는 소나무를 베어다가 장작을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장만한 장작은 주로 성내(시내)에 짊어지고 나가 팔아 용돈벌이가 되곤 했다.

집에서 평상시에 땔감으로 장작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잔치나 대사가 있는 집에서 큰일을 앞두고 화력이 강한 장작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들판의 잡목들을 베어다가 숯으로 구워 화롯불을 지피기도 했지만, 이 또한 남자가 있는 집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산이나 들에 가 보면 삭다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도 아무도 거들떠 보는 이가 없어졌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우리가 자라날 적에는 『가스』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석유』로 밥 지어 먹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제는 전기솥에서 밥 지어 먹고 있지 않은가! 정말 땔감 걱정할 때가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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