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는 「귀신들렸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서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귀신들렸다」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아무개네 집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 영혼에 들려 무당을 모셔다 굿을 했더니 나았다.” 라는 말을 주고 받는 것을 간혹 들었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듣고 넘겼다.

제주 4.3사건이 끝날 무렵 노형동 재건부락의 움막집에서 살고 있을 때, 옆집 할머니가 요란스럽게 헛소리를 하여 이웃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왔다.

모여든 이웃 사람들은 “아무래도 할머니 말하는 소리 들어보난, 귀신에 얻어 걸린 것 같다.” 고 수군수군대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웃어른인 우리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접근하여 “어디서 온 누구시우꽈? 할머니 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말이 뭐꽈? 하고 달래며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려 주었다.

할머니는 본래의 할머니 목소리가 아닌 젊은 남성의 굵은 목소리로 변한 음성으로 “난 도고내(외도리) 출신 아무개우다.

어디어디 골짜기에 총맞아 죽어 있는데, 춥고, 배고파 견딜 수가 없수다.(없습니다.) 우리집에 좀 알려줍서.(알려 주세요.) 칭원해서(억울해서) 못 살쿠다.(못 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가 “알려드리고 말고 마씀.(당연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디 사는 누구신디 알려드립네까?(누구에게 알려드릴까요?)” 하고 할머니의 입만 쳐다 보았다.

할머니는 “도고내(외도리) 사는 아무개에게 알려 주어 나를 편안히 잠잘 수 있게 해줍서.(해 주세요.)” 하고 소리질렀다.

동네 젊은 사람을 급히 도고내 마을로 보내 아무개를 찾았더니, 마침 그 집 아들이 한라산에 올라갔는데 생사를 모르고 있다고 했다.

아들 귀신이 이웃 할머니에게 들려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하여 그 분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할머니가 말하는 골짜기에 가 보니 해골이 된 시신 한 구가 있어 유족에게 인계되었다.

다음 날 할머니는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나 앉아 “쑥과 꿩마농(달래) 캐러 들에 나갔다가 해골을 보고 놀라, 집에 돌아와 누운 것이 그만 그리 되었다네. 그 해골의 신원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의 귀신이 할머니에게 들려 할머니가 마치 그 사람인 듯 행세를 했으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 뒤에도 고향 아주머니들의 입에서 간혹 누가 누구에게 들렸었다는 말을 해도 그냥 웃어 넘겨 버렸다.

한참 세월이 흐는 어느 날 일이다. 신보증기금 제주지점장 시절 고향 후배 집에 아들 결혼이 있어 잔치먹으러 갔다.

그런데 즐거운 자치 도중에 갑자기 신랑 부친이 10일 전에 돌아가신 사촌형수가 되어 “열흘전에 내가 세상을 떠났는데, 너희들은 아들 결혼이 가까웠다고 핑계대며 조문도 오지 않더니, 오늘은 내가 이렇게 와도 모른체하고 너희들만 처 먹으면서 내게는 음식도 안 주는구나.” 하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신랑부친의 행동이나 목소리가 영락없이 사촌형수인지라 친척 부인네들이 모두 몰려들어 “아이고~, 성님~ 잘못해수다.(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오신 줄도 모르고 무심했수다.(무심했습니다.) 여기 상 차려 와시난(왔으니까) 잡수시고 편안히 가십서.(가세요.)” 하며 쩔쩔매었다.

물론 한 상 음식을 차려 놓고, 돌아가신 형수님께 제를 지내듯이 술잔도 부어 올렸다.

사실은 10일 전에 사촌형수님이 돌아가셨다. 곧 닥쳐온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데 이 마당에 조문을 가야 되느냐, 가지 말아야 되느냐, 고민이 생겼다.

일반적인 관례로는 집에 결혼이라는 대사가 있으면 남의 집에 조문을 안 다니는 것이지만 사촌형수여서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주변 모두의 만류로 조문을 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30분쯤 후에 깨어난 신랑부친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심상하게 손님을 다시 맞이했고, 축하객들로부터 부조금도 잘 받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굳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 현상을 설명해 보자면 사촌형수님이 돌아가셨지만 아들 결혼을 앞두고 정성하느라고 조문을 갖다 오지 못한 죄책감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시적인 정신착란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앞서 할머니의 경우는 망자와 할머니 사이는 전혀 일면식이 없는 사이인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자기 신상을 알려 가족으로 하여금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했는지, 어떠한 설명도 보탤 수가 없다.

정말로 인간의 의식세계를 뛰어넘는 초자연의 세계가 있다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