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까지 17년·비용 4000억 원, 값어치 하고 있나?

▲ 안전행정부의 도로명주소 홍보 포스터

평소 책을 즐겨 읽는 S씨는 인터넷 문고에서 책 한 권을 구입했다.

그 후 택배가 배송되던 당일 부재중이었던 S씨는 택배기사로부터 “집에 계시지 않아 택배를 경비실에 맡기고 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러한 일이 종종 있었던 S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택배를 찾으러 갔다. 그러나 택배기사가 맡겼다는 ‘택배’는 왔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황당함을 감출 수 없는 S씨는 자초지종을 묻기 위해 택배기사와 연락을 취했고, 택배가 S씨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닌 타 아파트 경비실에 배송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소가 버젓이 기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배송사고가 발생한 걸까?

■ 2014년 1월 1일부터 ‘도로명 주소’ 사용이 전면 시행됩니다

2014년 1월1일부터 도로명 주소가 법정 주소로 전면 사용됐다.

도로명 주소는 기존 지번 주소체계를 떠나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를 붙여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신주소체계로 이미 영국, 프랑스, 중국, 대만, 일본 등 여러 국가가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행정동과 법정동의 이원화, 도시화로 인한 지번의 연속성 결여, 경로안내와 위치안내의 기능저하 등 지번주소체계에는 다양한 문제점이 있어 국민 불편의 해소와 국제 표준 채택, 주소의 자원화를 위한 도로명 주소 사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존 지번주소 체계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토지조사 측량을 실시해 만들었던 일제시대의 잔재일 뿐만 아니라 앞 다퉈 일어난 개발로 인해 사실상 번지수로 길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에 도로명 주소 사용은 더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도로명 주소의 도로명은 길의 크기에 따라 대로, 로, 길로 나뉘며, 건물번호는 주된 출입구에 인접한 도로의 기초번호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한 도로구간 설정은 서쪽에서 동쪽, 남쪽에서 북쪽, 직진성·연속성이 원칙이며, 도로를 중심으로 왼쪽은 건물번호가 홀수, 오른쪽은 짝수로 구성됐다.

안전행정부는 도로명 주소 사용으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의 길찾는 비용절감, 여가활동 및 이동시 길찾는 비용절감 등 약 3조1000천억원의 길찾기 비용 절감과 우편배달, 택배배달 등 1598억의 물류비 등 정량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응급서비스 및 도시미관 개선, 배달업의 고효율화, 전자지도 신규산업 확산 등 다양한 정성적 효과도 예상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도로명 주소 사용을 통한 초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시디자인 본부장을 단장으로한 ‘비상상황 대응단’을 구성 운영했다.

특히 도로명주소 전면 사용에 관한 전화 문의가 증가할 것에 대비, 제주안내콜센터(064-120)와 연계해 24시간 민원안내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안내시설물 일제점검을 1/4분기내 추진하고, 고장의 특색 있는 도로명을 중심으로 관광산업과 연계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추진해 마을에 배부하는 등 도로명 주소가 생활화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정력을 투자했다.

제주시는 신축건물에 대한 도로명주소 고지·고시 횟수를 기존 주1회에서 주 2회로 확대 실시하고, 독거노인 대상 도로명주소 안내스티커 배부, 시각장애인 대상 점자안내문 제작·배부하는 등 정보 소외계층까지 그 홍보 대상을 넓히는 등 도로명 주소 정착을 위한 노력이 분주한 실정이다.

■  ‘도로명 주소’ 준비기간만 17년, 비용은 4000억원 대

도로명 주소의 전면 시행은 2014년 1월부터였으나 그 준비기간은 매우 길었다.

안전행정부는 1997년 1월 강남구, 안양시, 안산, 청주, 공주, 경주시를 대상으로 도로명 주소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이어 2001년도에 지적법에 도로명 및 건물번호부여 관리에 관한 근거 마련(제16조)에 나섰으며, 2002년에는 ‘50대 활용방안’을 마련했다.

그 후 2004년에 들어 도로명 사업의 중.장기 발전방안을 수립해 2006년 도로명주소 통합센터를 구축한 후 총 4단계 사업으로 실시했으며, 2010년에 들어서 도로명주소 시설물이 전국에 설치 완료됐다. 도입 결정 후로부터 무려 약 18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도로명 주소를 위해 사용된 비용은 추산 4000억원으로 이 또한 어마어마한 비용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인 행정이 안정화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지를 생각한다면 과연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만큼 ‘도로명 주소’사용이 절실했던 것인지 되새기게 된다.

■  ‘도로명 주소’는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S씨의 물건을 잘못 배송했던 택배기사 A씨는 결국 택배를 되찾아 다시 S씨에 전달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oo아파트 oo동 oo호로 기재돼있던 주소가 oo길 oo, oo동 oo호로 기재돼 있으니 낯설고 어려워 착오가 생긴 것이다.

특히 신년 맞이와 설 연휴로 인한 택배 물량 증가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이른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배달에 나서야 하는 택배기사에겐 ‘도로명 주소 전환’과 같은 행정은 너무도 끔찍한 현실이다.

현재 택배를 전달하는 택배기사 및 우편을 배송하는 집배원들은 도로명 주소가 기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헷갈리는 주소를 다시 이전 지번주소로 변경해 배송하는 작업을 모두 ‘개인’이 수행하고 있다.

택배기사 A씨는 “아직 구주소(지번주소)로 배송되는 택배도 많지만 신주소(도로명주소)로 배송되는 택배는 송장을 보고 다시 지번주소로 바꾸거나 전화를 걸어 주소를 확인하는 일이 다반사”라 토로했다.

또한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보니 택배를 배송하는 시간이 점차 늦어지고,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의 불만도 높아지는 실정”이라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도 뚝심 행정 앞에선 정당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속앓이’가 됐다.

지난 2월 6일 세계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최근 혼란을 겪고 있는 새 도로명 주소에 대해 우정사업본부가 집배원 등을 대상으로 언론 등에 문제점을 언급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집배원들은 설 전후로 인해 우편물 등이 폭주하는 데다 익숙하지 않은 주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불만조차 토로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기 좋은 시작과 다르게 논란의 중심이 된 ‘도로명 주소’. 국민 편의를 위해 시작된 도로명 주소가 되레 엄청난 혼선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준비 기간과 비용에 비례할 만큼 안정적으로 자리했나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무조건 “도로명 주소를 사용해라”, “도로명 주소가 안정화되면 지번보다 훨씬 편리하다”라는 이론적 이점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안정화에 주력할 수 있는 직접 행정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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