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한 해가 가고 새해 아침이 되면 ‘금년에는 일기를 잘 써야지.’하고 결심을 해 보지만, 작심삼일에 불과하고 일기를 제대를 써 본 일이 없다.

내가 현역에 있을 때까지는 아예 일기를 쓰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일기쓰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내가 일기쓰는 것을 싫어하게 된 때에는 충분한 사연이 있다. 제주도 4.3사건때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한 겨울 한라산으로 피난갔다 돌아와 학교에 복학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서 작문 숙제를 주었고, 나는 지난 한 겨울 산 속에서 경험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공포에 시달리던 상황과 그 때 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적어 제출했고, 그 원문이 되는 일기장 공책은 재건부 오막살이 천장에 꽂아 놓아 두었다.

4.3사건으로 집이 불태워졌고 임시 재건부락에는 움막을 지어 그냥 땅바닥에 검불을 깔고 살았는데, 출입을 할 때는 기어서 들어가고 나와야 할 정도로 나지막한 오막살이였다.

하루는 경찰주재소에서 모든 집을 검열하다가 우리집에서 내가 쓴 일기장을 발견하였다.

경찰주재소 홍 순경은 그 내용이 불순하다 하여 하고하는 나를 재소로 끌고 가 무조건 뭉둥이로 후려 패기 시작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나는 일단 무조건 맞는 수밖에 없었고, 한참 때린 홍 순경도 숨이 가빠 헐떡대며 잠시 멈춘 사이에 “무사 때렴수과? (왜 때리시는 겁니까?)” 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홍 순경은 내 공책을 내보이며 “이게 빨갱이 글이 아니고 뭐냐?” 하고 눈을 부릅뜨고 다시 때리려 뭉둥이를 잡았다. 그제야 공책을 본 나는 빨갱이 글이 아니라는 것에 자신있었으므로 “그거 다 읽어 봅데강? (그거 다 읽어 보셨습니까?) 끝까지 일겅 보지도 않고 때립니다?” 하고 덤벼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북에서 월남한 서북청년 출신인 홍 순경은 글 읽을만한 실력이 업슨 무식쟁이라는 것을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 그 공책 이리 줍서.(이리 주세요.) 내가 끝까지 읽어 드릴테니 다 들어봅서.(다 들어 보세요.)” 하고 덤비자 순순히 내게 공책을 주었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주자 그제서야 자기가 지나쳤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공책 끝부분에 가서 “남로당원들이 공연히 4.3사건을 일으켜, 우리를 고생시키고 우리 백성만 죄없이 많이 죽게 했다.” 라고 마지막부분까지 읽어 주자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하고 사과하며 나를 집으로 보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식한 홍 순경에게 당한 것이 하도 칭원하여(서러워서)소리내어 울었고, 다시는 일기같은 것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일기를 쓰려면 솔직한 심정을 모두 써야 하는데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쓰는 일기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회의했던 것이다.

자기 느낌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일기가 훗날 참 가치있는 일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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