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1962년 농협중앙회 제주도 출장소(지금의 제주지역본부의 전신)발족과 더블어 나도 서울의 중앙회 본부 기획조사부에서 근무하다 제주로 자원하여 내려왔다.

1961년 농업은행이 농협과 기업은행으로 분할하면서 제주도에는 농협 제주도지부를 설치하지 않고 전라남도지부에 예속시켜 버린 상태였다.

그럼으로써 제주도민이 많은 불편과 불이익을 당하는 형편을 소식으로 전해 들으면서 기구 개편을 담당하는 기획조사부에 근무하던 나로서는 말단이었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제주도민과 제주도내에 근무하는 선배들의 아우성소리가 매일같이 내 귀에 들려왔고 나는 기획조사부장 고상겸씨와 담당이사에게 제주도지부 설치각 어려우면 출장소라도 설치하여 제주농협을 전라남도지부에서 독립시켜 다라고 애원하였다. 그리만 된다면 나도 자원하여 제주도로 내려가겠다고 결심을 말했다.

제주농협이 전라남도지부에 소속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농협과 행정기관은 여러 가지로 유대가 깊은데, 제주농협은 제주도지사와 전라남도지사의 지시를 중복으로 받게 되는 형편이며 제주에서 광주까지 드나들어야만 업무추진을 할 수 있었다.

당장 제주도지부 설치를 주장하기에는 전라남도지부 소속에서 제주도 농협을 독립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뜻이 이루어져서 나도 제주도로 내려왔던 것이다.

제주도출장소 설치 승인을 받고 내려와 제주시 동문로타리 동산화물 사옥 2층에 사무실을 임대하고 집기등을 마련하는 등 출장소로 발령바다 모여든 여러 직원들과 손잡고 일할 때의 나의 부푼 가슴은 잊을 수가 없다.

때마침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제주도 농촌에는 유채, 맥주보리, 절간고구마, 전분용 고구마 등을 생산하느라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고, 농협은 갑자기 불어난 업무량으로 일손이 모자라 아우성이었다.

업무량은 늘어나는데 직원은 부족하고 중앙회의 직원채용계획에 의존해서는 제주도 출신의 합격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출장소장을 비롯한 윗분들이 중앙회에 출장 가서 직원 증원 요청을 해봐야 먹혀 들어 가지 않으니 딱한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말단이었지만 내가 상경하여 제주도 실정을 하소연하였다. 제주도에서 매상하는 유채, 맥주보리, 전분용 고구마, 절간고구마의 수량을 타 도와 비교해 설명하였다.

일손 부족으로 직원들이 밤낮없이 고생하고 있는데 왜 직원을 증원시켜 주지 않는지, 제주도 농협이 경제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엄청나게 불어났는데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직원을 증원시켜 주지 않는다면 경제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되고,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는지, 제주도 지사는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때에 처리하지 않아 불편을 주고 있다고 농협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농협은 일손없어 일을 못한다고 하면 결국은 중앙회에서 그 책임을 지게 될 거라고 협박성 발언도 하였다.

기획조사부에 근무했던 인연으로 각 부장실과 임원실마다 쫓아다니며 애걸복걸했더니 드디어 제주도에 직원증원이 결정되었다.

기획조사부에서 상관으로 모신 바 있는 안 모 인사부장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몇 명을 증원 달라는 거냐?”

“남주 30명, 여자 10명, 개척원 15명은 있어야 되겠습니다.”

“뭐야? 그렇게 많이 증원해 달라는 거야?”

하고 놀라는 것이다. 나는 한술 더 떠서

“그것도 전원 제주도 출신으로 보충해 주셔야지, 타 도에서 발령받고 내려온 직원들은 제주도 풍속에 익숙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부임하고 온 뒷날부터 떠날 생각으로 전출운동이나 하니 업무에 도움이 안됩니다.” 하고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떨었다.

인사부장은 엄청난 인원수에 놀라며 결정을 미루려 하게

"인사담당 이사님에게 지금 같이 가셔서 결말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안달을 부렸다.

이렇게 해서 증원계획을 승인 받고, 그것도 내 주장대로 제주도 출신으로 전원충원토록 하는 동시에 제주도 출장소 책임아래 채용시험을 실시하는 것까지 승인해 주어 제주도 젊은이의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자부한다.

일손부족으로 애태우던 농협이 인원충원으로 한숨을 돌리게 되자 또 다시 큼직한 요구를 들고 올라갔다. 『출장소』라는 간판으로는 제주도청을 비롯한 각 기관단체를 상대하게 격이 맞지 않아 불이익이 발생하니 『도지부』승격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경제사업의 활성화로 타 도에 비하여 제주가 엄청난 규모의 사업성과를 올리고 있었으므로 본부에서도 이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지부 청사 신축 요구서까지 들고 올라가서 모두 승인을 받고야 말았다.

한편 제주도지부로 승격하고 보니 예산부족으로 업무추진하게에 지장이 많음을 느끼게 되었다. 각 도지부에 대한 예산배정은 기획조사부 소관이기에 내가 전에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여 고상겸부장을 찾아가 예산 증액을 요쳥했다.

고부장은 “ 조그만한 제주도에서 무슨 예산이 그리 많이 필요한가?” 하며 난색을 표했다.

나는 “제주도가 작아도 충청북도에 비해 세관, 항만청 등 기관이 한 두 개 더 많습니다. 작은 도에서는 회의할 때 식사도 반 그릇만 먹어야 합니까? 더도 말고 충청북도에 배정되는 예산만큼만 주십시오.” 하고 애원했다.

나는 제주도에 배정되는 예산이 충북의 1/3밖에 안된다는 자료를 이미 입수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이렇게 요구한 것이었다.

제주가 관광지이고 정부 각급장관 등 고위직이 내려오게 되면 농협이 협조안할 수가 없으며 여기저기 외상이 많아 견딜 수가 없다고 설명드렸더니, 비로소 납득이 되었고 예산증액이 결정되었다.

갑자기 많은 예산이 내려와 오래 묵은 외상값을 한 번에 해결하게 되자 서무 주임 기자아 씨는 싱글벙글 좋아라 하면서 “후에 난 뿔이 무섭다고 하더니........그 동안 선배들은 본부 출입하면서도 돈을 쓰고만 오더니만......” 하고 중얼거렸다.

마침내 농협 제주도지부 청사가 준공되고 직원 증원이 이루어 지고 예산배정이 정상화 되고 보니, 드디어 제주농협의 기틀이 잡혀가는 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 내 생애 가장 보람된 시기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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